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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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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송미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교양교육원 강사

1. 머리말
2.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 

3.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자료적 특징 

4. 맺음말

국문초록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방송에서 

1963년 봄에 녹음하고, 1964년 4월 20일부터 5월 13

일까지 방송한 박록주 

<춘향가> 자료의 구체적인 실상을 회별로 고찰하고, 대담 자

료․연창 자료 그 각각에서 주요하게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확인해 보았다

.

우선 

1회부터 12회까지, 각 회별로 대담과 연창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내용을 상

세히 밝혔다

. 장사훈-박록주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의 일부를 직접 제시하고, 그 내

용을 지금까지의 판소리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에 의거해 분석하거나

, 그러한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 판소리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 또 연창 자료에 대한 분석을 위해, 정

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춘향가>, 최승희 <춘향가>의 사설․장단과 정정렬-

박록주 계열의 본 박록주 

<춘향가>의 사설․장단을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의 대담 자료를 통해서는, 박록주가 정정렬제 <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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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호

>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 그리고 고수의 기능 가운데 특히 ‘보비위’를 중시

하고

,  천구성보다 수리성을 판소리의 이상적인 성음으로 생각했으며, 판소리 ‘제

(制)’의 의미 해석에 있어 사설이나 내용보다는 선율이나 악조에 기준을 두었던 박

록주의 판소리관을 엿볼 수 있었다

. 대담 자료는 본 박록주 <춘향가>가 기독교방송

에서 녹음․방송된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 다만 장사훈의 해설로 대

체된 

8회~10회 대담 자료는 내용상 실수가 적지 않았던바 아쉬움을 남겼다.

다음 연창 자료를 통해서는 박록주의 

<춘향가>가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춘향가>, 최승희 <춘향가>와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

. 박록주는 대담을 통해 자신의 <춘향가>가 정정렬제임을 강조했는데, 실제 사설

과 음악에 대한 비교 고찰을 통해 이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 물론 박록주가 부른 <춘

향가

>의 사설과 음악이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 창/아니리의 구분과 장단 구성, 사설의 축약과 부연, 재담적․언어유희적인 

아니리의 삽입

, 소리 대목의 드나듦, 사설 자체의 내용과 표현 등에서 차이가 나타났

. ‘춘향과 이도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 ‘신관사또 내려오는 대목’, 운봉영장이 이

어사를 생일잔치에 들이는 장면

, 이어사가 춘향을 떠보느라고 짐짓 수청 명령을 내

리자 춘향이 지환을 받아보고 이어사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 등에서 창

/ 아니리의 

구분과 장단 구성 면의 차이를

, ‘춘향이 이별 말에 사생결단하는 대목’, ‘춘향과 이도

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

’, ‘춘향이 옥에서 자탄하다 귀신 울음 듣는 대목’ 등에서 사

설의 축약과 부연 면의 차이를

, 이도령이 춘향을 요여(腰輿)에 태워갈 꾀를 내는 장

, 농부가 남원 고을의 ‘사망(四妄)’을 이야기하는 장면, 기생이 이어사를 비꼬며 권

주가를 부르는 장면 등에서 재담적․언어유희적인 아니리 삽입 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 소리 대목이 들고나는 예는 일명 ‘춘향방 그림 사설’, ‘갈까부다’ 등에서, 

사설의 내용 및 표현이 확연히 차이나는 예는 

‘춘향이 황릉묘 다녀오는 꿈을 꾸는 대

’, ‘춘향이 이어사의 수청 명령을 거절하는 대목’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의 목적은 기독교방송 녹음 박록주 

<춘향가> 자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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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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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있었던바

, 그 사설과 음악적 내용을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의 그것과 비교

하는 작업에 있어 박록주 창본이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 정정렬제 <춘향가>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박록주 창본

,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을 동

궤에 놓고 비교해야 하며

, 정정렬제 <춘향가>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여타의 

창본도 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 이에 대한 논의는 후고를 기약하기로 한다. 

주제어

 박록주, 정정렬, 춘향가, 완창, 기독교방송(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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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호

1. 머리말

박록주는 근현대 판소리사를 대표하는 여성 명창으로

, 판소리가 중

요무형문화재로 처음 지정되던 

1964년에 김연수, 김소희, 김여란, 정광

, 박초월과 함께 춘향가의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1973년 <흥

보가

>의 보유자로 재인정되면서, 문화재 제도의 영향에 따라 그의 공

연 및 전수 활동은 

<흥보가>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공연에서 

<흥보가>를 불렀고, 공식적으로 발매된 완창 음반도 <흥보

>가 유일하며, 그 제자들도 주로 <흥보가>를 전수했다.1

그러나 박록주는 그 이전에 이미 

<춘향가>로 이름을 날린 명창이었

. 경성방송국의 라디오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방송한 소리도 <춘향

>였으며, 일제강점기에 발매된 유성기음반 녹음 가운데 가장 많이 

취입한 소리도 

<춘향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록주의 <춘향가>

는 그가 일제강점기에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한 

‘광한루 경개’, ‘춘향집 

경치

’, ‘긴 사랑가’, ‘자진 사랑가’, ‘정자 노래’, ‘이별가’, ‘군로사령’, ‘기생

들이 들어오는 대목

’, ‘동풍가’, ‘황릉묘’, ‘천지 삼겨’, ‘옥중상봉’ 등, 중요

무형문화재 보존자료로 남겨둔 창본 및 녹음

2에 기록된 

‘자진 사랑가’, 

 1 박록주가 1976년에 남긴 <심청가> 릴테잎이 있으나, 이는 박록주가 자택에서 개인적으

로 녹음한 것이다

. 공식적으로 음반이 발매된 적은 없으며, 2013년 전통예술 복원 및 재

현 지원 사업의 일환인 

‘동편제 박록주 바디 심청가 복원 및 재현 발표회’에서 전인삼과 

채수정에 의해 복원된 바 있다

. 또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된 박록주의 <춘향가> 녹음이 

있으나

, ‘사랑가’부터 ‘어사와 장모’까지만 수록된바 처음~끝이 온전한 완창 자료는 아니

(송미경, 「기독교방송 녹음 박록주 <춘향가>(1963)의 특징과 판소리사적 의의」, 뺷공

연문화연구

뺸 29, 한국공연문화학회, 2014, 381~38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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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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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가’, ‘기생점고’, ‘군로사령’, ‘행수기생’, ‘십장가’, ‘춘향모 들어오는 

대목

’, ‘기생들이 들어오는 대목’, ‘농부가’ 등,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한 

<춘향전>에 수록된 ‘사랑가’부터 ‘어사와 장모’까지의 소리를 통해 접근

할 수밖에 없었다

. 다행히 박록주가 1963년에 기독교방송에서 녹음한 

<춘향가> 자료가 보고된바, 박록주 <춘향가> 완창의 전모(全貌)가 드러

나게 되었다

.

필자가 기존의 연구에서 밝힌 박록주 

<춘향가>의 녹음 및 방송 경위

는 다음과 같다

.3 우선 박록주의 <춘향가>가 현 소장처인 KBS가 아닌 

기독교방송에서 녹음 및 방송된 자료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이 자료는 

1980년대의 방송 통폐합 과정에서 특별한 메모나 기록 없이 

KBS로 이관되면서 그간 KBS 녹음 자료로 잘못 알려져 왔던 것이다. 기

독교방송에서는 

1963년 7월 1일부터 1964년 7월 6일까지 약 1년여에 

걸쳐 완창 판소리 다섯 마당의 연속방송을 송출했으며

, 박록주의 <춘

향가

>는 전체 기획의 여섯 번째 바탕소리로 1964년 4월 20일부터 5월 

13일까지 총 12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 방송되었다. 

방송은 

22시 30분에 시작해 약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1회~7회와 11회 

방송은 

3~5분 정도의 대담과 25분 내외의 판소리 연창, 8회~10회 방

송은 

3분 정도의 해설과 25분 내외의 판소리 연창, 12회 방송은 20분 정

도의 판소리 연창과 

10분 내외의 대담으로 구성되었다. 

필자는 선행 연구에서 기독교방송에서 박록주의 

<춘향가> 완창을 

 2 박헌봉․유기룡 조사, 뺷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재-춘향가뺸, 문화재관리국, 1964, 1~

136쪽. 

 3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 자료의 녹음 및 방송 경위에 대해서는 송미경, 앞의 글, 38

6~39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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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호

녹음․방송한 경위를 제시하고

, 박록주가 남긴 여타 <춘향가> 녹음들

과의 비교를 통해 이 자료가 지니는 사설 및 장단상의 특징을 고찰한 

바 있다

. 자연 기독교방송 <춘향가> 중에서도 비교 대상이 되는 일제

강점기 유성기음반과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재용 음원 

<춘향가>에 수

록된 토막소리

, 아세아레코드 <춘향전>의 ‘사랑가’부터 ‘어사와 장모’까

지의 소리에 대응되는 대목으로 그 논의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 이에 

본 연구에서는 

1회 방송부터 12회 방송까지의 대담 자료와 연창 자료 

전반의 내용을 상세히 밝혀보고자 한다

.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 

자료를 회별 구성에 따라 살펴본 후에는

, 대담 자료와 연창 자료의 특

징을 종합적으로 정리할 것이다

.

2.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

기독교방송국에서 기획한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 방송의 마지막 순

서는 

<춘향가>였다. 재담소리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흥보가>를 첫 순

서에 배치한 것이 라디오 청취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

, <춘향가>를 가장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국창 반열에 올라있던 박록

주를 연창자로 선정한 것은 이 기획의 대미

(大尾)를 장식하기 위함이었

다고 할 수 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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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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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훈

: 오늘은 이 판소리 마지막 시간으로 <춘향가>를 보내드리게 됐

습니다

. 근데 이번에는 참 우리나라 국창으로 모실 수 있는 그, 그 옛날 명

창이신 박록주 여사를 모시게 됐습니다

. 청취자 여러분은 이점 기대를 많

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1964년 4월 20일 월요일 22시 30분,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장사

훈은 다음과 같은 멘트로 

<춘향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대담-연창의 

순서로 진행된 이후 방송과 달리

, 이날 방송은 특별히 대담-연창-대담

의 차례로 이루어졌다

. 첫 번째 대담은 방송의 시작을 알리면서 연창을 

맡은 박록주 명창을 소개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으며

, 두 번째 대담은 

해당 회에 불린 

<춘향가> 주요 대목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 나누는 방식

을 따랐다

첫 번째 대담에서는 박록주의 나이

, 출생지, 사승관계,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 취입 이력 등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이 간략히 언급되었다

1905년생인 박록주가 당시 나이를 59세라고 밝힌바, 방송은 1964년 4월

이었지만 녹음은 한해 전인 

1963년에 이루어졌음을 여기서 재확인할 

수 있다

.5 그 외에 박록주의 출신지가 경상북도 선산이고, 송만갑에게 

 4 현재 확인 가능한 당시 연창자는 박초월과 박귀희 뿐이다. 박초월이 <수궁가>를 부른 사

실은 

12회 대담 내용에서 언급되나, 또 다른 명창인 박귀희가 어떤 바탕소리를 맡아 연창

했는지

, 박록주, 박초월, 박귀희 외에 어떤 명창들이 연창자로 참여했는지에 대한 언급

은 없다

. 그렇다 하더라도 박귀희가 박록주에게 <흥보가>를 배운 제자였고, 박록주의 연

배가 박초월

, 박귀희와 비교해 십수 년 위였던바, 박록주를 마지막 연창자로 선정한 의도

를 이와 같이 보는 시각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5 금년봄 HLKY에서 장장 다섯시간에 걸쳐 春香歌 전판을 녹음하였는데 이것은 또다시 얻기 어려운 결

정반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사가 사례에 구애하지 않고 필생의 기념으로 남기고자 장시일동안 심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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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호

<흥보가>와 <심청가>, 정정렬에게 <춘향가> 한 바탕, 김창환에게 <흥

보가

> 중 ‘제비노정기’를 배웠으며, 일제강점기에 빅타․콜럼비아․오

케․태평 레코드 등에서 음반 녹음을 했고

, 송만갑, 정정렬, 이화중선, 

김소희 등과 창극 

<춘향전>을 취입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 내용은 지금

까지 보고된 박록주의 이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다만 박록주가 

박기홍

, 김정문, 유성준에 대한 언급 없이 송만갑, 정정렬, 김창환만을 

소리 스승으로 거론한 것은

, 근대 오명창 가운데서도 이들이 더 널리 알

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장사훈은 첫 번째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박록주

가 

“특히 성량이 거대한 것으로 이름이 났었고, 아주 모드락지고 맺힘새

가 좋다는 평판이 있었

”던 명창이라고 전했다. 

박록주가 첫 번째 대담에 이어 연창한 

<춘향가> 소리 대목의 구성을 

다음 쪽의 표로 제시한다

“숙종대왕 즉위……”로 시작되는 ‘초앞(아니리)’은 정정렬-김여란 계

열의 

<춘향가> 창본인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초앞’과 내용 및 표

현 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 그 외에 첫 소리 대목이 ‘나귀 안장’이라는 점, 

이도령이 직접 남원의 전경

(全景)을 이르는 소리 대목으로 유명한 

‘적성

’ 대신 방자가 나서서 동서남북의 경치를 고하는 소리 대목을 넣은 

, “교명선인오작교요…”라는 사설을 시창(詩唱)으로 부르는 점, 춘향

이 광한루에 나가기 전날 밤 이도령을 만날 몽사

(夢事)를 얻는다는 내용

기울여 연습한 끝에 녹음에 임한것이다

.

