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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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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김종우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I. 서론
II. 야광조개와 국자의 출토 사례

1. 야광조개
2. 야광조개국자의 출토사례

III. 야광조개국자의 분석과 제작기법

1. 금속 테두리 분석
2. 형태
3. 금동제 장식

IV. 야광조개국자의 복원

1. 야광조개 가공
2. 금속 테두리 장식 가공
3. 아말감 도금작업
4. 리벳 및 결합

V. 결론

국문초록

본 조사 연구에서는 황남대총 북분

, 천마총, 지산동 44호분에서 출토된 야광조개

국자를 비교 조사하여 차이점을 알아보고 일본에서 출토된 야광조개국자와 비교하

였다

. 야광조개국자를 만든 재료로 사용되는 조개는 야광조개(ヤコウガイ)로 조각

품 및 나전칠기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 분포지역으로 일본에서는 오키나와제

, 서태평양과 인도양 열대해역의 산호초 지역에서 서식하는 대형 고둥이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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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호

서 수입품으로서의 당시 일본과의 교역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출토품이다

. 야광

조개국자는 일본의 경우 손잡이 부분을 조각하여 장식성을 준 반면 한국은 주로 금

속테두리 장식을 사용하였다

. 금속 테두리를 장식으로 사용한 야광조개국자는 같

은 시기 일본에서는 아직 출토된 예가 없다

. 야광조개국자의 금속 테두리의 결합방

법은 리벳을 사용한 방법

, 금속끼리 서로 겹쳐 결합한 방법, 금속 테두리를 사용하

지 않은 방법 등이 있다

. 현재까지 발견된 출토품은 모두 파손편으로 그 형태가 불

완전하여

, 원형을 유추하고 복원․제작하여 당시 유물의 모습을 확인해 보고자 하

였다

.

주제어

 야광조개, 야광조개국자, 금속 테두리 장식, 제작기법,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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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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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자연환경 속에서 채집활동을 통해 생활한 인간의 진화는 도구의 사

용과 기술의 발달을 통해 빠르게 발전되었다

. 이중 해안지대에서 구한 

대표적인 재료는 조개가 있다

. 조개는 식용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반

, 목걸이 등의 장신구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숟가락,  화살촉, 낚시

바늘 등으로 제작되어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해안지대 유적에서도 

출토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 이중 일본의 오키나와지역에서 제작이 시

작된 조개 유물들은 역사적으로 교역 이전부터 제사용품 혹은 생활용

품으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일본 본토 및 한국

,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 

대상품이었다

. 한국에서 조개제품의 등장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는

데 해안선이 복잡한 서해안과 남해안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 그러

나 사용된 조개의 종류가 많지 않고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 조개는 

서식지가 뚜렷하여 입수위치를 알 수 있는데

,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

된 조개제품은 야광조개(ヤコウガイ)

, 청자고둥(イモガイ, 학명: Conus mar-

moreus)

, 고호우라(ゴホウラ, 학명: Strombus latissimus), 긴카하마(ギンカハマ,

학명

: Tectus pyramis)가 있고 대부분 오키나와산 조개들이다

.1 우리나라 

해안에서는 나오지 않은 이러한 조개들은 당시 활발했던 국제교류를 

증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이중 야광조개는 일본 오키나와 

해안지역의 산호초일대에서 자생하는 대형조개로서 국자로 가공하여 

1

국립제주박물관

, 뺷한국-일본 오키나와의 고대제품을 통한 선사시대 문화의 재발견뺸, 통

천문화사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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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제22호

신라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데

, 황남대총(2점), 천마총(2점), 지산동 고

분(1점)

, 금관총(3점 추정)등이 출토되었고 수량이 많지 않은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고분 출토 야광조개국자 중 지산동 고분 출토품은 대략적인 

형태를 추정할 수 있으나 황남대총과 천마총

, 금관총 출토품의 경우, 

조개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이 심하다

. 제작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지산동 고분의 경우는 조개 외각 부분에 금속테두리 

장식이 없는 반면 황남대총과 천마총

, 금관총 등에서 출토된 야광조개

국자에서는 금동제 테두리 장식으로 마무리하였다는 것이 다른 점이

. 본 논고는 현재 남아있는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지산동44호분 

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방법을 알아보고 추정 복원을 통한 제작 당

시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다

.

II. 야광조개와 국자의 출토 사례

1. 야광조개

야광조개의 학명은 

Turbo(Lunatica) marmorata로 원시복족목의 소라

과이다

. 몸의 빛깔은 짙은 청녹색의 바탕에 짙은 갈색과 황백색의 반점

을 가지고 있다

. 분포지역으로는 서태평양과 인도양의 열대해역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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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초 지역에서 서식하는 대형 고둥이다

. 성체의 무게는 2㎏  이상이며 

큰 것은 직경 

20cm 이상에 달한다. 껍데기 표면은 매끄럽다. 일본 근해

에서는 야쿠시마

, 타네가시마 이남의 따뜻한 해역에 서식한다. 서식지

는 수심 

30m 미만의 비교적 얕은 수로와 바위의 움푹한 곳이다. 먹이는 

해초이며 외관으로 암수 판별은 불가능하다

. 치패(稚貝)는 3년에 70mm

정도로 성장한다

. 야행성으로 해초를 먹지만 최근에는 환경 악화로 낮

에도 먹이를 먹는다고 한다

.  