더우기 따로 약

2시간에 걸쳐 金昌煥스승의 「제비路程記」는 어떻고, 宋萬甲의 農夫歌는어떻

, 丁貞烈의 十杖歌는어떻고, 그들의 더늠이 각각 어떻게 다르다는둥 친절하고도 재미있

는 설명까지 녹음되어있어 

可謂 산기록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장사훈, 「光復19年과 韓國

의 

女流들」․「국악계」

, 뺷조선일보뺸, 1963.8.2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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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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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작품 배경과 인물 소개-초앞>

아니리

숙종대왕 즉위 초에

방자가 나귀 안장을 짓는 대목

(나귀 안장) 

자진모리

방자 분부 듣고

방자가 사면 경치 고하는 대목

아니리

광한루를 당도하야

진양조

저 건너 저 건너

춘향이 이도령 만날 몽사를 얻는 이도령이 춘향을 

발견하는 대목

아니리

좋다 좋다 

중모리

책상으 촛불을

춘향이 자리를 뜨는 대목

아니리

방자를 불러

중모리

가벼야이 걷는

방자가 춘향집을 가리키는 대목

아니리

도련님이 기가

진양조

저 건너 저 건너

이도령이 춘향을 생각하는 대목

아니리

도련님 춘향을

자진모리

도련님 그시부터

방자가 춘향집에 편지 전하러 가는 대목

아니리

이애 방자야

중모리

춘향으 집을

<이도령의 노루글 읽기>

아니리

향단이 마참

의 소리 대목이 있는 점

, 춘향이 이도령을 발견하고 부끄러워하며 자리

를 뜨는 장면을 묘사한 소리 대목이 있는 점

, 이도령이 방자를 통해 춘

향에게 편지를 전한다는 내용의 소리 대목이 있는 점은 박록주 창본이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과 공유하는 정정렬제 

<춘향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이처럼 1회 방송에서 박록주가 부른 <춘향가>의 구성은 정

정렬-김여란 계열 창본의 구성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박록주

는 

‘적성가’ 대신 진양조장단의 ‘저 건너 저 건너’를 부른 데 대해, 이것

이 정정렬제 

<춘향가>의 특징이라는 설명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박록주

: 정정렬 씨 선생님 <춘향가>에는 적성가가 없이 “얘. 방자야. 손을 들

어 가르켜라

. 저 건네 보이는 산이 지리산 내맥이라”는 거그가 적성가 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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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제14호

장사훈

: 아 택이고? 또 부르는 분도 있었지요?

박록주

: 부르는 분도 있지요. 정정렬 씨 <춘향가>는 영 달습니다. 

장사훈

: 아하 지금 정정렬 선생 제죠?

박록주

: 예 전부 정정렬 선생 제.

장사훈

: 그러니까 내 자신이 벌써 의심이 났는데요.

박록주

: 네. 

장사훈

: 청취자가 저 분 왜 적성가를 안 부르나 이렇게 할 거란 말이예

. 그래서 여쭤본 거예요.

박록주

: 네. 요대로만 해나가면 기가 막히게 재밌습니다.

장사훈

: 그러니까 지금 정정렬 씨 제죠? 전부?

박록주

: 예. 전부 정정렬 씨 제죠.

위의 대담 내용으로부터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박록주가 정정렬

제 

<춘향가>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정정렬제 

<춘향가>는 “정정렬 나고 <춘향가> 다시 났다”, “정정렬이 판

을 막아버렸다

”라는 말이 보여주듯, 일제강점기 당시 ‘신제(新制)’ <춘향

>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바디이다. 

2회부터는 대담-연창의 순서에 따라 방송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박

록주는 판소리 입문 시기 및 계기

, 활동 초기의 일화에 대해 이야기했

.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2세에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첫 선생

은 박기홍

(朴基洪)이었다고 한다

. 박록주는 소리 공부를 하던 중인 12세

에 

<심청가>로 처음 무대에 섰던 일을 술회하기도 했다. 20~21세 무

, 광화문 체신국에서 이루어진 시험 방송을 계기로 방송 활동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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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65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이도령이 천자뒤풀이하는 대목

(천자뒤풀이)

중중모리

자시으 생천허니

이도령이 방자에게 해 소식

, 상방 소등 소식 묻는 대목

아니리

소리를 질러놓은

중모리

동방이 희번희

이도령이 춘향집 당도하는 대목

(퇴령소리)

진양조

퇴령 소리

춘향이 이도령의 청을 거절하는 대목

아니리

도련님이 춘향방에

중모리

도련님 듣조시요

춘향모가 고함치는 대목

아니리

도련님 들으시고

자진모리

충충거려 나가는데

춘향과 이도령이 초야 치르는 대목

아니리

이렇게 야단할 제

중모리

이애 춘향아

했는데

, 훗날 자녀들이 자신의 녹음을 듣게 될까 염려해 한사코 레코드 

취입을 고사했다고 한다

. 그러나 결국 속임수에 넘어가 진고개에 있던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나팔통 녹음을 넣었다

. 이 일화는 약 10년 뒤인 

1974년, 뺷한국일보뺸의 연재기사 「나의 이력서」에도 실렸다.6 

이날 방송에서 불린 중중모리의 

‘이도령이 천자뒤풀이하는 대목(천자

뒤풀이

)

’부터 중모리의 ‘춘향과 이도령이 초야 치르는 대목’까지 그 대목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6 “양반 상인(常人)을 따지면 나는 서슴지 않고 소리하는 내가 무슨 양반인가하고 대답한

. 따라서 내소리를 「레코드」에 취입해서 자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일체 없었다. 그래서 

「레코드」회사서 녹음을 요청해 오면 단연코 거절을 했다

. 20살의 가을께로 기억된다. 한남권번

에 있는 

金씨가 찾아와 총독이 소리를 듣자고 하니 가자는 것이었다

. 그를 따라갔다. 그

런데 총독부

(지금 중앙청)로 가는게 아니라 차가 가는 방향이 진고개였다. 좀 이상하다 

하면서 들어갔더니 조그마한 방에 스승인 송만갑선생과 

金海의 명창인 김녹주

(金綠珠)가 

있었다

. 그들은 커다란 나팔통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아마 이것을 통해

서 총독이 노래를 듣는가 보다 했다

. 나도 그를 따라 단가 「죽장망혜」와 「화초사거리(花

草四巨里

)」를 불렀다. 소리가 끝나자 그제서야 그들은 유성기에 녹음한 것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깜짝 놀라 펄펄뛰며 취입한 것을 지워달라고 했다

. 그러나 노래는 지워지도 않고 그대로 시

판됐으며 나는 취입료도 받지 못했다

. 처음 유성기에 나오는 내 소리를 듣고 나는 저게 

내 소리인가 하고 의심을 했다

. 목소리가 내생각과는 영달랐기 때문이었다. 그후 자꾸 

들을수록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았다

. 그래서 다음해 가을에 또 「레코드」녹음하러 이번

엔 일본으로 갔다

.”(박록주, 「나의 이력서」 11, 뺷한국일보뺸, 1974.1.22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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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제14호

박록주 창본

최승희 창본

{중모리} (…상략…)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애 

방자야

, 이애 방자야, 상방에 불 껐나 좀 보아라.” 

“아직 멀었소. 이게 초저녁인듸 어느새에 불을 끈단 

말이요

?” “이애 방자야. 불 껐나 보아라. 답답허여 

못살것다

.” “소인이 가서 여쭈어 보고 오리다.” “아 

저런 미친 놈이 있는가

? 무엇이라고 여쭈어본단 

말이냐

?” “언제쯤 주무실란가 사또께 내 여쭈어 

볼랍니다

.” “이 자식아 철 모르는 소리 말고 거게 

앉어 자서히 좀 보아라

. 이애 방자야. 방자야. 상방에 

불 껐나 좀 보아라

.” “소인이 가서 여쭈어 보고 

오리다

.” 방자 충충 다녀오드니, “도련님 일 다 

틀렸소

.” “어떻게 되얐단 말이냐?” “사또께서 오늘 

저녁에 기공 불러 놀으신다고 관청으로 음식을 
시키시고 책방나리 보고 날 새도록 놀으신다고 

하시니

, 도련님 일 다 틀렸으니 잊어버리시고 

주무십시요

.” 도련님이 기가 맥혀 흉중이 콱 

맥히고 눈물이 빙빙 돌면

, “아이고 이 일을 워쩔꺼나

집구석 일도 잘 되여간다

. 부자간에 어찌 한날 

반하는고

. 이애 방자야. 이애 방자야. 상방에 불 

껐나 좀 보아라

.” 이렇닷이 자진헐 제,

{중모리}

 (…상략…) 그렁저렁 일모 황혼이 되니 

도련님이 좋아라고 

“이얘 방자야! 상방의 불 껐나 

어서 좀 보아라

.”

{아니리}

 “아직은 초저녁인디 어느새 불을 끌 

것이요

? 내가 가서 여쭤 보고 올라요,” “무얼 

여쭈어 봐

?” “언제쯤 주무실라는가 사또 전에 

여쭈어 볼라요

.” “이 자식아. 그 철 모르는 소리 

하지 말고 게 앉아서 자세히 좀 봐라

.” “아이고 내가 

못살것소

, 가서 여쭈어 보고 올라요.” 방자 충충 

다녀오더니

, “도련님! 다 틀렸소.” “어찌 

되었더냐

?” “사또께서 오늘 저녁에 놀으신다고 

기생 부르고 공인 부르고 관청으로 음식 속히 

가져오라 허시면서 책방 나리 보고 오늘 밤새도록 

노신다고 허시니 도련님 일은 다 틀렸소

잊어버리고 일찍 주무십시오

.” 도련님이 이 말을 

듣더니 흉중이 콱 맥혀 두 눈에 눈물이 빙빙 돌며

“집구석 일은 잘 되어간다. 어째서 부자간에 한 날 

이렇게 반하는고

?” 이렇듯 자진헐 제,

이 부분 역시 정정렬-김여란으로 전승된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 

<춘향가>의 구성과 거의 비슷하다. 춘향과 이도령이 춘향모의 허락 없

이 초야를 치르는 내용은 정정렬제 

<춘향가>의 중요한 특징인바, 박록

주의 

<춘향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

본에는 있는 

‘춘향방 그림 사설’이 박록주 창본에만 없는 것, 그리고 ‘이

도령이 방자에게 해 소식

, 상방 소식 묻는 대목’ 구성이 아래와 같이 다

른 것은 이들 간의 차이에 해당한다

이도령이 방자에게 상방 소등

(消燈)

 소식을 묻는 사설이 박록주 창본

에는 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

, 최승희 창본에는 아니리로 되어 있으며, 

사설은 박록주 창본이 비교적 확장된 편이다

. 박초선 창본의 위 부분을 

살펴보면

, 사설은 최승희 창본과 일치하나 아니리가 아닌 중모리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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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67

의 소리 대목으로 되어 있어 창과 아니리의 구분 면에서는 박록주 창본

과 같다

3회 방송의 대담에서는 박록주가 평소 고수의 기능을 어떻게 인식하

고 있었는지

, 박록주는 어떤 창자를 ‘사랑가’의 명창으로 꼽았는지에 대

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박록주

: 말을 허자면 소리 하는 사람이 다 제각기 모도 다 다른 점이 있

습니다

. 그래서 고수가.

장사훈

: 아. 소리 하는 사람이요?

박록주

: 예. 고수가 소리를 보비위해서 잘 따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 또 소리가 고수를 따라가는 수도 있는데, 역시 말하자면은 고수가 소

리를 따라서 보비위를 해야죠

.

장사훈

: 그렇죠? 소리가 고수를 따라갈 순 없죠?

박록주

: 한성준씨는 특히 그 냥반이 말하자면 장단 그저 하나하나에 이 

소리를 하는 정도가 그저 신명이 나고 그저 소리 사설도 지대로 나올 정도 

이 만한 그 북이 됩니다

.

장사훈

: 아하 그러니까 결국은 고수가, 좋은 고수라는 것은 가령 박여

사가 부르면은 박여사 소리도 다 알고

, 특징을, 또 가령 정정렬 씨가 부르

면 정정렬 씨의 특징을 알고

, 그 개개인의 특징을 알아서 그 특징에 비위를 

맞쳐준다

. 그것이 결국은 명고수다 이렇게 되는거죠? 나는 이렇게 불러나

가는데 고수는 또박또박 딴짓한다든지 소리가 늘어질 적에 또박또박 쳐나

간다든지 그러면 안될 건 사실이죠

?

박록주

: 역시 소리하는 사람 보다가 고수가 경력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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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제14호

장사훈

: 그렇죠? 소리를 다 알아야죠.

박록주

: 다 안다는 그것보다가도요 온 정신이 소리하는 사람한테 쏠려야 

됩니다

. 고수가.

박록주는 고수의 기능 가운데서도 특히 

‘보비위(補脾胃)’를 중시했던 

것 같다

. 그리고 보비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연 중에 

온 정신을 소리꾼에게 실을 수 있어야 하고

,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 위

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7 이것은 박록주의 고법관 혹

은 고수관

(鼓手觀)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

한편 박록주는 

‘사랑가’를 잘 불렀던 명창으로 주저 없이 김록주(金綠

, 1898~1928)를 꼽았다

. 또 김록주가 유성기 음반 녹음을 남기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 소리 실력에 있어서는 이화중선

(李花中仙, 189

9~1943)을 앞선다고 평가했다

. 사실 판소리에서 성음에 대한 기호나 평

가는 감상자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 이는 소리를 하는 창자의 경우

에도 마찬가지이다

. 박록주가 언급한 대로 이화중선은 천구성을 지닌 

대표적인 여성 명창으로 평가된다

.8 반면 김록주는 이화중선의 천구성

 7 공연 과정 중의 고수는 보비위를 위해 온 정신을 창자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창자가 

고수에 집중하여 소리하는 경우는 없지만

, 고수는 어떤 경우든 반드시 창자에 집중하여

야 하는 것이다

. 그래서 일부 고수는 공연 중에 관객석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하

기도 한다

(송미경, 「창자와의 관계에서 본 판소리 고수의 공연학」, 뺷공연문화연구뺸 23, 

한국공연문화학회

, 2011, 88쪽). 

 8 장사훈 : (…상략…) 이화중선씨요. 에 세상에서 지금 다 알고 있는데. 아마 일반 대중은 

김녹주씨보담도 이화중선씨를 더 잘 알 거예요

. 그게 레코드 관계죠? 근데 그 분이나 김

초향 씨보다 어때요

?

박록주

: 김초향 씨보다는 좀 낫지요. 하지만 목이 청성입니다. 화중선 씨는. 그래서 판소리는 김해 녹

주를 못 당하시는데

 김해 녹주씨는 이 축음기를 못 옇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〇〇〇 〇〇 〇

〇 나팔통에다 한 번 옇고는 돌아가셨으니까

. 축음기에다 소리 못 옇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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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69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모가 향단을 윽박지르는 대목

아니리

춘향모 고이히

중모리

춘향 방문

향단이 춘향모에게 사정 설명하는 대목

아니리

호령을 하니

중모리

마음 돋어

춘향모가 서러워하는 대목

아니리

춘향모 들어보니

진양조

춘향모 전후사를

춘향모가 술상 차리는 대목

아니리

춘향모 울다가

자진모리

강진형 교자반에

이도령이 춘향에게 사후를 기약하는 대목

(사후 기약)

아니리

불시로 차리노라

진양조

사랑 사랑

이도령이 춘향에게 사후를 기약하는 대목

(맷돌사설)

아니리

나 아무 것도

중중모리

사랑 사랑 사랑

이도령이 춘향을 업고 노는 대목

아니리

나 그것도

중중모리

둥둥둥 내

춘향이 이도령을 업고 노는 대목 

아니리

춘향을 내려놓고

중중모리

둥둥 내서

이도령이 춘향집으로 이별 고하러 가는 대목

아니리

한참 노니드니

중모리 

왼갖 생각

과 대비되는 수리성의 소유자였으며

, 박록주의 성음 역시 수리성에 가

깝다

. 천구성보다 수리성을 판소리의 이상적인 성음으로 생각하고, 본

인 스스로도 수리성을 지향했던 박록주의 소리관이 여기서 간접적으

로 드러난다

박록주가 연창한 중모리장단의 

‘춘향모가 향단을 꾸짖는 대목’부터 

‘이도령이 춘향집으로 이별 고하러 가는 대목’까지의 소리 대목 구성은 

다음과 같다

박록주가 여기서 언급한 청성은 청성

(淸聲)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천구성 혹은 청구

성이라고 부르는 맑고 고운 목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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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제14호

이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차이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 하나는 ‘향단이 

춘향모에게 사정 설명하는 대목

’이 박록주 창본에서는 중모리장단, 박

초선 창본과 최승희 창본에서는 엇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불린

다는 사실이다

. 사설은 세 창본 모두 비슷하나, 음악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 다른 하나는 박록주 창본의 ‘사후 기약’ 대목에 “너는 죽어 꽃이 

되되 이백도홍 상춘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되 화간 쌍쌍 벌 나비 

되야 네 꽃송이를 담쑥 물고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너울 놀거들랑 

니가 날인 줄 알려무나

” 라고 하는, 이도령이 춘향에게 꽃과 나비가 되

자고 사후 기약하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 하지만 이러한 사

설의 드나듦은 판소리 연행 과정에 종종 있는 일인바

, 박록주가 일제 

강점기에 녹음한 

‘사랑가’(C.40098-B)에는 이 부분이 삽입되어 있다. 

4회 방송 대담에서는 판소리 전수 사업의 필요성, 판소리 창자들의 

사제

(師弟)

 관계 변화 등이 화제가 되었다. 장사훈은 박록주가 송만갑, 

김창환

, 정정렬, 김창룡, 이동백 등 근대 오명창의 소리를 모두 접해본 

명창인 만큼

, 그 귀한 소리를 제자들에게 잘 전수해야 하겠다고 강조했

. 또 상당히 엄격하고 진지했던 판소리 사제 관계가 점차 해이해져 

가는 세태와 관련해

, 박록주는 예전에는 소리 스승 모시기를 “하나님 

모시

” 듯 했는데, 요즘은 “선생이 도로 제자에게 굽혀야 된다”며 탄식했

. 이동백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를 정성스럽게 모셨

던 제자 강장원

(姜章沅, 1909~1962)의 일화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중모리장단의 

‘춘향집에서 이도령을 반기는 대목’

부터 중중모리장단의 

‘춘향모가 이별 말에 발악하는 대목’까지 연창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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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71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집에서 이도령을 반기는 대목

중중모리

그때여 향단이

춘향이 이도령을 원망하는 대목

중모리

춘향이 무색하야

춘향이 함께 올라갈 뜻을 전하는 대목

아니리

눈치 빠른 춘향이가

중중모리

건장한 두패조군

춘향이 이별 말에 사생결단하는 대목

아니리

춘향이가 이 말을

진양조

분 같은 고개는

춘향모가 이별 말에 발악하는 대목

아니리

건넌방 춘향 어머니는

중중모리 

춘향 어머니 나온다

정정렬제 

<춘향가>의 이별가는 토막소리로도 널리 불렸던 대목이

. 다른 유파 혹은 바디의 <춘향가>를 부르면서 이별가는 정정렬제를 

수용한 경우도 있었다

. 정광수가 1954년에 한덕수와 합편(合編)으로 발

간한 

뺷창극조 대춘향가뺸의 이별가는 분명 정정렬제이다

. 이 책의 목차

에서는 

6장 이별 대목만 “1. 춘향집 2. 오리정”으로 구분했으며, 전권을 

통틀어 단 한 장뿐인 삽화에는 오리정에서의 이별 장면을 그려넣었다

이런 장치들로 미루어 

뺷창극조 대춘향가뺸에서 주요하게 내세운 특징이 

이별가임을 알 수 있겠는데

, 그 이별가는 김창환제가 아닌 정정렬제였

.9 한편 창극단 활동 중에 정정렬의 제자인 조상선으로부터 정정렬

제 이별가를 배워 이것을 토막소리 형태로 녹음한 창자들도 있다

. 박보

아의 음반

,10 박송희의 음반11에 수록된 ‘오리정 이별’ 대목이 그 예가 

된다

. 정정렬제 이별가의 사설과 음악은 비교적 완정(完整)된 형태를 갖

 9 정광수는 1986년에 발간한 뺷전통문화오가사전집뺸에서 이별가 대목을 “오리정으로 다라

갈 마음이 것잡을 수가 없으되 도령님체통을 생각하여

” 담안 이별을 하는 구성으로 바꾸

었다

(송미경, 「뺷창극조 대춘향가뺸에 나타난 서편제 춘향가의 전승양상」, 뺷판소리연구뺸 

33, 판소리학회, 2012, 115~116쪽). 

10

「정창관 국악녹음집

(4)-박보아․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지구레코드, 2001.

11

국악방송

, 뺷박송희 판소리 눈대목뺸, 악당이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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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제14호

추어 전승되었고

, 이러한 이유로 박록주 창본의 이별가 대목은 정정렬

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이별가 대목과 거의 비슷

하다

. ‘춘향이 이별 말에 사생결단하는 대목’ 후반부에 “공연한 사람을 

사자 사자 조르더니 평생

(平生)

 신세(身世)를 망치네그려. 상단아 건넌방 

건네 가서 마누라님을 오시래라

. 도련님이 떠나신다니 사생결단(死生決

)을 헐란다

. 마누라님을 오시래라”라는 사설이 박록주 창본에만 삽입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

5회 방송에서는 1분 여 남짓의 대담 이후 바로 판소리 연창이 이어졌

. 이별가를 잘 불렀던 명창을 묻는 장사훈의 질문에 박록주는 김창환 

위로는 직접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장사훈

: 그리고 정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정정렬 선생.

박록주

: 정선생님은 통틀어 지금 <춘향가>는 정 선생님 <춘향가>가 제

일 낫습니다

.

장사훈

: 그러니까 저 다섯 바탕 중에서 그 분이 적벽가는 부르지 못했

을망정 

<춘향가>만은 아주 그분 독판이었었군요.

박록주

: 적벽가도 허셨지만은 그 <춘향가>가 제일…….

장사훈

: 아 허셨지만은 그저 <춘향가>만 못했단 말이겠죠. 

박록주는 이번 대담에서도 현전 

<춘향가> 가운데 정정렬제 <춘향

>가 “제일 낫”다고 평하며 정정렬 바디 <춘향가>에 대한 자부심을 드

러냈다

. 또 정정렬이 적벽가를 부르지 못했다는 장사훈의 말을 정정하

기도 했다

. 장사훈은 정노식이 뺷조선창극사뺸에서 “春香歌에 限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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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73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이 체념하고 우는 대목

중모리

춘향이 여짜오되

춘향이 오리정으로 나가는 대목

아니리

방자 충충 나오드니

진양조

술상 차려

이도령이 춘향의 울음소리 듣는 대목

자진모리

내행차 나오랴고

춘향과 이도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을

이도령이 떠나가는 대목

자진모리

저 방자 미워라고

춘향이 주저앉아 우는 대목

중모리 

그 자리 버썩

춘향이 돌아와 이도령의 꿈을 꾸는 대목

(비 맞인 제비 같이)

아니리

춘향 어머니 나와

진양조

비 맞인 제비 같이

는 確實히 入室한 感이있으나 各種古典에 精通하지 못하고 赤壁歌에 이

르러서는 더욱 虛漏한데가 있느니만큼 大家로 許與하기는 難顔하다

”12

라고 기록한 내용을 그대로 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 실제 정정렬은 폴리

돌레코드에서 제작한 적벽가 창극 음반인 

<화용도전집>의 녹음에도 

참여한 바 있다

.

박록주는 

5회 방송에서 중모리장단의 ‘춘향이 체념하고 우는 대목’부

터 진양조장단의 

‘춘향이 돌아와 이도령의 꿈을 꾸는 대목’까지 연창했

으며

, 그 구성은 아래와 같다.

전술한 바와 같이 특히 이별가 대목은 박록주 창본

, 박초선 창본․최

승희 창본 뿐 아니라

, 정정렬제 이별가를 토막소리로 전승한 여타 창자

들이 남긴 녹음과 비교해보더라도 대체로 비슷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소리 대목의 장단이나 구분

, 사설 표현 면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 박록주가 5회에 녹음한 이별가 부분 역시 박초선 창본․최승

12

정노식

, 뺷조선창극사뺸, 조선일보사 출판부, 1940, 21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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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제14호

박록주 창본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을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 듣고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 듣고

아니리

방자 답답하여

아니리

방자 보다 답답허여

중모리

춘향아 나는

중모리

도련님 하릴없이

희 창본과 비교해 서사의 흐름이 아예 바뀌거나 소리 대목 자체가 들고

나는 등의 결정적인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 다만 아니리 사설 또는 

소리 대목 사설이 부연 또는 생략되고

, 창과 아니리의 구분이 다르게 

되는 정도의 차이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첫째, 정정렬-김여란 계열

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는 이도령이 춘향을 요여

(腰輿)에 태워

갈 꾀를 내는 삽화가 아니리로 들어있는데

, 박록주의 녹음에는 없다. 

둘째

, 춘향이 이도령에게 글을 지어 주고, 이도령이 춘향에게 화전(花箋)

을 주는 장면이 박록주의 녹음에만 

‘춘향과 이도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

’에 삽입되어 있다. 중모리장단의 이 대목에서는 춘향과 이도령이 정

표를 교환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 박록주의 <춘향가>에서는 다른 창

본에도 보이는 지환과 석경 외에 독특하게 글과 화전이 부연되어 있다

그러나 박록주의 아세아레코드 

<춘향전>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

는바

, 박록주가 5회 녹음 시에 부연한 사설일 가능성이 높다. 또 여기서

는 방자의 재촉으로 이도령이 말에 오르고

, 춘향이 소식을 당부하는 장

면까지 

‘춘향과 이도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에 포함되는데 반해, 박초

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이 장면을 아래와 같이 별개의 아니리

, 소

리 대목으로 처리했다

. 박록주 창본에서는 하나의 소리 대목으로 부른 

내용을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더 세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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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75

셋째

, ‘춘향이 주저앉아 우는 대목’의 구성 및 사설이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과 다르다

{

중모리} ㉠ 

(…중략…) ㉡ 이리 앉아 울음을 울 제 향단이도 곁에 앉아 

사설을 하며 우는데

, 나어린 도련님이 어찌 그리 점잖으시고 사리 알고 인

정 있고 글 용하고 글씨 좋고 아무 장난을 하여도 어찌 그리 귀인있고 웃음

을 웃어도 어찌그리 복스럽게 웃으시더니

, 웃음소리를 언제 듣고 장난허

시는 그 형용을 언제 다시 뵈올거나

. 내 마음이 이럴 적에 애기씨 마음은 

오직하리

. 애기씨 우지마오. 그 도련님이 잊을 양반이 아니오니 한때 아니 

뵈오리까

. 이따. 야야. 듣기 싫다. 그런 줄이야 나도 안단마는 위선 아니 

답답하냐

. ㉢그때에 춘향모는 아무리 기다려도 춘향이가 아니오니 동림

숲을 찾어나와

, 아가 춘향아 들어가자. 늙은 어미는 생각잖고 어쩔라고 이

러느냐

. 우지 말고 들어가자. 