뚜껑은 산화칼슘이나 수산화칼슘이 주성분인 석회질로 이루어져 매

2

神谷正弘

, 「新羅王陵․大伽耶王陵出上の夜光貝杓字(貝匙)の再論と複製品の製作について」, 뺷古

<사진 1> 오키나와산 야광조개

<그림 1> 야광조개 껍질의 부분명칭(

뺷ヤコウガイの考古學뺸)

2

<그림 2> 오키나와 해안지형의 타입(외해)과 

조개 생식지 (木下尚子 原圖)

3

<사진 2> 산호초 바다의 조개(외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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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호

우 두툼하고 둥그스름하다

. 살은 식용으로 사용하고 껍데기는 단추나 

나전칠기의 재료가 된다

. 현재 생산되는 나전재료 중 가장 색상이 화려

하고 짙은 색을 내는 재료이며

, 색상은 진주광이 강하게 반사되면서 나

타나며 짙은 분홍색이나 푸른색이 각각 또는 교차되면서 나타난다

. 또 

표피를 깍아 진주층으로 조각을 하는 등 조개 세공의 재료로도 이용되

고 있다

.5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는 오키나와 해안의 지형은 히시(ヒシ, 

干瀨

)라고 불리는 둑 모양의 암반에 의해 이노(イノー)

 즉 내해(內海)가 발

달해 있다

. 산호초의 조개들은 내해와 외해에 따라 서식지에 차이를 보

이는데 호라가이

, 고후우라, 야광조개와 같이 외해에 서식하는 대형 조

개의 경우에는 채취에 위험이 많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6 산지로는 필

리핀

, 다만제도, 니코바르제도 등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아마미군도, 

오키나와제도

, 사키시마제도가 알려져 있다. 난세이제도의 조개류는 

수온 요건 때문에 성장이 느리다

. 수온이 낮은 곳은 성장속도가 느리나 

그만큼 진주층(펄층)이 치밀하고 아름답다

.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부근

의 조개는 성장이 빠르지만 반대로 진주층이 거칠고 아름답지 않다

文化談叢

뺸 66, 九州古文化硏究會, 2011, p.137 도판.

3

神谷正弘

,  「「新羅王陵․大伽耶王陵出上の夜光貝杓字(貝匙)」の再論と複製品の製作について」, 

뺷古文化談叢뺸 68, 九州古文化硏究會, 2012, p.231 도판.

4

국립제주박물관

, 앞의 책, 54쪽.

5

ht ps://ja.wikipedia.org/wiki/ヤコウガイ; ht 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
79019&cid=40942&categoryId=32464, 두산백과 doopedia

6

국립제주박물관

, 앞의 책, 2005, 54∼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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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광조개국자의 출토사례

신라시대 출토된 야광조개국자는 천마총

, 황남대총, 금관총, 지산동

44호분에서 확인된다. 야광조개국자의 출토 위치는 대부분 부장품 수

장부에서 금동제 용기 및 유리용기

, 칠기가 출토된 곳으로, 왕릉급 고

분에서 부장부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유물이

었음과 동시에 국제적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 사용한 위

세품의 성격도 내포할 것이다

.  

(1) 황남대총 북분

경주시내 중심가인 황남동(皇南洞)

, 황오동(皇吾洞), 노동동(路東洞), 노

서동(路西洞)

 일대에 소재한 대규모 고분군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98호분으로, 황남동에 소재한 신라 최대의 고분이라는 뜻으로 황남

대총이라는 별칭이 부여되었다

. 현존

하는 고신라 최대의 표형(瓢形)

 봉토를 

가진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남․북분 두 개의 원형 봉토분이 결합

되어 있는 형태이다

.  북분은 남분에 

덧붙여진 것으로 남분의 봉토와 둘레 

돌의 일부를 파괴하고 설치되었다

. 덧널은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으로, 

<그림 3> 황남대총 북분 야광조개국자 출토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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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호

그 규모는 

6.8✕4.6✕4.0m에 이른다. 역시 덧널의 둘레와 상부에는 냇

돌로 돌무지를 만들었는데 냇돌에 주칠을 한 것이 많았다

. 무덤의 중앙

에는 

3중으로 된 덧널과 나무널을 안치하고 있었다. 나무널 안에는 피

장자가 착장하고 있던 유물인 삼산녹각입식금관(三山鹿角立飾金冠)

, 금제

허리띠 등이 있었으며

, 안덧널(內槨) 안에 설치된 유물부장칸에는 은제

허리띠를 비롯하여 각종 귀금속제용기 등이 출토되었다

. 금동장패기

(金銅裝貝器)는 부장품 수장부 중앙부분 서남편에서 출퇴된 금동제고배

(金銅製高杯)의 남쪽에 접하여 대파된 채 출토되었다

. 금동판을 0.7cm 폭

으로 접어 만든 금구(金釦)를 이어 붙이고 그사이 곡면(曲面)을 이룬 패각

(貝殼)을 끼워 만든 것으로 파손이 심하여 그 형태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용기(容器)이다

. 금동제고배(金銅製高杯)를 담아둔 것 같은 상태로 출토된 

천마총출토(天馬塚出土)

 금동장패기(金銅裝貝器)와 똑같은 형태다.7 

(2) 천마총

경주시(慶州市)

 황남동(皇南洞)의 현 미추왕릉지구 고분공원내에 위치

하고 있는 황남동 제

155호분으로 1973년도에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결

과 유물 중에 하늘로 비상하는 천마(天馬)를 그린 채화장니(彩畵障泥)가 들

어 있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으며

, 결국 천마도 장

니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고분이기도 하다

. 봉분은 직경 약 47m, 높이 

7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1298&st_char=&
sk=황남대총;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천마총 발굴조사보고서」, 1974, 125․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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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m로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고분이다. 덧널의 규모는 길이 
6.6m, 폭 4.2m로 남쪽으로 약 17°정도 기울어진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었고 추정높이는 

2.1m 정도였다. 출토유물로는, 나무널 안에 4산형

입식금관(四山形立飾金冠)을 비롯하여 

목걸이

, 허리띠 등과 함께 새머리

장식고리자루큰칼(鳥頭裝飾環頭大刀)