위에 인용한 사설은 박초선 창본에서 

5회 녹음 중 ‘춘향이 주저앉아 

우는 대목

’에 대응되는 부분이며, 최승희 창본의 사설도 위와 같다. ㉠

은 춘향이 주저앉아 우는 장면

, ㉡은 향단이 춘향을 달래는 장면, ㉢은 

춘향모가 춘향을 달래는 장면으로

, ㉠은 박록주 <춘향가>에서도 똑같

이 중모리장단의 창으로 불리나

, ㉡은 사설이 아예 없고, ㉢은 아니리

로 연행된다는 차이가 있다

.

6회 방송에서는 ‘기생점고하는 대목’을 화제로 한 대담이 진행되었

. 장사훈이 먼저 ‘기생점고하는 대목’의 명창으로 장수철과 채선을 언

급했는데

, 채선의 장기가 이 대목이었다는 사실은 뺷조선창극사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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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제14호

기록되어 있다

. 정노식이 뺷조선창극사뺸에서 장수철의 장기로 든 소리 

대목은 

‘기생점고하는 대목’ 뒤에 바로 이어지는 ‘군로사령이 춘향 잡으

러 가는 대목

(군로사령)

’인바 착오였던 것 같다.13 

장사훈

: 기생점고 같은 것도 퍽 재미있다고 보는데요, 그게 어떻습니

? 이것도 사람 사람에 따라서 제가 다를 수 있습니까?

박록주

: 기생점고는 제가 생각할 때는 거의 조가 한 조가 같을까 싶습니다.

장사훈

: 호방이 부르는 그 조가? 그 예를 들면 가령 우조면 우조, 아주 

열 사람이 불러도 특색이 없다

. 기생점고는 거의 같은 조로서 부른다 그 말

씀이죠

?

박록주

: 그러니까 기생점고라는 거는 계면을 못 부르기 땜에, 계면이란 

거는 이런 실픈 조를 계면이라고 하기 땜에 말입니다

. 그걸 못하고 이 기생

점고는 그저 평조

, 우조 이게 들어가기 땜에 거의 그 조는 다 같을 줄 압니다. 

박록주는 

‘기생점고하는 대목’은 부르는 창자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

가 아니라고 하였다

. 계면조 없이 평조와 우조로 일관하는 소리라는 것

이 그 이유였다

. 판소리에서 ‘제(制)가 다르다’라는 말은 사설이나 내용

이 다르다는 의미로도

, 선율이나 악조가 다르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 그런데 박록주는 둘 가운데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다른 대담에서도 드러난다

13

이는 

뺷조선창극사뺸 「장수철」 조의 “그더늠으로는 春香歌中 軍牢使令이 春香불르러 나가는 

대목

”이라는 기록, 「채선」 조의 “그더늠으로 春香歌中 妓生點考하는 場面”이라는 기록을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정노식, 위의 책, 「장수철」 조, 131쪽; 위의 책, 「채선」 조,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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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77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이 이도령 그리는 대목

(하루 가고)

중모리

하루 가고

신관사또 내려오는 대목

(신연맞이)

아니리

구관은 올라가고

자진모리

신연 맞어 나려올 적

기생점고하는 대목

(긴 기생점고)

아니리

사처에 들어

진양조

행수기 월선이

기생점고하는 대목

(자진 기생점고)

아니리

네 여보아라

중중모리

조운모우 양대선이

춘향모가 신관사또의 명을 거절하는 대목

아니리

기생 점고 다한 줄로

중모리

말씀 여쭙기는

군로사령이 춘향 잡으러 가는 대목

(군로사령)

아니리

글쎄 그러하기에

중중모리

군로사령이 나간다

행수기생이 춘향 부르러 가는 대목

아니리

군로사령을 내보냈다

중모리

행수기생이 나간다

춘향이 신관사또의 명을 거절하는 대목

아니리

사또 영창을

중모리

여보 사또님

신관사또가 춘향 나입하는 대목

아니리

사또가 이 말을

휘모리

골방의 수청 통인

집장사령이 형장 고르는 대목

아니리

이런 죽일 년

중모리

집장사령 거동 보아라

여기서는 중모리장단의 

‘춘향이 이도령 그리는 대목’부터 중모리장단

의 

‘집장사령이 형장 고르는 대목’까지의 소리가 아래와 같이 불리었다. 

6회 방송의 연창 대목 구성은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해당 대

목 구성과 비교해 차이가 적지 않았으며

, 대체로 박록주 창본 쪽이 정

정렬-김여란 계열의 창본에 비해 축약된 편이었다

. 첫째, 박록주 창본

에서는 

‘신관사또 내려오는 대목(신연맞이)’을 자진모리장단의 한 소리 

대목으로 구성한 데 반해

,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뒷부분의 

‘청도기 사설’을 휘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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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제14호

리했다

. 김여란이 1935년 3월에 녹음한 ‘신연맞이’(V.KJ-1035-A‧B)의 구

성을 살펴보면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특징과 일치한다. 그리고 

박록주가 이후에 녹음한 아세아레코드 

<춘향전> 음반에서도 김여란이

나 박초선

, 최승희와 같이 뒷부분의 ‘청도기 사설’을 휘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불렀다

.14 둘째, 박록주 창본에는 중모리장단으로 부르는 일

명 

‘갈까부다’가 빠져있다. 박초선 창본과 최승희 창본에는 ‘군로사령이 

춘향 잡으러 가는 대목

’과 ‘행수기생이 춘향 부르러 가는 대목’ 사이에 

‘갈까부다’가 삽입되어 있다. 셋째, 박록주 창본에는 춘향이 사령들을 

맞는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군로사령

(軍奴使令)을 내보냈다 허되 그런 게 아니라 (박록주 창본)

․이 대문에 이리 했다고 허나 그랬을 리가 있으리오

. 춘향 같은 열녀가 죽

으면 영 죽었지 사령에게 사정할 리도 없으려니와 사또가 춘향에게 혹헌 마

음 사령을 보내어 잡아오라 했을 리가 있으리요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

세 창본 모두 변사또가 군로사령을 내보내고 춘향이 사령들을 맞는 장

면이 온당하지 않다는 내용의 아니리를 위와 같이 넣었다

. 그러나 박록

주 창본에서는 이 장면을 부정하면서 아예 소리 대목까지 생략한 반면

박초선 창본과 최승희 창본에서는 춘향이 사령들을 맞는 장면을 중모리

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부른 뒤에 위의 아니리를 삽입했다

. 셋째, ‘춘향이 

신관사또의 명을 거절하는 대목

’의 사설이 세 창본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14

송미경

, 앞의 글, 2014, 414~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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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79

{

중모리}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기생의 자식

은 충효

(忠孝)도 없고 열녀(烈女)가 없소? 진주(晉州) 기생 의암부인(義岩夫

),  평양(平壤)으 월선부인(月仙夫人)  충열(忠烈)로 유전(遺傳)허고,  안동

(安東) 기생 일지홍(一枝紅)이 산 열녀문(烈女門)을 세웠으니, 충효도 없고 

열녀가 없단 말이요

? ㉡사또님 전(前) 소녀 원정(願情) 다시금 아로리다. 

존귀

(尊貴)하신 성덕(盛德)으로 이내 의지(意志) 모르시요? 무론남녀(毋論

男女

)허고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님전  태여나 심정원기(心情元氣)는 

천지

(天地)어 떳떳한 줄 소녀 이무 아는지라. 심정이 불충(不忠)허고 비첩

(婢妾)이 무정(無情)허면 악막대어귀신(惡莫大於鬼神)이니 죽이거나 살리

거나 처분대로 하옵소서

.

6회 녹음에서 연창된 사설이다. 여기서는 이 대목 뒤에 바로 ‘신관사또

가 춘향 나입하는 대목

’이 이어진다. 박초선 창본에서는 이 대목 뒤에 변

사또가 절

(節)

 자로 춘향을 으르는 내용의 아니리, 춘향이 ‘충신불사이군

(忠臣 不事二君)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를 들어 수청을 거부하는 내용의 

중모리 소리 대목이 이어진다

. 최승희 창본의 이 장면은 사설 및 대목 구

성이 전혀 다르다

. 춘향이 변사또의 애부(愛夫) 말을 부정하며 자신의 지

조를 아뢰는 내용의 중모리 대목

, 변사또가 춘향을 기특히 여기며 다시 

수청 들 것을 명하는 내용의 아니리

, 춘향이 이를 거절하는 내용의 중중

모리 대목

, 변사또가 절(節) 자로 춘향을 으르는 내용의 아니리, 춘향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를 들어 수청을 거

부하는 내용의 중중모리 대목으로 분화되어 있는 것이다

. 이러한 구성과 

비교해 박록주의 위 대목이 상대적으로 축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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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제14호

7회 방송에서는 ‘춘향이 매 맞는 대목’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설명과 대

담이 전개되었다

. 박록주는 대담에서 자신이 송만갑과 정정렬에게 배운 

일명 

‘십장가’를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네 번째 매를 맞는 부분은 송만갑

제로

,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정정렬제로 불렀다는 것인데, 장사훈의 

요청에 따라 그 부분을 각각 정정렬제와 송만갑제로 불러 비교해 보였다

박록주

: 정정렬 선생님 제를 먼저 하겠습니다. 정선생님 소리제는 ‘넷째 

낱을 딱

! 사실을 돌아보라. 소녀를 이리 말고, 사지를 찢어서 사대문에다 걸

드래도 가망없고 무가내오

.’ 이것이.

장사훈

: 정정렬 선생제고? 고다음에는?

박록주

: 송감찰 선생님 제는 ‘소녀를 이리 말고, 사지를 찢어서 사대문에

다 걸드래도 가망없고 무가내오

’, 

장사훈

: 그 아주 확실히 다르군요. 제가 듣기에는 제 판단이 옳을지는 

몰라도요

. 이것이 십장가, 더군다나 매를 맞고 호소하는 거 아니에요? 그

래서 지금 두 소리를 들어보니까 정선생 제보다는 송선생 제가 낫군요

. 내 

판단이 그렇습니다

. 저 어떠신지. 왜그러냐면은 송감찰은 제가 아주 호소

하는 제로서

, 악이 받치고 호소하고 이러한 그 소리가 나오는데, 이 저 정

선생 제에서는 너무 평탄해서 그런 것이 좀 기분이 안드는군요

.

박록주

: 그래서 거기는 송감찰 선생님 제로 합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 박록주가 예로 든 정정렬제와 송만갑

제의 차이는 음악적인 데 있다

. 같은 계면조이나, 송만갑제의 경우 정

정렬제와 비교해 부침새의 기교 없이 대마디대장단과 힘 있는 성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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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81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이 매 맞는 대목

(십장가)

진양조

부러진 형장 가지는

남원 한량이 춘향을 동정하는 대목

(남원 한량)

중모리

엎쳤든 형리도

춘향모 달려와 발악하는 대목

아니리

그때야 춘향이는

자진모리

춘향 어머니 들온다

기생들이 들어와 춘향 구완하는

+한 기생이 춤추는 대목

아니리

저년 독하기는

중중모리

여러 기생들이 들어온다

남원 사람들이 춘향을 동정하고 돕는 대목

아니리

그때야 사또께서는

중모리

부중 남녀노소

춘향이 옥에서 자탄하다 귀신 울음 듣는 대목

(천지 삼겨)

진양조

천지 삼겨

로 춘향의 호소를 표현하는 차이가 있었고

, 박록주는 이러한 특징을 지

닌 송만갑제를 

‘십장가’ 중반부에 부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곡에 변화

를 준 것이다

.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박록주가 두 제(制)의 음

악적 차이를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이 부분을 같은 사설로 불러 보였다

는 것이다

. 실제 송만갑이 유성기 음반에 남긴 ‘십장가’(닛노홍 K187-B)

의 사설은 

“네째 낱을 부쳐 노니, 사짜로 아로리다. 사대부 양반님은 사

기사를 모르시요

?”로, 박록주가 부른 사설과 전혀 다르다. 박록주가 사

설보다는 음악적 특징을 기준으로 판소리 제를 인식했음을 

6회 대담에 

이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7회 방송에서는 진양조장단의 ‘춘향이 매 맞는 대목(십장가)’부터 진

양조장단의 

‘춘향이 옥에서 자탄하다 귀신 울음 듣는 대목(천지 삼겨)’까

지 연창되었다

위 대목에서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과 차

이가 나타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박록주 창본의 ‘남원 한량이 

춘향을 동정하는 대목

’에는 매를 때린 집장사령이 탄식하는 장면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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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제14호

략되어 있다

. 박초선 창본과 최승희 창본에만 “군복자락 끌어나 눈물 

흔적 씻으면서

, 못허겄구나 못허것네. 사람의 자신은 못하것네. 나가서 

빌어먹드래도 아서라 구실은 못허것네

. 사십 년 관문출입지후로 이런 

매질을 처음 보았네

”라는 사설이 부연되어 있다. 둘째, ‘춘향모 달려와 

발악하는 대목

’이 박록주 창본에는 자진모리장단, 박초선 창본과 최승

희 창본에는 중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다

. 박록주는 아세아레코드 <춘

향전

>에서 이 대목을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른바, 때에 따라 장단을 달

리 했던 대목임을 알 수 있다

. 셋째, 박록주 창본의 일명 ‘천지 삼겨’ 대

목에만 춘향이 거울을 보며 자탄하는 장면이 없다

. 박초선 창본․최승

희 창본에는 

“거울을 들고보니 예전 얼굴이 간 곳 없고 치마를 둘러보

니 예전 허리가 아니로구나

. 도련님이 이제라도 나를 보면 뉘긴 줄을 

모르겠구나

. 이렇듯 울음을 울며 세월을 보내는구나”라는 사설이 추가

되어 있다

. 박록주가 일제강점기에 <빅타판 춘향전> 녹음에 참여해 독

(獨唱)으로 부른 

‘천지 삼겨’(V.KJ-1123-A․B), 아세아레코드 <춘향전>의 

‘천지 삼겨’에도 이 사설은 없다. 