 

1점을 넣었는데, 고분의 피장자는 

남성의 왕이나 왕족으로 추정되며

관을 비롯한 각종의 장신구는 순금

제 일색으로 피장자의 신분에 걸맞

게 구성되어 있었다

.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24개의 쇠뿔을 비

롯하여 조형칠배(鳥形漆杯)

 및 각형칠배(角形漆杯), 유리잔 등 지금까지 보

지 못했던 희귀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 특히 천마가 그려진 장

니 이외에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 서조도(瑞鳥圖), 칠기그림 등 각종 회화

자료가 출토되었다

. 금동제패기는 금동제고배(金銅製高杯)를 담아둔 것 

같은 상태로 출토되었으나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이다

. 대형의 

패각(貝殼)을 길이 

24cm, 폭 5.5cm의 크기로 절단하고 그 주연(周緣)에 

0.5cm 폭의 금동제테를 돌려 감장(嵌裝)하였다. 패각의 생긴 모양에 따

라 기체는 약간 곡면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을 매끈하게 하기 위하여 깎

아 다듬었는 듯한 마찰흔을 볼 수 있다

. 2개가 출토되었으나 그 중 1개

는 파쇄되어 파편들만이 남았다

.8

8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1258&st_ch
ar=&sk=천마총;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황남대총 I(북분) 발굴조사보고서」, 198

<그림 4> 야광조개국자 출토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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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호

(3) 금관총

금관총은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고분

공원에 발굴된 유지(遺址)가 보존되어 있다

.  이 

고분은 

1921년 9월에 경주시 노서리 현지점에서 

가옥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돌무지덧널무덤(積石

木槨墳

)이다

. 고분이 금관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

게 된 이유는 신라유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있는 화려한 금관 일습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

토되었기 때문이다

. 발굴 당시 봉토는 길이(남∼

)

, 너비(동∼서), 높이가 약 36✕15✕6m 정도가 

남아 있어서 원래는 대형고분의 모습을 하고 있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나무널(木棺) 주위에는 장

방형덩이쇠(長方形鐵鋌)가 열을 지어 있었으며

, 큰

칼 등의 무기가 출토되었고 나무널 안 서쪽에 신

발이 있었다고 한다

. 나무널은 길이, 너비가 2.5

✕1.0m인 칠관(漆棺)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내부에서 금관 등의 각종 장

신구류가 출토되었다

. 이 무덤에서는 금관 이외에도 순금제귀고리, 금

제와 은제의 팔찌

, 반지 등과 각종구슬, 금제와 은제의 허리띠, 금동제

신발 등의 각종 장신구를 비롯하여

, 도검, 갑옷, 창신(槍身), 쇠화살촉(鐵

)

, 쇠도끼(鐵斧) 등의 무기류와 말안장금구, 말방울, 말띠장식, 교구, 혁

5, 153․358쪽.

<그림 5> 금관총 야광조개국자 출토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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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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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구 등의 말갖춤류(馬具類)

, 토기, 목칠기, 유리용기, 쇠솥(鐵釜), 금속

제용기

, 조개제품 등 많은 유물들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곡옥(曲玉)을 포

함한 각종 구슬류만도 무려 

3만 점이 넘으며 금의 총량만도 7.5kg에 달

하는 엄청난 분량이 출토되었다

. 보고서에서 확인되는 패기출토는 목

기편으로 직경이 

2치(6.1cm)에 가까운 원형판에 옻칠한 것이 한 개가 었

으며

, 동기부분에 패기(貝器)와 같이 있었다고 한다.9

(4) 고령 지산동44호분

44호분은 장축이 27m,  단축이 25m  되는 

타원형 봉분이고 높이는 

3.6m 가량 된다. 길

이 

9.4m, 너비 1.75m되는 세장(細長)한 형태의 

중심돌덧널을 봉분 중앙에 배치하고

, 이보다

는 약간 작은 딸린돌덧널(副葬石槨)을 으뜸덧

널의 서편에 T자형으로 배치하고 또 하나의 

딸린돌덧널은 으뜸덧널에 나란히 병렬 배치

하였다

. 그리고 그 둘레에 순장자용으로 추측되는 소형의 돌덧널들이 

32기나 배치되어 있다. 중심돌덧널과 딸린덧널은 모두 깬돌(割石)로 촘

촘히 쌓아 올렸지만 순장덧널은 판석(板石)을 세워쌓은 돌널형(石棺形)도 

9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0953&st_ch
ar=&sk=금관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외, 「경주 금관총 발굴조사보고서」, 2011, 30․6
0쪽.

<그림 6> 고령 지산동44호분 

야광조개국자  출토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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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제22호

있고 깬돌과 판석을 혼용한 것도 있다

. 부장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지

만 많은 양의 토기류와 함께 금제귀고리(金製耳飾)

, 영부검신형말띠드리

개(鈴附劍身形杏葉)와 투구를 비롯한 무기류도 출토되었다

. 주걱형 용기는 

야광패로 제작한 주걱형 용기이다

. 손잡이는 전체 길이에비해 길고 신

부는 얇다

. 손잡이를 제외한 대부분이 결실되어 원래 형태를 알 수 없

는 상태이며 마모가 심하다

. 폭이 본래 5∼7cm 정도로 추정되지만 박

리가 심하여 연마를 한 면이 주연부(周緣部)

 극히 일부에서만 확인된다. 

박리 상태를 보았을 때 조개 표층의 대부분을 마연하여 깎아서 만들었

을 가능성이 있다

. 용기로 제작된 부위는 손잡이 부분이 조개 체층각구

(體層殼口)

 부분에, 신부는 각축(殼軸)에 가까운 부분에 해당된다.10

야광조개국자는 야광조개의 모양을 자연 그대로 살리고 표면을 연

마하여 제작한다

. 신라 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는 금동테두리를 사용

한 유형의 

I형과 금속테두리를 사용하지 않은 II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I형은 금동테두리 연결방법에 따라 리벳을 이용해 고정한 형태(I-a)와 

연결부분의 금속을 서로 겹쳐 연결한 형태(I-b)로 나눌 수 있다

.

10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1250&st_ch
ar=&sk=지산동; 경북대 박물관 외, 「고령 지산동44호분」, 2009, 33․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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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27

일본에서 출토된 야광조개패국자는 손잡이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

거나 장식적으로 

V 또는 U모양, 문양이 없는 손잡이, 손잡이의 형태변

형 등의 다양한 방법

11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 한국에서 출토된 야

광조개국자는 손잡이 부분에 문양을 넣거나 구멍을 뚫은 경우는 확인

되지 않으며

, 남아 있는 금속 테두리의 외형으로 보아 손잡이 부분의 

형태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다

. 이중 고령 지산동44호분 출토 야광조개

11

<표 3>과 <사진 3> 참조.

구분

시기

출토위치

장식

형식

수량

크기

유․

재질

길이, 폭(cm)

조개두께

(mm)

황남대총

북분

5c

중후

부장품 수장부 

서남쪽

금동

I-a

I-b

3

2 길이: 15.2, 폭: 5.7상 추정

확인불가

2.1∼2.4

1

천마총

6c

부장품 수장부

금동

I-a

I-b

2

확인불가

길이

: 16.4, 폭: 8.8 추정

2.8∼3.1

2

금관총

6c

유리용기 및 칠기와 

같은 위치

(곽의 동반부)

금동

I-a

I-b

3

확인불가

길이

: 15.5(추정길이), 

: 8(추정), 4.7∼5(손잡이)

2.6∼4.2

3

지산동

44호분

5c

중후

도굴로 의한 위치 불명

1

1

길이

: 15.5,폭: 8 추정

4이하

<표 2> 야광조개국자 출토품의 제원

구분

손잡이 부분 모양

형식

I-a형

I-b형

I-b형

황남대총 북분

천마총

금관총

지산동

44호분

<표 1> 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 손잡이 부분


background image

128 

 

 제22호

국자의 경우 일본학자 가미야(神谷正弘)는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섬 

아마미시 후와가네쿠 유적(小湊フワガネク遺跡)

 출토 야광조개국자와 비슷

한 형태를 보인다고 발표하였다(<그림 7>)

.12

신라고분 출토 야광조개개국자의 특징은 조개 외곽의 금속 테두리 

장식부분이며 지산동 

44호분을 제외한 모든 출토품에서 금속테두리로 

마감을 하였다

. 그러나 일본에서는 출토된 야광조개국자에 금속테두

리를 사용한 예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 야광조개국자의 출토가 극히 

적은 한국과 출토양이 많은 일본의 야광조개국자를 비교하는 것은 한

계성을 가지고 있으나

, 야광조개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

에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일본과 같이 완전한 형태

의 출토품은 없으나 지산동

44호분 출토 야광조개국자는 현재 출토된 

야광조개국자 중 조개의 크기 및 형태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12

神谷正弘

, <新羅․大伽倻と倭を結ぶ夜光貝々匙(杓子)>(국립경주박물관 특강), 2013.

13 국립제주박물관

, 앞의 책, 2005, 61∼62쪽.

14

ht p://www.city.amami.lg.jp.k.it.hp.transer.com/bunka/kyoiku/bunka/bunkazai/shit
e.html 

<표 3> 일본 출토 야광조개국자 손잡이 부분

13

손잡이 부분 모양

시미즈패총

(淸水貝塚)

시미즈패총

(淸水貝塚)

후와가네쿠 유적

14

구시바루패총

(具志原貝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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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29

그리고 황남대총 북분 출토 및 천마총 출토 야광조개국자는 야광조개 

대부분 파손되어 있지만 금속테두리 장식이 남아있어 정확하지 않지

만 전체 크기와 제작기법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표 4>)

. 야광조

개국자의 제작은 야광조개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조개의 가공은 국내

에서 가공하였을 경우와 제작된 야광조개국자를 수입하여 금속테두리

를 마감한 두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명확한 자료가 없다

. 그러

15

九州國立博物館

, 뺷南の貝の ものがたり뺸, 2006, pp.100∼101.

16

神谷正弘

, 「「新羅王陵․大伽耶王陵出上の夜光貝杓字(貝匙)」の再論と複製品の製作について」, 뺷古文

化談叢

뺸 68, 九州古文化硏究會, 2012, p.226.

<사진 3> 후와가네쿠 유적(7∼9세기)과 마쯔노토 유적(土盛マツノト遺跡, 7∼9세기)

15

<그림 7> 지산동44호분 및 후와가네쿠 유적 출토 야광조개 국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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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제22호

나 일본에서 금속테두리를 사용한 야광조개국자가 확인되지 않은 바

성형된 조개를 가지고 들어와 금속테두리를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III. 야광조개국자의 분석과 제작기법

1. 금속 테두리 분석

야광조개 테두리 금속에 대한 분석은 도금작업에 대한 검증을 위해 

실시하였다

. 고분출토별 도금부분 및 주변의 3곳을 XRF17로 측정하였

. 도금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수은의 검출유무의 확인을 위한 분석을 

실시하였다

. 그 결과는 <표 5>∼<표 7>과 같다.