8회부터 10회까지의 방송에서는 장사훈과 박록주의 대담 대신, 장사

훈의 짤막한 해설이 배치되었다

. 진행 방식이 이와 같이 조정된 배경에 

대해 장사훈은 

10회 방송에서 “제가 이렇게 그 춘향전을 소개하는데, 

제가 해설 답

(달)지도 않고 또 얘기도 제가 몇 마디 하지 않습니다

. 그 

이유는 이것이 소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시간도 없고

또 하나는 그 소리하는 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만도 소리 시간 

때문에 그러한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 그래서 짤막짤막하게 소

개만 해드리는 것입니다

”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장사훈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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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83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이 황릉묘 다녀오는 꿈을 꾸는 대목

(황릉묘)

중모리

일야는 꿈을 비니

기생 난향이가 춘향 달래는 대목

아니리

사또는 춘향을 

중중모리

기생 중 난행이

춘향이 난향의 설득을 거절하는 대목

중모리

춘향이 이 말 듣고

이도령이 장원급제하고 어사 제수받는 대목

(과거장)

아니리

그때야 몽룡씨는

자진모리

서책을 품에 품고

이어사가 전라도 내려오는 대목

(어사노정기)

휘모리

남대문 밖 썩 내달라

이어사가 어사 행장 차리는 대목

중모리

각처로다 분발허고

방자가 춘향의 편지를 들고 한양 올라가는 대목

진양조

건넌 비탈 좁은 길로

설이 대부분 피상적인 내용인데다 종종 실수까지 있었던 점을 고려하

, 박록주와의 대담이 생략된 것이 매우 아쉽다.

8회 해설에서 장사훈은 이날 연창될 부분의 줄거리와 ‘쑥대머리’를 

소개했다

. ‘쑥대머리’ 대목의 사설을 낭독하고 그 대목에 삽입된 “행궁

견월상심색이요 야우문령단장성

”이라는 한시 구절의 의미를 풀이해주

었는데

, 이는 박록주가 부르는 정정렬 바디 <춘향가>에서 ‘쑥대머리’가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데서 나온 실수이다

. 박초선 창

본․최승희 창본에도 

‘쑥대머리’가 없는바, 이것은 정정렬제 <춘향가>

의 특색이다

. 진행상의 착오였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별도의 

정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이어지는 판소리 연창 시간에는 중모리장단의 

‘춘향이 황릉묘 다녀

오는 꿈을 꾸는 대목

’부터 진양조장단의 ‘방자가 춘향의 편지를 들고 한

양 올라가는 대목

’까지 불렸다. 

이 부분의 대목 구성은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과 같았다

. ‘춘향이 

황릉묘 다녀오는 꿈을 꾸는 대목

’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뀌는 정도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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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제14호

이가 있었다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을 포함한 여타 <춘향가>의 이 

대목에는 척부인

(戚夫人)이 등장하는데

, 박록주 창본에서만 척부인 대신 

오자서

(伍子胥)가 등장한다

. 황릉묘가 ‘만고열녀(萬古烈女)’가 모이는 상징

적인 공간임을 고려할 때

, 이는 녹음 당시의 실수가 아닐까 한다.

9회 방송의 해설에서 장사훈은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일곱 마당이 

실전된 데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 ‘건실(健實)하지 못한’ 내용에서 

실전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데

, 이른바 유식 계급의 환영을 받은 

<춘향가>와 <심청가>는 “세련된 가사”로 계속 개작되면서 발전한 반면, 
<변강쇠타령>과 같이 “추잡한 말”을 쓰는 판소리는 점차 불리지 않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 또 이날 방송될 <춘향가>의 줄거리를 제시했는데, 

그 순서가 실제 연창된 것과 달랐다

. 정정렬제 <춘향가>에서는 어사가 

방자를 만나 춘향의 편지를 읽는 대목이 모 심는 농부들의 노래를 듣는 

대목보다 앞에 위치한다

. 그런데 장사훈은 어사가 남원에 당도해 농부

들의 노래를 들은 다음

, 한양으로 올라가는 방자를 만난다고 그 순서를 

바꾸어 이야기한 것이다

. 또 어사가 농부들이 춘향에 대해 주고받는 대

화를 듣는다는 해설 내용과 달리

, 박록주의 <춘향가>에서는 농부들의 

대화에 

‘춘향’이라는 이름 두 글자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어사

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은 오로지 남원의 사정을 탐문하기 위

함이다

.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장사훈은 이 방송의 해설을 위해 뺷증보 

가요집성

뺸에 수록된 

<춘향가> 사설을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9회 방송에서 연창된 부분은 중모리장단의 ‘어사가 방자를 만나 춘

향의 편지를 읽는 대목

’부터 진양조장단의 ‘이어사가 춘향집을 찾아가

는 대목

(박석티)

’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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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85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이어사가 방자를 만나 춘향의 편지를 읽는 대목

아니리

어사또 그놈을 

중모리

백운홍수 깊은 곳에

방자가 이어사께 문안 올리는 대목

아니리

방자 옆에 섰다

중모리

소인 방자놈 문안이요

농부들이 농부가 부르는 대목

(긴 농부가)

아니리

이애 방자야

중모리

두리둥 둥둥둥

농부들이 농부가 부르는 대목

(자진 농부가)

중중모리

에야어이여 상사뒤야

이어사가 춘향집을 찾아가는 대목

(박석티)

아니리

어사또 민정을

진양조

박석티를 올라서서

박록주가 녹음한 

<춘향가> 위 부분은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과 

소리 대목 구성이 동일했으나

,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두 창본에는 없

는 아니리가 박록주의 녹음에만 아래와 같이 삽입되어 있었다

㉮ {아니리}

 어사또 그놈을 지내 놓고 가만히 서서 들어보니 분명히 춘

향 편지 가지고 가는 놈이거든

. “이얘야. 아나 이얘야” 부르니 그놈 흘끗이 

돌아보면 대답 않고 서 있거날

, “이 자식 어른이 부르는데 오는 것이 옳지, 

가만히 서서 보는 건 웬일이야

?” 이놈은 남원읍(南原邑)에서 노름바탕으로 

자라난 놈이라

, 어른이나 아해나 지가 꼭 이겨야만 잘난 줄 아는 놈이라. 

어사또를 바라보니 하도 헐게 차려 제 마음에 더 가소롭겠다

. 어사또 택 밑

에 바싹 들어서면

, “바쁜데 가는 사람을 왜 부르오?” “이 자식 너 어데 사느

?” “나 살기는 사람 많이 살다 다 죽어 버리고 나 혼자 사는 데 사요.” “이 

자식 이 시상

[世上]에 혼자 사는 데가 어데 있단 말이냐?” “나만 산당께 혼

자 산 데 아니요

?” “이 자식이 남원 산단 말을 나만 산다는 말이로구나. 그

. 너 어데 가느냐?”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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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제14호

㉯ {아니리}

 어사또 민정을 살피난데 쉬여 앉은 농부들을 행[向]하야, “실

례하오

.” “좋소.” 어사또 묻는 말이, “본관(本官)이 명관(名官)이지요?” 농부

가 대답하되

, “우리 고을 사망(四妄)이 물밀 듯하오.” “어찌 하야 그렇단 말

이요

?” “우리 고을 원님은 노망(老妄), 책방은 주망(酒妄), 아전(衙前) 권속

(眷屬)은 원망(怨望), 그 아니 사망이 물밀 듯허오?” “허허. 민정(民政)이 말 

아니요그려

.  그러면 구관(舊官)  사또는 원 정치를 어떻게 하였다 하오?” 

“구관이야말로 짝 없는 명관이지요. 우리 남원 사십팔면(四十八面)에 백성

들이 구관비

(舊官碑)를 해 세우자고 공론(公論)이 이러하오.” 어사또 세세

(細細) 탐정(探偵)을 헌 연후(然後)에, “여러분. 평안히 계시오.” “잘 가시

.” 그때여 어사또 박석티를 넘어 가는데, 

는 이어사가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올라가던 방자를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 ‘남원 산다’는 말을 ‘나만 산다’라고 어긋지게 이야기하는 방

자의 대사에 재담적 성격이 짙게 나타난다

. 농부가 대목 후에 삽입되는 

에도 언어유희가 사용되고 있다

. “원님은 노망(老妄), 책방은 주망(酒

)

, 아전(衙前) 권속(眷屬)은 원망(怨望)”이니 “우리 고을 사망(四妄)이 물밀 

”한다는 농부의 말에서 그 특징을 볼 수 있다. 재담적․언어유희적인 

위의 아니리가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는 삽입되어 있지 않은데서

정정렬-박록주 계열과 정정렬-김여란 계열 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10회 방송의 해설에서 장사훈은 ‘이도령이 춘향집에 당도하는 대목’

의 명창으로 김록주와 백점택을 들었다

. 이는 6회 방송 때와 마찬가지

로 

뺷조선창극사뺸의 기록을 참조한 것이다

.15 그리고 8회 방송에서 ‘쑥

대머리

’의 사설을 읽어주었던 것처럼, 10회 방송에서는 어사와 장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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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87

장사훈이 읽은 사설

박록주가 녹음한 사설

“이리오너라 이리오너라 이리오너라” “향단아 문 밖에서 
어떤 사람이 술 잔뜩 먹고 주정을 하나 토담 무너지는 

소리가 난다.” “누구를 찾으세요

?” “너으 마나님 좀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마나님 좀 나오시라고 

여쭈래요

.” “나 없다고 따 보내라 따 보내.” “마나님 안 

계시다고 따 보내래요

.” “따 보내라는 양반 좀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

밖에서 “이리 오느라. 그 아무도 없느냐?” 춘향모 깜짝 

놀래여, “향단아. 이게 무슨 소리냐? 너으 아기씨가 

돌아가실랴고 성주지신이 모두 발동을 허였구나. 좀 

나가 보고 오너라.” 향단이 충충 나가, “그 누구를 

찾으세요

?” “너으 마나님 좀 잠시 뵈옵자고 여쭈어라.” 

향단이 들어가, “웬 양반이 마나님 잠깐 뵈옵자고 

여쭈래요

.” “나 없다고 따 보내라.” 향단이 나가, “우리 

마나님이 없다고 따 보내래요.” “딸 것 없으니 잠시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 

향단에게 말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의 아니리 사설을 읽어주었다

. 그러

나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 사설의 표현이 동일한 곳은 밑줄 

친 부분뿐이다

. 장사훈이 읽은 사설과 박록주가 실제 부른 사설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장사훈이 읽은 사설은 이창배의 

뺷증보 가요집성뺸

16에 실린 

<춘향가> 

사설이었다

. 그리고 앞의 9회 방송에서 장사훈이 박록주의 실제 녹음 내

용과 다르게 소개했던 줄거리 역시 

뺷증보 가요집성뺸에 수록된 해당 장

면의 줄거리와 같았다

. 장사훈이 박록주가 연창하는 정정렬제 <춘향가>

에 대해 해설하면서

, 뺷증보 가요집성뺸의 사설을 참조해 설명한 것은 적

절하지 못했다

<춘향가> 연창은 중중모리장단의 ‘이어사가 춘향모를 불러내는 대

’부터 중모리장단의 ‘옥에 갇힌 춘향이 이어사와 상봉하는 대목’까지 

진행되었으며

, 대목 구성은 아래의 표와 같았다. 

15

뺷조선창극사뺸  백점택」 조의 “特長處로는 春香傳中 御使道가 南原府中에 들어서서 民情을 
視察한後 黃昏時에 春香집 門前에 當到한 대목

”이라는 기록, 「김록주」 조의 “春香歌에 長하

고 그

中 御使道가 春香門前 當到하니 墻垣은 頹落하고 庭園은 荒凉한데 階下의 靑尨만이 依舊

히 나와서 짓는 

意味의 대목을 잘하였다

”라는 기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정노식, 앞

의 책

, 「백점택」 조, 112쪽; 위의 책, 「김록주」 조, 246쪽). 

16

이창배 편

, 뺷증보 가요집성뺸, 청구고전성악학원, 1961, 43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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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제14호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이어사와 춘향모 상봉하는 대목

(어사와 장모)

아니리

어사또 비감을

중중모리

그 누구가 날 찾나

향단이 이어사께 문안 올리는 대목

아니리

향단아 예

중모리

소녀 향단이 문안이요

춘향모가 이어사 보고 실망하는 대목

아니리

오냐 향단이도

중모리

잘 되였네

향단이 춘향모 만류하는 대목

아니리

어사또 여보게

중모리

여보 마누라님

이어사가 옥중 춘향 찾아가는 대목

(초경 이경)

아니리

춘향모 밥 준단

진양조

초경 이경

옥중 춘향이 이어사와 상봉하는 대목

아니리

그때야 춘향 모친

중모리

형장 맞인 다리

이 부분에 나타나는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우선 ‘향단이 이어

사께 문안 올리는 대목

’과 ‘향단이 춘향모 만류하는 대목’이 박록주 창본,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세 창본 가운데 박록주 창본에만 들어있다

㉮ {중모리}

 “소녀 상단 문안이요. 대감마님 행차 시에 기체(氣體) 안녕 

허옵시면

, 서방님도 먼먼 길에 노독(路毒)이나 없이 오시니까? 어짜시랴

? 어짜시랴오? 옥중 아씨를 어짜시랴오?”