17

Rontec portable µ-XRF spectrometer, ArtTEX.


background image

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31

위치

분석결과

<표 5> 황남대총 북분 금속 테두리부분 성분분석 결과

구분

Cu

Au

Ag

Hg

1

45.29

45.89

1.42

7.40

2

39.19

44.32

1.53

7.55

3

72.37

22.97

0.54

4.11

황남대총 북분

천마총

금관총

지산동44호분

<표 4> 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 파손편


background image

132 

 

 제22호

위치

분석결과

<표 6> 천마총 금속 테두리부분 성분분석 결과

구분

Cu

Au

Ag

Hg

1

26.25

11.73

0.20

1.46

2

20.61

22.80

0.17

2.97

3

71.80

23.68

4.52


background image

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33

위치

분석결과

<표 7> 금관총 금속테두리 부분 성분분석 결과

구분

Cu

Au

Ag

Hg

1

60.35

11.73

0.20

1.46

2

53.45

22.8

0.17

2.97

3

71.80

23.68

4.52


background image

134 

 

 제22호

측정결과

, 9곳의 금속 테두리 파손편에서 Ca․Cu․Au․Ag․Hg 등

이 확인 되었과

, Ca는 야광조개의 영향인 것으로 판단이다. 또한 모든 

측정부분에서 수은이 검출된 점으로 보아 야광조개국자 금속 테두리

의 도금방법으로 아말감도금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

2. 형태

야광조개의 크기는 국자의 크기와 직결되는데 현재는 남획과 오염 

등으로 크기가 

20∼25cm 이상의 대형 조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야광조

개국자는 원형의 조개 모양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용하게 되는데 조개

의 일부분 만을 절단하여 제작하며

, 야광조개의 크기에 따라 국자의 크

기도 결정된다

. 일본에서 출토된 야광조개국자의 경우 조개에서 국자

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위치에 따라 형식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한국

에서 출토된 야광조개 국

자의 경우 출토량이 적고 

형태가  불분명하여  형식

을 구분하기 어렵다

. 야광

조개국자로  사용하는  부

분은 

<그림 8>과 같은 모

18

神谷正弘

,  「新羅王陵․大伽耶王陵出上の夜光貝杓字(貝匙)の再論と複製品の製作について」,  뺷古文

化談叢

뺸 66, 九州古文化硏究會, 2011, p.137 도판에서 인용.

<그림 8> 복원에 사용된 야광조개국자 위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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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35

양으로 절단하여 사용하게 되는데 표면의 석회질 표피를 제거하고 제

작한다

. 국자의 제작 방향은 <그림 8>의 방향과 정반대로 제작할 수 있

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야광조개국자의 제작은 조개껍질의 곡률이 완

만한 입부분을 손잡이 부분으로 제작한다

. 후자의 경우로 제작할 경우

도 있겠으나

, <표 8>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자 앞부분과 손잡이 부분에

서 곡률의 차이가 있으므로 많은 양의 담아내기 위해서는 전자의 방법

으로 제작하여야 한다

. 야광조개국자 황남대총 북분 금동제 테두리 장

식 사이의 조개 두께는 

2.5∼4mm 사이로 측정된다. 이것은 자연산 야

광조개의 두께가 

8∼14mm 이상인 것으로 볼 때 석회질을 제거하고 가

공하여 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 출토 야광조개가 파손되고 풍

화되어 정확한 두께를 알 수 없다

<표 8> 국자 제작 방향 모식도

19

손잡이가 입부분일 경우

국자앞부분이 입부분일 경우


background image

136 

 

 제22호

3. 금동제 장식

I형의 금동제 테두리 두께는 0.7∼1mm 내외이며, 야광조개국자의 

외각을 폭이 

5∼6mm 정도의 동판을 사용하여 U자형으로 감싸 끼워 넣

었다

.20 I-a형인 황남대총 북분 출토 야광조개국자에 사용된 원두정(리

벳 머리부분

)은 

Ø2mm이며 높이는 1mm이고, I-b형인 천마총출토 야광

조개국자에 사용된 원두정(리벳 모리부분)은 

Ø2∼2.5mm,  높이는 1∼

1.3mm의 크기이다. I-a형과 I-b형의 손잡이 각도는 황남대총 북분과 천

마총 야광조개국자의 금동제 테두리 장식 각도를 측정하였으며 대략 

115°∼120°의 기울기를 보였다. 그러나 출토 당시의 모양은 파손 및 변

형되어 남아 있는 형태이므로 원형의 각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일

본과 달리 한국에서 출토된 야광조개국자에서만 나오는 또 하나의 다

른 특징은 손잡이 부분의 오른쪽에서 보여지는 타원형의 금속판 부분

인데 이것은 

I-a형 황남대총 북분과 I-a형 천마총 출토 야광조개국자 파

손편에서 확인되며(<표 10>)

, I-b형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타원형 금속

판은 황남대총 

I-a형은 길이가 40mm에 폭이 19mm이다. 천마총 I-a형은 

길이는 

49mm이며 폭은 22mm, 원두정을 사용하여 고정되어 있다. 타

원형 금동판의 제작방법은 황남대총 북분과 천마총 출토 야광조개가 

서로 다르게 제작되었다

. 황남대총 출토 타원형 금동판은 원두정을 사

용하지 않고 금동제 테두리 장식 제작시에 함께 접합하여 야광조개에 

19

神谷正弘

, <新羅․大伽倻と倭を結ぶ夜光貝々匙(杓子)>(국립경주박물관 특강), 2013.

20

<표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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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37

끼워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 천마총의 경우는 금동제 테두리 장식을 야

광조개에 끼우고 이후 원두정을 이용하여 타원형 금동판

, 금속테두리, 

조개를 함께 고정하였고

, <표 10>(〇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타원형 

금동판 부분에 대한 조사는 보고서와 파손편 등을 확인하였으며 황남

대총 북분과 천마총에서 각

1개체씩 확인되었다. 이는 각각의 고분에서 

출토된 야광조개국자 중 한 개의 개체에만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

나 명확하지 않다

. 타원형 금동판 부분에 대한 용도도 불분명하다. 굴

곡이 있는 야광조개국자를 사용하여 다른 내용물을 담을 경우 손잡이 

부분을 잡을 때 좀 더 용이하도록 제작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

-a형

-b형

황남대총 북분

금관총

천마총

<표 9> 금속 연결 부분 및 황남대총 북분 리벳결합 형태 모식도(단위: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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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제22호

황남대총 북분 출토

천마총 출토 

<표 10> 금속 테두리 장식의 타원형 금속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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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39

IV. 야광조개국자의 복원

야광조개국자의 전체적인 복원과정은 조개국자 모양으로의 절단 및 

가공과정

, 열풀림작업 및 단조작업의 금속 테두리 제작과정, 제작된 금

속 테두리 아말감도금과정 그리고 금속 테두리와 야광조개의 결합 순

으로 진행하여 복원하였다

1. 야광조개 가공

기증받은 야광조개

21는 각경(殼径)

 20cm의 대형 조개이다. 복원의 대

상은 특징적이며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있었던 황남대총 북분 출토 야

광조개국자로 선정하였다

. 그러나 

정확한 야광조개국자의 크기를 확

인할 수 없어 기증된 조개의 크기

로 제작하였다

. 야광조개의 표면에

는 석회질의 각질이 전체적으로 두

껍게 형성되어있었으며 작은 조개

들도 확인되었다

. 따라서 표면의 각질제거작업을 먼저 진행하였다. 표

21 일본연구자 가미야 마사히로

(神谷正弘)가 국립경주박물관에 오키나와산 야광조개 2점

을 기증하였고

, 전시품의 보조 자료로서 추정복원하였다. 

<사진 4> 야광조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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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제22호

면의 석회질이 제거되면 청녹색의 조개 표면이 나타나게 되고 표면이 

제거되면 나전에 사용되는 부분이 나타난다

. 표면이물질 제거 작업이 

마무리 되면 국자 크기를 확인하고 조개 표면에 도면화하였다

. 조개 각

질의 두께는 보통 

8∼14mm로 두껍고 단단하여 전공공구를 사용하여 

재단하였고

, 재단된 국자모양의 야광조개는 실제 출토된 조개의 두께(4

5mm)까지 표면을 연마하였다

. <사진 4>는 표면을 가공한 야광조개국

자의 단면사진이며

, 안쪽층과 바깥층이 확실히 구별되는 것을 볼 수 있

. 가공된 조개는 안쪽면이 우윳빛으로 은은한 광택인 반면 바깥쪽은 

여러 색상의 화려한 광택을 띤다

. 안쪽층은 3mm 정도이며 바깥층은 

7mm 이상이다. 따라서 고분출토품의 두께로 가공할 때, 안쪽층의 두

께가 불규칙하고 얇은 안쪽 면보다는 두께가 두꺼운 바깥층 표면만을 

가공하여 제작하였을 것이고

, 동일한 두께의 가공이 용이 하기 때문이

기도 하다

. 과거 야광조개국자의 표면 연마 재료로는 숫돌이나 단단한 

금속을 연마했던 금속제 공구

, 연마지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상어가죽 

등을 사용하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 금속보다는 약하지만 단단

한 조개의 표면을 연마하려면 그보다 더 단단한 연마도구가 필요하였

을 것이다

. 그러나 과거 사용한 공구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확인할 수 

<사진 5> 야광조개국자의 외각 모서리 부분 및 표면 가공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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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41

없으며 과거 제작자가 직접 만든 단단한 공구들이 였을 것이라고만 추

측된다

. 거친작업과 달리 정밀한 표면 작업의 경우도 어떠한 연마재료

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추측해볼 뿐

, 명확한 자료는 없다. 숫돌이나 

상어가죽은 표면을 곱게 연마할 수 있는 재료들 중에 하나이다

. 편평하

게 말린 곱상어 피부는 목공작업 때 사포로 사용한다

. 상어피부로 만든 

사포는 수명이 길고 가죽에 있는 천연 오일은 나무에 윤기를 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22 그러나 이러한 재료들도 명확하지 않다. 야광조개

국자 복원품의 표면연마에는 종이와 천으로 된 

#150∼#1500 연마지를 

사용하였다

. 기본 두께 5mm에 맞추어진 전체적으로 일정하게 두께를 

맞추었으며 금속 테두리 장식을 끼울 수 있도록 외곽라인을 정리 하였

. 손잡이 부분의 제작은 각도를 맞추어 진행하였으며, 손잡이 각도는 

대략적인 조개 손잡이 각도를 확인할 수 있는 황남대총 북분 및 천마총 

야광조개국자의 금동제 테두리 장식의 평균값인 

115°의 기울기로 제작

하였다

2 금속 테두리 장식 가공

테두리 장식에 사용된 금동판의 두께는 

0.7∼10mm로 측정되었다. 

이는 부식물과 함께 측정되었기 때문에 

0.7mm 동판을 사용하여 야광

22 국립대구박물관

, 뺷상어, 그리고 돔배기뺸, 디자인공방, 2015,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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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제22호

조개국자의 외각모양대로 가공하였다

. 황남대총 출토 야광조개국자의 

I-a형은 원두정을 사용하므로 0.7mm 동판을 재단하여 사용하였고, 총 
2개의 금속 테두리를 만들었다. 순도가 높지 않은 동판을 사용할 경우 

도금작업 시 동판내부의 오염물로 인해 색상이 균일하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 U자형으로 가공하기 위해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U자형 

내틀을 만든 후

, 동판사이에 넣고 모루를 이용하여 단조작업으로 성형

하였다

. 곡률이 심하므로 열풀림을 반복적으로 실시하여 U자형으로 

둥글게 가공하였다

. 열품림 작업시에 생성된 그을음은 산화물세척제

(유산23)을 사용하여 세척하였다. 