㉯ {중모리}

 “여보 마누라님 그리 마오. 현순백결(懸鶉百結)이 아무리 되

야도 서방님 마음만 못 하리다

. 쌀 한 줌이면 밥을 짓고, 나무 한 뭇이면은 

불 때이지

. 서방님 괄세[恝視]하였단 말을 아씨께서 들으시면 옥중(獄中) 

자결

(自決)이 될 것이니, 서방님 괄시 너무 마옵소서.” 옥 있는 곳 바라보

, “아이고 아가씨. 아가씨가 무삼 죄가 있소? 살려주오. 살려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주오

. 아까운 우리 아가씨를 살려주오.” 서방님. “오냐. 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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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89

마라

. 여봐라 상단아. 우지 마라. 천붕우출(天崩牛出)이라 솟아날 궁기가 

있는 법이니라

. 여봐라 상단아. 우지를 마라.”

판소리 작품에서는 해당 등장인물이 화자

(話者)가 되는

, 또는 그 인물

이 주인공이 되는 사설의 여부․길이가 인물의 비중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 위의 ‘향단이 이어사께 문안 올리는 대목’(㉮)과 ‘향단이 춘향모 만

류하는 대목

’(㉯)이 박록주 창본에만 보이는바,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두 창본에 비해 박록주 창본에서 향단이라는 인물의 비중을 높게 두었다

고 볼 수 있다

. ㉮와 ㉯는 보성소리 창본, 정광수 창본, 강도근 창본 등에

도 삽입되어 있으며

, 정정렬은 이 대목을 녹음으로 남긴 일이 없다. 그래

서 이들이 정정렬제 

<춘향가>에 원래 들어있었던 대목인지, 박록주가 

다른 바디를 참조해 새롭게 넣은 대목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이어사가 춘향모 앞에서 능청을 떠는 장면에서 연

행되는 아니리 ㉮

, ㉯가 박록주 창본에만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아니리}

 “오냐 상단이도 많이 컸다.” 이때야 춘향모친은, “상단아. 서

방님이 오셨으니 인제는 아무 일이 없이 잘되얐다

. 우선 촛불 좀 가져오너

. 기다리고 바래든 우리 사우 얼굴 좀 보겠다.” “내일 밝은데 날 보소.” “자

네는 대장부 사내라 속이 넉넉허여 그러하지만은 나는 한시가 급하네

.” “꼭 

보아야 겠는가

?” “어이. 이리 좀 들오소.” “정녕히 보아야겠나?” “꼭 봐야겠

.” “자 그럼 마음대로 실컨 보소.” 춘향모가 어사를 얼굴을 보더니, “허허. 

자네가 왜 이렇게 되였는가

?” 어사또, “자네가 물으니 말이세만은 아버지께

서 서울 올라가신 후에 고을 살이할 때에 전백

(錢百)이나 모았지마는 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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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제14호

소리 들은 돈이라 어찌 헤픈지 어데로 다 가고 가세

(家勢)가 말이 아닌 지경

이 되야 벼살길은 떨어져서 아버지는 학장

(學長)질을 나가시고 어머니는 헐 

수 없어 친정으로 가시고 나도 외가로 갈 터이나 염치

(廉恥)에 갈 수 없지. 

친구 집에 찾어다니면 얻어먹고 다니는데

, 들으니 춘향이가 남원부사(南原

府使

) 수청(守廳)을 들어 잘 되였다 하기에 전백이나 얻을까 하고 불원천리

(不遠千里)하고 내려왔더니, 여기를 와서 보니 대중이 틀렸으니 내 신세가 

말 아닐세

.” 춘향 모친 이 말을 듣고 어사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마는, 

㉯ {아니리}

 춘향모 밥 준단 말을 듣고, “뭐 어째?” 그때여 상단이 거동 봐

. 부엌으로 들어가서 남은 밥 정히 차려 풋고초 단간장에 절이 김치 놓아 퉁

퉁 나오더니

, “서방님 진지 잡수세요. 더운 진지 짓킬 동안 우선 요가[療飢]나 

하옵소서

.” “오냐 상단아. 잘 먹으마. 여보 장모. 밥 좀 같이 먹세.” “싫네. 자네

나 많이 먹소

.” 어사또 두어 숟가락에 밥을 뭉쳐 먹는 체 하고, “에 잘 먹었다. 

이 사람아

. 책실에 있을 때는 용미봉탕(龍味鳳湯)에 잣죽을 먹어도 체증(滯

)이 있더니 신세가 궁해지니 무쇠 끝이라도 먹기만 먹으면 녹데그려.” “자

네 내 집에 있지 말고 어데로 가소

. 사람이 저 꼴이 되며는 손버릇까지 고약허

느니

.” “여보게 장모. 밥을 먹고 나니 춘향이 생각이 나네. 옥에 좀 가세.” “아

따 이 사람아

. 춘향이가 자네를 모양을 보면은 기절(氣絶)을 하겠네. 나 상단

이 데리고 어데 좀 갔다 올 테니 자네 여기 있어 집이나 좀 보소

.” “내가 서울서 

여기까지 왔을 때 장모 집 봐주러 온 줄 아나

? 두 말 말고 가세. 옥에 좀 가세.” 

상단이 들어오면

, “파루 치거든 가사이다.” “오. 또 파루 쳐야 가느냐?” 

앞의 

9회 방송분에 대한 논의에서도 박록주 창본에만 재담적․언어

유희적인 아니리가 삽입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는데

, 여기서도 유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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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91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춘향이 이어사에게 유언 남기는 대목

(춘향 유언)

중모리

내일 본관 생신

신관사또의 생일잔치 준비하는 대목

아니리

이애 춘향아

자진모리

각읍 수령 모아들 제

신관사또 생일잔치하는 풍경 이르는 대목

중모리

본관 사또 주인이라

이어사가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대목

아니리

기생이 그때 하나

중모리

그때에 어사또는

이어사가 술상 받는 대목

아니리

운봉은 무변에

자진모리

하인 버릇 괘씸하다

이어사가 어사출도하는 대목

(어사출도)

아니리

그때여 어사또가

자진모리

글 읊기 지듯 마듯

특징이 발견된다

. ㉮와 ㉯ 모두 이도령이 춘향모에게 자신의 처지를 거

짓말로 뻔뻔하게 둘러대는 재담이다

. 따라서 이미 이도령이 어사로 내

려온 사실을 알고 있는 청중들에게는 이 내용 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는 

기능을 한다

11회 방송부터는 다시 대담의 형식을 끌어왔으나, 이전의 해설과 큰 

차이가 없었다

. 진행을 맡은 장사훈이 “어사출도는 어떻게 됩니까? 어

사출도도 되지요

, 이번 회에?”, “말을 거꾸로 타고 도망들 치고 운봉은 

미리 알아채고 그러는 거죠

?”, “여기 이제 시조가 나오는데 시조는 역시 

사또한테 잔을 올릴 때 부르는 거죠

?” 등의 질문을 하고, 박록주가 그에 

“예”라고 짧게 답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장사훈은 대담 

후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중략…)”로 시작되는 ‘금준미주시’의 뜻

을 풀이했다

이날 방송에서 불린 대목은 중모리장단의 

‘춘향이 이어사에게 유언 

남기는 대목

(춘향 유언)

’부터 자진모리장단의 ‘이어사가 어사출또하는 

대목

(어사출도)

’까지로, 그 구성은 아래에 표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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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제14호

위 부분에 해당하는 소리 대목 구성은 정정렬-박록주 계열의 박록주 

창본

, 그리고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 간에 

차이가 큰 편이다

. 사설은 거의 비슷하나, 창과 아니리의 구분, 장단의 

구분이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 우선 운봉영장이 이어사를 생일잔치에 

들이는 장면이 박록주 창본에서는 아니리로 연행되나

,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에서는 

“운봉이 무변의 (…중략…)”로 시작되는 중모리장

단의 소리 대목으로 되어 있다

. 그리고 ‘이어사가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대목

’의 경우, 박록주 창본에서는 중모리장단으로, 박초선 창본․최승

희 창본에서는 자진모리장단으로 불리며

, ‘이어사가 술상 받는 대목’의 

경우

, 박록주 창본에서는 자진모리장단,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

서는 중모리장단으로 불린다

. 정정렬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빅타판 춘

향전

>이나 <오케판 춘향전>의 구성을 살펴보면,17 운봉영장이 이어사

를 생일잔치에 들이는 장면과 

‘이어사가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대목’은 

아니리로

, ‘이어사가 술상 받는 대목’은 자진모리장단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정정렬제에 더 가까운 쪽은 박록주 창본일 가능성이 크다

또 기생이 권주가를 부르는 장면이 박록주 창본에만 삽입되어 있는 

점도 주목된다

. 박록주 창본의 ‘신관사또 생일잔치하는 풍경 이르는 대

’과 ‘이어사가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대목’ 사이에는 한 기생이 “진실

로 이 잔 곧 잡으시면 소원성취

”라는 가사의 권주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 그리고 뒤의 ‘이어사가 술상 받는 대목’과 ‘이어사가 어사출도하

17

<빅타판 춘향전> 35의 ‘府使生日宴’(V.KJ-1128-A․B)과 <오케판 춘향전> 후편 13의 ‘本官
生日잔채

’(O.12034-A․B)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설 및 장단의 확인은 한국음반아

카이브연구단

, 뺷한국 유성기음반뺸 2․3, 한걸음더, 20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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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93

는 대목

(어사출도)

’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사설이 들어 있다.

{

아니리}

 (…상략…) 또 한 번 꾹 찌르며, “여보 운봉.” 운봉이 깜짝 놀래

, “아니 이 양반이 미쳤소? 왜 그러오?” “저기 저 곱게 단장(丹粧)허고 있

는 기생

(妓生) 불러 권주가(勸酒歌) 하나 들려주오.” “여봐라. 이런 잔치에

는 저런 과객

(過客) 양반에 대접을 잘 해야 되는 법이다. 너 이리 와서 권주

가 해드려라

.” 기생이 난색(難色)하며, “간밤 꿈에 바가지를 쓰고 벼락을 맞

아 뵈이드니 별꼴을 다 보겠구려

.” 기생이 권주가를 한 마디 부르는데, 

{

시조창}

 “이 술 한 잔을 잡수시면 평생을 이 모양 이 꼴로.” 

{

아니리}

 어사또 허허 웃고, “야 내가 평생 이 꼴 이 모양으로 지내면 죽

을 놈 많겠다

. 그 권주가(勸酒歌) 내게 적당한 말이다. 이 술을 그저 먹겠느

? 너와 분배주(分配酒) 허자. 여러분도 같이 나누어 잡숩시다.” 하면 술

을 좌중

(座中)에 뿌려놓니 좌중이 요란하것다. (…하략…) 

초라한 차림의 이어사 앞으로 끌려가 마지못해 부르는 위의 권주가는 

앞서 기생이 정식으로 불렀던 권주가와 대비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기생이 투덜거리는 부분이나 놀림조로 권주가를 부르는 부분

, 이어사가 

술을 좌중에 흩뿌리는 부분의 사설은 재담의 성격을 띠는바

, 이런 사설

이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창본에는 없고 정정렬-박록주의 박록주 창본

에만 삽입되는 특징을 

9회․10회 방송에 이어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마지막 

12회 방송에서는 대담이 판소리 연창 이후에 진행되었다. 기

독교방송국의 최성진 음악과장이 참여한 이날 대담에서는 기독교방송

이 진행한 판소리 다섯 마당의 완창 녹음 연속 방송에 대한 자체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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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제14호

가 이루어졌다

최성진

: 주로 양악만 취급해오던 우리 KY가 우리의 일찌감치 찾아야 될 

우리의 독보적인 이것을 시간적으로 생각해선 뒤늦은 감이 있으나

, 그래

도 이만침 우리가 우리의 대표적인 판소리 다섯 개를 이제 완전히 전판을 했

는 건 방송국 여러분들의 협력하고 또 사회인사들의 보이지 않는 그 아

마 힘으로 아마 됐다고 저는 봅니다

박록주의 본 

<춘향가> 자료가 현재 소장처인 KBS가 아니라 기독교

방송에서 녹음되었다는 사실은 최성진이 술회한 위의 발언에서 확인

한 것이다

. 최성진이 말한 “주로 양악만 취급해오던 우리 KY”가 기독교

방송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 기독교방송은 개국 초부터 <명곡을 

찾아서

>, <뮤직홀> 등의 음악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클래식

과 세미클래식 위주로 편성한 여러 프로그램이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

으면서

, 기독교방송 하면 클래식 위주의 방송, 양악(洋樂) 위주의 방송

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 또 1954년에 설립된 기독교방

송의 호출부호가 

HLKY였는데, 당시에는 호출부호를 줄여 부르는 것이 

상례

(常例)였다

. 서울중앙방송을 KA, 국제방송을 CA, 문화방송을 KV라

고 표기하는 식이었다

. 따라서 최성진이 언급한 KY는 HLKY의 준말로, 

기독교방송을 지칭한다

.18 

18

송미경

, 앞의 글, 2014, 386~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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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95

장사훈

: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KA에서도 김소희씨를 비롯해서 몇 

분의 전판 녹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성진

: 단창(單唱)이 아니고?