제작이 완료된 조개와 금속 테두리는 금속테두리와 조개의 외곽라

인을 비교하여 유격이 있는 부분에 대해 수정작업을 실시하였고

, 조개

23 일반적으로 금속 세척작업에 사용되며

, 황산을 말한다. 무색무취의 끈끈한 불휘발성 액

체로 강한 산성이며

, 열처리,  땜작업 중에 발생하는 산화물 제거용으로 물과 유산을 희

석하여 중탕으로 사용함

.

<사진 6> 야광조개국자 금속 테두리 제작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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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43

와 금속테두리가 잘 물릴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 조개와 금속테두리는 

따로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게 제작하였다

. 이는 손잡이 부분 상단의 리

벳작업으로도 전체 금속테두리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 최종 제작

된 형태는 

<사진 7>에서 볼 수 있다. 최종 마무리된 금속테두리의 리벳

용 구멍은 금속테두리와 야광조개를 고정시킨 후

, 손잡이 모서리 부분

(좌, 우)에 

1mm 드릴날을 이용하여 천공하였다. 리벳의 제작도 같이 실

시하였는데

, 넓이 2mm와 높이 1mm의 동그란 머리모양으로 제작 당시 

사용하였던 모양과 비슷하게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사진 7> 야광조개국자의 테두리 장식 마무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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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제22호

3. 아말감 도금작업

도금작업은 제작 당시의 사용되었던 방법인 아말감 도금

24으로 실시

하였다

. 이온도금의 경우 단시간에 진행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속될수

록 색상의 변화가 나타나므로 금과 수은을 사용한 아말감 도금을 실시

하였다

. 제작된 금속 테두리 장식은 깨끗한 도금층을 만들기 위해 금속 

표면에 산 세척을 실시하고 건조시켰다

. 도금은 금 1돈(3.75g)을 일정한 

크기로 갈아 수은에 녹였다

. 수은에 녹은 금은 다시 여러 장을 겹친 한

지 안에 넣고 짜서 수은을 제거한 후 한지 안에 남아 있는 금과 섞인 수

은덩어리를 사용하여 금속표면에 묻혀 주었다

. 도금은 갈린 금의 입자

크기에 따라 도금의 느낌이 다르다

. 입자가 작으면 금속 표면에 묻는 금

의 양이 작아 여러 번의 도금작업이 필요하고

, 입자가 너무 두꺼우면 광

쇠 작업을 해도 표면이 거칠게 표현된다

. 또 입자의 크기가 클수록 아말

감에 더 긴 시간이 요구된다고 한다

.25 금과 섞인 수은덩어리를 금속표

면에 바르는 작업이 완료되면 불을 주게 되는데 이때 주의해야할 점은 

수은이 기화되기 때문에 환기가 가능한 장소에서 작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 불대를 이용하여 일정하게 금속표면에 열을 준 이후 광쇠를 이용

하여 전체적으로 고르게 광이 날수 있도록 도금층을 비벼주었다

. 불 사

24 아말감 도금법

: 주로 금, 은을 수은으로 녹이거나 도가니에서 적당히 가열하여 여분의 

수은을 제거한 후

, 한지로 여과하여 이것을 금속 표면에 바르고 열을 주어 수은을 증발시

키는 도금방법

25 한민수 외

, 「고대 도금 제작기술에 관한 연구」, 뺷보존과학연구뺸 23,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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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45

용 시에 알아두어야 할 점은 금속 표면에 불을 사용하여 온도를 얼마나 

올리느냐에 따라 도금의 색깔이 바뀐다는 점이다

. 아말감 도금은 3∼4

회 정도 실시하였으며

, 전체적으로 고르게 도금 작업을 진행하였다.

4. 리벳 및 결합

금속 테두리의 도금작업이 마무리 된 후 도금된 리벳을 가지고 결합

작업을 진행하였다

. 손잡이 모서리(⎾, ⏋) 부분에 뚫어 놓은 구멍을 이

용하였으며

, 조개와 금속테두리를 리벳으로 고정하고 접착제는 사용

하지 않았다

. 최종 결합된 금속 테두리는 반복적인 광쇠로 표면을 정리

<사진 8> 아말감도금 재료 제작 공정>

<사진 9> 아말감 도금 후 열처리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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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제22호

하였고

,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광을 내주어 제작을 완료하였다.

<사진 10> 리벳공정 과정

<사진 11> 야광조개국자 추정 복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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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147

V. 결론

현재까지 출토된 신라고분 출토 야광조개국자의 기초 자료를 정리

하여 제작방법을 알아보았으며 제작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이

러한 기초자료 조사 및 분석을 통해 야광조개국자의 도금 및 제작방법 

그리고 복원작업을 통해 유물이 가지는 상징성 등에 대한 의문점을 조

금이나마 확인해 보았고

,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야광조개국자는 일본 교역품으로서 유리용기 및 칠기와 같은 

귀중한 부장품과 함께 놓여진 점

, 황남대총 및 천마총 등 왕릉급에만 

출토되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중요유물이다

. 더 나아가 중요한 유물에 

다시 금속으로 테두리를 제작하여 아말감도금을 사용하여 화려한 독

창적인 장식성을 추가한 최상위층만을 위한 아주 귀한 유물이다

둘째

, 분석 결과에서 도금층에서 수은(Hg)이 확인되므로 당시 아말

감도금을 사용하였다

. 신라고분 출토 금동품들에 대한 정확한 정성․

정량분석 결과를 토대로 비교해야 하나

, 이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를 추

가로 진행하고자 한다

.  따라서 수은 성분의 확인만을 전제로 분석을 

실시하였다

.