장사훈

: 단창이죠.  수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제가 알고 있고.  (…중

략…

) 아주 이건 참 귀한 존잰데요, 국립국악원에서 작고한 임방울 씨가 

이분이 적벽가를 전판 녹음한 것이 있답니다

. 조금 흠은 소리 중간중간에 

청중들의 잡음들 이런 것이 들어있고

. (…중략…) KY에서는 이건 참 순전

히 이건 하나의 사업이요

, 하나의 또 뭐라고 하나 오리지날한 것을 넣어두

자 이렇게 된 것이 돼서 이만침 잘된 것도 아마 드물다고 봅니다

위의 대담에 따르면

, 이미 1963년 이전에 완창 판소리 기록화 작업의 

일환으로 서울방송

(KA, 현 KBS)에서 김소희의 

<춘향가> 외 몇 편이 방송

되었으며

,  국립국악원에서는 임방울의 적벽가 공연이 녹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리고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시도한 완창 판소리 기

록화 작업은

, 현전하는 다섯 마당의 판소리 모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 

잡음이 섞이지 않은 양질의 녹음이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

었다

.19 

박록주

: 그리고 지가 이제 말씀 하나 드릴 것은 끝으로 최선생님이라든

지 참 여러 가지 미안한 일이 많습니다마는 항상 지 맘에 이 소리를 

<춘향

>를 옇으면서도 생각에 내가 이거 60 평생에 남은 것이 이것뿐이다 하며 

19

위의 글

, 416~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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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제14호

옇으며 잘 옇겠다는 이런 마음으로 옇었으나 옇고 나서 듣고 생각할 때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 (…중략…) 예전 선생님 말씀이 국창들 말씀을 들으면 

<춘향가>나 <심청가>나 바탕소리를 할 때 열 바탕에 한 번 국창 소리 듣기

가 어렵다는 거죠

. 열 바탕에 한 번 잘하기가 어려운건데, 더욱이나 여자로

서는 남자들과 달라서 남자면 우리 나이에 지금 국창 소리 들을 땝니다

. 공

부를 할 때고

. 그런데 여자는 나이 60이 되면 남자의 지금 80 정도나 이렇게 

되거든요

. 기운으로서요. 그런 것 저는 생각에 이번에 옇게 되고 방송국에

서 춘향전을 옇으면은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잘 옇겠다

고 했는데 그때 마침 또 몸이 불편했고 이래서 옇고 나서 지금 그 방송 나오

는 거 들으면 내가 왜 그렇게 했는고 하는 생각에 후회가 많습니다

. 그래서 

다시 한 번 옇어드리겠습니다 하는 이런 생각도 있고 

(…중략…) 또 듣는 여

러 청취자 여러분께도 내가 죄송한 일이 많습니다

. 이거 박록주가 이래서 

이 명창 소리를 듣는다는 게 부끄러운 생각이 내가 많습니다

.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이게 마지막이 되겠지요

. 다시 이걸 고쳐서 옇어 달라고 그랬이

면 저는 언제든지 다시 고쳐서 옇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록주는 마지막회 대담을 마무리하며 위와 같이 그 심회를 

담담하게 밝혔다

. 아마도 생애 마지막이 될 이 <춘향가> 완창에 박록

주가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12회 방송에서는 중모리장단의 ‘이어사가 춘향을 대령하라는 영을 

내리는 대목

’부터 자진모리장단의 ‘춘향모가 춤추며 들어오는 대목’까

지 부른 후에 앞의 대담이 진행되었다

박록주 창본의 소리 대목 구성은 정정렬-김여란 계열 창본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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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97

대목

장단

첫머리 사설

이어사가 춘향을 대령하라는 영을 내리는 대목

중모리

그때여 어사또님

춘향이 이어사의 수청 명령을 거절하는 대목

아니리

춘향이 다령하였소

중모리

여보 사또님

춘향이 대상에 올라 기뻐하는 대목

아니리

어사또 춘향을

중모리

올라간다 올라간다

춘향모가 춤추며 들어오는 대목

자진모리

어데 가야 여기 있다

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 위의 ‘이어사가 춘향을 대령하라는 영을 내리는 

대목

’, ‘춘향이 이어사의 수청 명령을 거절하는 대목’, ‘춘향이 대상에 올

라 기뻐하는 대목

’이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아니리+중모리, 

‘춘향모가 춤추며 들어오는 대목’은 아니리+중중모리의 구성으로 되어 

있어 소리 대목의 수가 훨씬 적다

. 창과 아니리의 구분에도 차이가 있

. 이어사가 동헌에서 공무(公務)를 처리하는 장면을 박록주 창본에서

는 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아

니리로 연행한다

. 또 이어사가 춘향을 떠보느라고 짐짓 수청 명령을 내

리는 장면과 춘향이 지환을 받아보고 이어사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

이 박록주 창본에는 아니리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는 중모리장

단의 소리 대목으로 되어 있다

또 다음 쪽의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 이어사가 춘향을 떠보느

라고 짐짓 수청 명령을 내리자 춘향이 그에 항거하며 자신의 뜻을 아뢰

는 장면은 창과 아니리의 구분은 물론 사설의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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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제14호

박록주 창본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

{아니리}

 (…상략…) 춘향이 여짜오되, “명찰[明徹]하신 수의(繡衣)사또 깊이 통촉(洞

) 하옵소서. 수절(守節)에도 상하(上下)가 있소? 아뢸 말씀은 이 뿐이요.” “어찌하야 

아뢸 말이 그 뿐이라 하느냐

? 니 속에 세세원정(細細原情)이 있으면 낱낱이 고하여

.” “소녀으 세세원정을 낱낱이 아뢰오면 토주(土主)의 정치(政治)가 손상(損傷)될

까 하오니 재하자

(在下者) 당피(當被)로 죽어 마땅하오이다.” 어사또 춘향을 한 번 더 

속을 떠보것다

. “어. 니가 기생(妓生)의 자식이 무슨 열녀(烈女)라고 할까? 까마귀가 

학이 될까

? 본관(本官)사또 영은 거역(拒逆)하였거니와, 봉명(奉命)허여 잠깐 지내가

는 수의사또 영도 거역할까

?”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일신수족(一身手足)을 벌렁벌렁

벌렁 떨면 사생결단

(死生決斷)으로 아뢰는디,

{중모리}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기생(妓生)의 자식은 충효(忠

)도 없고 열녀(烈女)가 없단 말이요? 진주(晉州)으 논개(論介) 씨는 일대장(日大將)

과 대무

(對舞)허다 안고 풍덩 절사(節死)허고, 안동(安東) 기생 일지홍(一枝紅)이 산 열

녀문

(烈女門)을 세웠으니 기생의 자식에는 충효가 없고 열녀가 없단 말이요? 어사또

라 하는 벼실 수의

(繡衣)를 몸에 입고 이골 저골 암행(暗行)허여 죄목(罪目)을 탐지(探

)헐 제, 불충불효(不忠不孝) 하는 놈, 국곡투식(國穀偸食) 하는 놈, 형제불목(兄弟不

) 하는 놈 차례로 잡아들여 죽일 놈은 죽이옵고 살릴 놈은 살리옵제, 그런 일은 아니 

허고 수절

(守節)하는 계집들을 염탐(廉探)하러왔소? 소녀 절행(節行)을 듣조시오. 진

국명산만장봉

(鎭國名山萬丈峯)이 바람이 분들 쓰러지면, 층암절벽(層巖絶壁) 석상

(石像)돌이 눈비가 온다고 썩어지나? 수의사또 원정(原情) 후으 목숨 살까 바랬드니, 
초록

(草綠)은 동색(同色)이요 가재는 게 편으로 사또는 모두 일반이요그려. 죽여주오. 

어서 죽여주오

. 하루 급히 죽여주오. 살기도 나는 귀치 않소. 처분(處分)대로 하옵소

. 송장 임자가 문 밖에 있으니 어서 급히 죽여주오.” 벌벌벌 떨면 말을 헌다.

{중모리}

 “네가 일정(一定)한 

지아비를 섬겼는고

?” “이부

를 섬겼네다

.” 어사또 이부

(二夫) 말을 듣더니 분기가 
충천

(沖天)하여, “네가 열녀

라 하며 이부

(二夫)를 섬기

다니

.” “두 이(二)자가 아니

오라 오얏이

(李)자 이부(李

)로소이다.” “내 말이 그럴

진대 내 성도 이가니 네 뜻이 
어떠한고

?” “분부가 그러허

오면 아뢸 말씀 없사오니 죽
여주오

. 죽여주오. 어서 급

히 죽여주면

, 혼비중천 높이 

날아 삼청동을 올라가서 이
몽룡을 보것내다

. 어서 수이 

죽여주오

.”

3.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자료적 특징

앞의 

II장에서는, 기독교방송에서 1964년 4월 20일부터 5월 13일까

지 총 

12회에 걸쳐 방송했던 박록주 <춘향가>의 내용을 회별로 상세히 

살펴보았다

. 이제 그 내용을 자료의 성격별로 나누어 종합 정리해볼 차

례이다

.

우선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 대담 자료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대담 자료를 통해 박록주가 정정렬제 <춘향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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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299

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에 

남긴 

<춘향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재용 음원 <춘향가>, 아세아레

코드 

<춘향전> 등 박록주가 남긴 다른 <춘향가>에는 그가 박기홍 또는 

송만갑에게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 대목 또는 유파․제의 구분을 떠

나 유명했던 옛 더늠이 부분적으로 섞여 있었다

. 그러나 기독교방송이 

추진한 이 기획의 의의는 명창이 한 스승으로부터 오롯이 배운 한 바탕

의 소리를 발표하는 데 있었고

, 박록주가 부른 <춘향가>도 온전한 정정

렬제였다

. 이에 박록주는 1회 방송, 5회 방송의 대담을 통해 자신이 부르

는 

<춘향가>가 정정렬제임을 재차 강조하고, 현전 춘향가 가운데 정정

렬제 춘향가가 

“제일 낫”다고 평가하며 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편 

1회 방송 대담에서는 ‘적성가’ 대신 삽입된 진양조장단의 ‘저 건너 

저 건너

’가 정정렬제 춘향가만의 특징적인 대목임을 밝히기도 했다. 

둘째

, 대담 자료를 통해 박록주의 판소리관을 부분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 3회 방송 대담에는 고수의 기능 가운데서도 특히 ‘보비위(補脾

)

’를 중시하고, 천구성보다 수리성을 판소리의 이상적인 성음으로 생

각했던 박록주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 또 6회 방송 대담과 7회 방송 

대담에 따르면

, 박록주는 판소리 ‘제(制)’의 의미 해석에 있어 사설이나 

내용보다는 선율이나 악조에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 대담 자료를 통해 본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 자료의 출

처와 의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마지막 12회 방송의 대담에 참여한 최

성진 음악과장의 언급이 없었더라면

, 본 자료가 현재 소장처인 KBS가 

아닌 기독교방송에서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어려웠을 지도 모

른다

. 또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시도한 완창 판소리 기록화 작업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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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제14호

전하는 다섯 마당의 판소리 모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

, 잡음이 섞이지 

않은 양질의 녹음이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었으며

, 박록주가 생

애 마지막이 될 이 춘향가 완창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공을 들였다는 

것도 

12회 방송 대담에서 이야기된 내용이다. 

그 외에 

5회 방송 대담에서 정정렬이 적벽가를 부르지 못했다는 뺷조

선창극사

뺸의 언급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 박

록주가 

1회와 4회 방송 대담을 통해 소개한 일화는 당시로서는 알려지

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다

. 한편 8회~10회 방송에서 박록주의 대담이 

생략된 것은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 게다가 박록주가 부르는 정정

렬제 

<춘향가>에는 없는 ‘쑥대머리’ 사설을 소개하거나(8회), 어사가 방

자를 만나 춘향의 편지를 읽는 대목과 모 심는 농부들의 노래를 듣는 

대목 순서를 바꾸어 줄거리를 소개하고

(9회)

, 박록주가 실제 부른 사설

이 아닌 

뺷증보 가요집성뺸을 대본으로 하여 향단이 어사와 장모 사이에

서 말심부름을 하는 장면의 아니리를 낭독하는 등

(10회)

 장사훈이 진행

한 해설 내용에는 적지 않은 실수도 있었다

다음으로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 연창 자료에서는 다음과 같

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우선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과 비교해본 결과

, 박록주의 <춘향가> 녹음 자료는 이른바 

정정렬제 

<춘향가>의 특징으로 꼽히는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춘향과 이도령이 춘향모의 허락 없이 초야를 치르는 대목

, 춘향이 오리

정까지 나가 이도령과 이별하는 대목

, 기생 난향이 춘향에게 훼절을 권

유하는 대목 등이 그러한 예인바

, 서사적인 전개 면에서는 거의 일치했

. 다만 창/아니리의 구분과 장단의 구성, 사설의 축약과 부연, 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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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301

적․언어유희적인 아니리의 삽입 여부와 관련된 차이를 발견할 수 있

었으며

, 소리 대목 자체가 들고나는 경우, 사설 자체가 다른 경우는 그

리 많지 않았다

.