셋째

, 야광조개국자에 제작은 ①  완성된 야광조개국자를 가지고 와

서 금속테두리를 제작한 경우

, ②  완전히 제작된 조개를 일본에서 수입

한 경우

, ③  조개만을 수입하여 한국의 장인이 모든 부분을 제작한 경

우로 생각해 볼 수 있고

,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지산동과  후와가네쿠 

유적의 유사한 형태의 완성품이 있는 점으로 볼 때

, 일본에서 국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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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제22호

제작한 야광조개를 한국에서 재가공했을 것이다

. 그 이유는 동일한 시

기에 일본에서 나타나는 야광조개국자에서는 금속의 사용이 없으며

금속에 사용된 리벳의 모양 또한 신라고분 출토 리벳들의 형태가 비슷

하다

. 따라서 이러한 점들로 보아 일본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보다는 

한국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넷째

, 야광조개국자가 위세품으로서의 귀중한 부장품이었는지, 아

니면 평소 사용하던 실용품인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금속테두

리까지 만들어 장식한 귀중한 유물이라는 것은 확실하나

, 금속테두리

의 손잡이부분에 제작되어 있는 타원형 금속판으로 보아 제작당시 부

터 실용에 맞추어 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는 금속판

의 유․무에 따라 손잡이 부분을 잡을 때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 따

라서 타원형 금속판은 제작시

, 심미성 및 편의를 가미한 실용성을 바탕

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 야광조개국자를 사용했다는 명확

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추정 복원한 야광조개국자는 파손된 야광조개국자의 원형 모습으로 

복원하여 당시의 제작방법과 야광조개가 가지는 아름다움을 확인함과 

동시에 금속을 사용한 독창적인 장식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개체 수량

이 적어 정확한 비교 조사라고 할 수는 없으나 현재까지 출토된 자료들

이므로 향후 새롭게 출토될 고분 발굴 자료를 통해 지속적인 연구가 필

요하다

. 복원한 야광조개국자에는 타원형 금동판을 복원하지 않았다. 

이는 명확한 자료 확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것이 어떠한 

용도에 의해서 제작되었는지는 향후 타원형 금동판의 용도에 대한 명

확히 조사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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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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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자료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 「천마총 발굴조사보고서」, 1974.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 「황남대총 I(북분) 발굴조사보고서」, 1985.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외

, 「경주 금관총 발굴조사보고서」. 2011.

경북대 박물관 외

, 「고령 지산동44호분」, 2009.

2. 단행본

국립제주박물관

, 뺷한국-일본 오키나와의 고재제품을 통한 선사시대 문화의 재발견뺸, 통

천문화사

, 2005.

국립대구박물관

, 뺷상어, 그리고 돔배기뺸, 디자인공방, 2015.

九州國立博物館

, 뺷南の貝の ものがたり뺸, 2006.

3. 논문

한민수 외

, 「고대 도금 제작기술에 관한 연구」, 뺷보존과학연구뺸 23,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神谷正弘

, <新羅․大伽倻と倭を結ぶ夜光貝々匙(杓子)>(국립경주박물관 특강), 2013.

________,  「新羅王陵․大伽耶王陵出上の夜光貝杓字(貝匙)の再論と複製品の製作につ

いて」

, 뺷古文化談叢뺸 66, 九州古文化硏究會, 2011.

________,  「「新羅王陵․大伽耶王陵出上の夜光貝杓字(貝匙)」の再論と複製品の製作に

ついて」

, 뺷古文化談叢뺸 68, 九州古文化硏究會, 2012.

4. DB자료

https://ja.wikipedia.org/wiki/ヤコウガ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9019&cid=40942&categoryId=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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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호

4,두산백과

http://www.city.amami.lg.jp.k.it.hp.transer.com/bunka/kyoiku/bunka/bunka-

zai/shite.html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List.do?menuIdx=792&type_gbn=300

0,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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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출토 야광조개국자의 제작기법 및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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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roduction Techniques and Restoration of the Ladles Made of 

Great Green Turban Shell Excavated from Ancient Silla Tombs

Kim, Jong-woo Department of Conservation Science, National Museum of Korea

This study examined the different characteristics of ladles made of great green turban 

shell(yagwangpae, 

夜光貝) that were excavated from the North Mound of Hwangnam-

daechong Tomb, Cheonmachong Tomb, Geumgwanchong Tomb, and Jisan-dong 

Tomb No. 44. It compared them with examples excavated from Japanese archaeological 

sites. The ladles from the ancient Korean tombs above were made from shells of giant 

sea snails known in Japanese as yakogai(

ヤコウガイ), which were widely used for deco-

rating sculptures and mother-of-pearl lacquerware. Since giant sea snails live around the 

Okinawa Islands in Japan and in coral reef areas in tropical seas of the western Pacific 

and Indian Oceans, the ladles must have been made using imported materials and there-

fore offer a glimpse into the exchanges with Japan at the time. Japanese ladles generally 

have carved decorations on the handles, while most Korean versions have gilt-bronze 

rims that have no parallel among the extant contemporaneous examples excavated in 

Japan. The metal rims were fixed to the shells using rivets or by overlapping with each 

other. A ladle from Jisan-dong Tomb No. 44 had no rim at all. As all the ladles were ex-

cavated in a damaged state, their forms are incomplete. This study reproduced a com-

plete ladle in a projected shape to identify major features of the excavated ladles in their 

original shapes.

Keywords Great green turban, Ladle made of great green turban shell, Metal rim, 

Production technique, Restoration

논문 투고일 : 2018.10.12  심사 완료일 : 2018.11.24  게재 확정일 : 2018.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