첫째

, 창/ 아니리의 구분과 장단 구성의 면에 나타난 정정렬-박록주 

계열의 박록주 창본과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

본 간 차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 이도령이 방자에게 상방 소등(消燈) 소

식을 묻는 사설이 박록주 창본에서는 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

, 최승희 

창본에서는 아니리로 연행된다

. ‘향단이 춘향모에게 사정 설명하는 대

’은 박록주 창본에서 중모리장단,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 엇

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불린다

. 방자의 재촉으로 이도령이 말에 

오르고

, 춘향이 소식을 당부하는 장면이 박록주 창본에서는 ‘춘향과 이

도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

’에 포함되고,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

서는 이 장면을 여러 개의 소리 대목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 박록주 창

본의 이별 대목에서는 

‘춘향이 주저앉아 우는 대목’ 바로 뒷부분 사설이 

아니리로 되어 있지만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같은 사설을 

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연행한다

. ‘신관사또 내려오는 대목(신연

맞이

)

’이 박록주 창본에서는 자진모리장단의 소리 대목 하나로 구성되

,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후반부의 

‘청도기 사설’이 휘모리장단의 또 다른 소리 대목으로 분리된다. ‘춘향

모 달려와 발악하는 대목

’은 박록주 창본에서 자진모리장단, 박초선 창

본과 최승희 창본에서 중중모리장단으로 불린다

. 운봉영장이 이어사

를 생일잔치에 들이는 장면이 박록주 창본에는 아니리로 되어 있으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는 중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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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제14호

. ‘이어사가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대목’의 경우, 박록주 창본에서는 

중모리장단으로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자진모리장단으로 

불린다

. ‘이어사가 술상 받는 대목’의 경우, 박록주 창본에서는 자진모

리장단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중모리장단으로 부른다. 이

어사가 동헌에서 공무

(公務)를 처리하는 장면을 박록주 창본에서는 중

모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아니리

로 연행한다

. 또 이어사가 춘향을 떠보느라고 짐짓 수청 명령을 내리는 

장면과 춘향이 지환을 받아보고 이어사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을 박

록주 창본에서는 아니리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는 중모리장단

의 소리 대목으로 연행한다

둘째

, 사설의 축약과 부연 면에 나타난 정정렬-박록주 계열의 박록

주 창본과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 간 차이이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과 비교할 때, 박록주 창본의 ‘사후 기약’ 

대목에는 이도령이 춘향에게 꽃과 나비가 되자고 사후 기약하는 부분

이 생략되어 있다

. 또 ‘남원 한량이 춘향을 동정하는 대목’ 중 매를 때린 

집장사령이 탄식하는 장면

, 일명 ‘천지 삼겨’ 대목 중 춘향이 거울을 보

며 자탄하는 장면의 사설이 박록주 창본에만 빠져 있다

. 박록주 창본에

만 부연되어 있는 사설도 있다

. ‘이도령이 방자에게 해 소식, 상방 소식 

묻는 대목

’, ‘춘향이 이별 말에 사생결단하는 대목’, ‘춘향과 이도령이 정

표 교환하는 대목

’에서 이러한 양상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세 번째 대목

에는 춘향이 이도령에게 글을 지어 주고

, 이도령이 춘향에게 화전(花箋)

을 주는 장면이 부연되어 있어 주목된다

.

셋째

, 재담적․언어유희적인 아니리의 삽입 여부에 따른 정정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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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303

록주 계열의 박록주 창본과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

희 창본 간 차이이다

. 이도령이 춘향을 요여(腰輿)에 태워갈 꾀를 내는 

내용의 아니리는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만 삽입되어 있다

. 그러

나 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사례

,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올라가던 방

자가 이어사를 만나 

‘남원 산다’는 말을 ‘나만 산다’라고 어긋지게 말하

는 장면

, 농부가 “원님은 노망(老妄), 책방은 주망(酒妄), 아전(衙前) 권속(眷

)은 원망(怨望)

”이니 “우리 고을 사망(四妄)이 물밀 듯”한다고 말하는 장

, 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이 춘향모에게 자신의 처지를 숨기기 위

해 뻔뻔하게 거짓말을 둘러대는 장면

, 기생이 “이 술 한 잔을 잡수시면 

평생을 이 모양 이 꼴로

”라고 이어사를 비꼬며 권주가를 부르는 장면의 

재담적․언어유희적인 아니리는 박록주 창본에만 삽입되어 있다

. 특

히 서사 후반부에서 이러한 아니리의 편중을 볼 수 있다

.

넷째

, 정정렬-박록주 계열의 박록주 창본과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 간에 소리 대목의 드나듦이 발견되는 경우

이다

. 일명 ‘춘향방 그림 사설’과 ‘갈까부다’는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

본에만 들어있다

. 그리고 ‘향단이 이어사께 문안 올리는 대목’과 ‘향단

이 춘향모 만류하는 대목

’은 반대로 박록주 창본에만 삽입되어 있다. 

한편 세 창본 모두 공통적으로 변사또가 군로사령을 내보내고 춘향이 

사령들을 맞는 장면이 온당하지 않다는 내용의 아니리를 넣고 있는데

박록주 창본에서는 이와 함께 춘향이 사령들을 맞는 부분의 소리 대목 

일체를 생략한 반면

,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서는 이 부분을 중모

리장단의 소리 대목으로 넣었다

.

다섯째

, 정정렬-박록주 계열의 박록주 창본과 정정렬-김여란 계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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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제14호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에 들어있는 사설 자체가 아예 다른 경우이다

‘춘향이 황릉묘 다녀오는 꿈을 꾸는 대목’을 살펴보면, 박록주 창본에서

만 척부인

(戚夫人)

 대신 오자서(伍子胥)가 등장한다.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춘향가>에는 척부인이 등장한다. 또 ‘이어사

가 춘향을 대령하라는 영을 내리는 대목

’, ‘춘향이 이어사의 수청 명령을 

거절하는 대목

’의 사설도 두 계열 창본 간에 차이가 큰 편에 속한다. 

4. 맺음말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방송에서 

1963년 봄에 녹음하고, 1964년 4월 

20일부터 5월 13일까지 방송한 박록주 <춘향가> 자료의 구체적인 실상

을 회별로 고찰하고

, 대담 자료․연창 자료 그 각각에서 주요하게 확인

할 수 있는 특징을 확인해 보았다

.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는 근현대 판소리사를 대표하는 여성 

명창인 박록주의 유일한 

<춘향가> 완창이자, 정정렬 바디 <춘향가>를 

온전히 담고 있는 또 다른 계통의 

<춘향가>이고, 그동안 판소리 연구에

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기독교방송 자료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었

다는 점에서 판소리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라 할 수 있다

.20 이에 

20

위의 글

, 415~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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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305

이 기획 방송에 포함된 대담 자료와 연창 자료 전체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 그 내용과 특징을 정리 및 제시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1회부터 12회까지, 각 회별로 대담과 연창이 어떻게 진

행되었는지 그 내용을 상세히 밝혔다

. 장사훈-박록주 사이에 이루어

진 대화의 일부를 직접 제시하고

, 그 내용을 지금까지의 판소리 연구에

서 밝혀진 사실에 의거해 분석하거나

, 그러한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 판

소리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 또 연창 자료에 대한 분석을 위해, 정정

렬-김여란 계열의 박초선 

<춘향가>, 최승희 <춘향가>의 사설․장단과 

정정렬-박록주 계열의 본 박록주 

<춘향가>의 사설․장단을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의 대담 자료를 통해서는, 박록주가 정

정렬제 

<춘향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 그리고 고수의 기능 가

운데 특히 

‘보비위’를 중시하고, 천구성보다 수리성을 판소리의 이상적

인 성음으로 생각했으며

, 판소리 ‘제(制)’의 의미 해석에 있어 사설이나 

내용보다는 선율이나 악조에 기준을 두었던 박록주의 판소리관을 엿

볼 수 있었다

. 대담 자료는 본 박록주 <춘향가>가 기독교방송에서 녹

음․방송된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했다

. 다만 장사훈

의 해설로 대체된 

8회~10회 대담 자료는 내용상 실수가 적지 않았던

바 아쉬움을 남겼다

.

다음 연창 자료를 통해서는 박록주의 

<춘향가>가 정정렬-김여란 계

열의 박초선 

<춘향가>, 최승희 <춘향가>와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유하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박록주는 대담을 통해 자신의 <춘향가>

가 정정렬제임을 강조했는데

, 실제 사설과 음악에 대한 비교 고찰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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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제14호

해 이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 물론 박록주가 부른 <춘향가>의 사설과 

음악이 박초선 창본․최승희 창본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했던 것은 아

니다

. 창/아니리의 구분과 장단 구성, 사설의 축약과 부연, 재담적․언

어유희적인 아니리의 삽입

, 소리 대목의 드나듦, 사설 자체의 내용과 

표현 등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 ‘이도령이 방자에게 해 소식, 상방 소등 

소식 묻는 대목

’, ‘향단이 춘향모에게 사정 설명하는 대목’, ‘춘향이 이별 

말에 사생결단하는 대목

’, ‘춘향과 이도령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 ‘춘향

이 주저앉아 우는 대목

’, ‘신관사또 내려오는 대목’, ‘춘향모 달려와 발악

하는 대목

’, 운봉영장이 이어사를 생일잔치에 들이는 장면, ‘이어사가 

생일잔치에 나타나는 대목

’, ‘이어사가 술상 받는 대목’, 이어사가 동헌

에서 공무

(公務)를 처리하는 장면

, 이어사가 춘향을 떠보느라고 짐짓 수

청 명령을 내리자 춘향이 지환을 받아보고 이어사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 등에서 창

/아니리의 구분과 장단 구성 면의 차이를, ‘이도령이 방

자에게 해 소식

, 상방 소등 소식 묻는 대목’, ‘이도령이 춘향에게 사후를 

기약하는 대목

’, ‘춘향이 이별 말에 사생결단하는 대목’, ‘춘향과 이도령

이 정표 교환하는 대목

’, ‘남원 한량이 춘향을 동정하는 대목’, ‘춘향이 

옥에서 자탄하다 귀신 울음 듣는 대목

’ 등에서 사설의 축약과 부연 면의 

차이를

, 이도령이 춘향을 요여(腰輿)에 태워갈 꾀를 내는 장면,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올라가던 방자가 이어사를 만나 괜히 어긋지게 말하는 

장면

, 농부가 남원 고을의 ‘사망(四妄)’을 이야기하는 장면, 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이 춘향모에게 자신의 처지를 숨기기 위해 뻔뻔하게 거

짓말을 둘러대는 장면

, 기생이 이어사를 비꼬며 권주가를 부르는 장면 

등에서 재담적․언어유희적인 아니리 삽입 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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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307

었으며

, 소리 대목이 들고나는 예는 일명 ‘춘향방 그림 사설’과 ‘갈까부

’, ‘춘향이 사령들을 맞는 대목’, ‘향단이 이어사께 문안 올리는 대목’, 

‘향단이 춘향모 만류하는 대목’ 등에서, 사설의 내용 및 표현이 확연히 

차이나는 예는 

‘춘향이 황릉묘 다녀오는 꿈을 꾸는 대목’, ‘이어사가 춘

향을 대령하라는 영을 내리는 대목

’, ‘춘향이 이어사의 수청 명령을 거

절하는 대목

’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의 목적은 기독교방송 녹음 박록주 

<춘향가> 자료의 실상을 구체

적으로 고찰하는데 있었던바

, 그 사설과 음악적 내용을 박초선 창본, 최

승희 창본의 그것과 비교하는 작업에 있어 박록주 창본이 중심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 정정렬제 <춘향가>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는 박록주 창본

, 박초선 창본, 최승희 창본을 동궤에 놓고 비교해야 하며, 

정정렬제 

<춘향가>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여타의 창본도 그 대상

에 포함시켜야 한다

. 이에 대한 논의는 후고를 기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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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제14호

참고문헌

KBS 방송자료실 소장 기독교방송 녹음, 박록주 <춘향가> 1~12(방송일 : 1964.4.20~

1964.5.13). 

박록주

, 「나의 이력서」 1~38, 뺷한국일보뺸, 1974.1.5~2.28.

장사훈

, 「국악계-光復19年과 韓國의 女流들」, 뺷조선일보뺸, 1963.8.28. 

정창관 국악녹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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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방송 박록주 <춘향가>(1963)의 회별 구성과 자료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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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tructure and Characteristics of CBS Record Park Rokju’s 

‘Chunhyangga’(1963)

Song, Mi Kyoung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CULTURAL HERITAG

This research inquires closely into the details of talk parts and performing parts 

of  Park  Rokju’s  Chunhyangga  recorded  in  1963  and  broadcast  by  Christian 
Broadcasting System(CB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on  talk  parts  of  CBS  record  Park  Rokju’s 

Chunhyangga  are  as  follows:  First,  through  its  1st  and  5th  episodes,  it  is 
determined that this Chunhyangga is Cheong Jeongryeol-je(制) and Park Rokju 
has a strong sense of pride of it. Second, its 3rd, 6th and 7th episodes show Park 
Rokju’s view of pansori drummer, drumming method, ideal vocal for pansori, and 
pansori’s  je(制).  Third,  CBS  music  manager  Choi  Seongjin’s  mention  of  12th 
episode gives evidence for Chunhyangga’s source. Meanwhile, talk parts were 
replaced by commentaries by Chang Sahun in from 8th to 10th episodes, and these 
commentaries had mistakes.

Next, performing parts of CBS record Park Rokju’s Chunhyangga and another 

Cheong Jeongryeo-je Chunhyangga, Park Choseon’ and Choi Seunghui’, have a 
number  of  things  in  common.  Common  examples  of  this  are  scenes  that 
Chunhyang has a first night with Lee Mongryong without her mother’s permission, 
Chunhyang and Lee Mongryong part at the Orijeong Pavilion, gisaeng Nanhyang 
urges Chunhyang to give new Namwon Magistrate Byeon Hakdo bed service, and 
so on. But there are several other differences between Park Rokju’s Chunhyangga 
and Park Choseon’․Choi Seunghui’. Examples include a composition of Chang 
and Aniri, a length of pansori lyrics, an insertion Aniris as jokes or puns, singing 
parts.

Key words

  Park  Rokju,  Cheong  Jeongryeol,  Chunhyangga,  full-length  pansori 

performance(完唱), Christian Broadcasting System(C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