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37
143
신선아․서현주**
1
Ⅰ. 머리말
Ⅱ. 최근 마한 중요 유적의 조사현황
Ⅲ. 최근 마한 유적의 연구성과
Ⅳ. 맺음말
국문초록
호서지역은
1990년대 천안 청당동유적이 조사된 이후 최근까지 마한 유적들이
많이 확인되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공백에 가까웠던
2세기대 분묘유적도 상당수 확
보되었고
, 의례유구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들도 추가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최근
조사되거나 보고된 호서지역 중요 유적의 현황을 정리하고
, 이를 바탕으로 최근 호
서지역의 마한 유적 연구성과를 살펴보았다
.
최근 몇 년간의 호서지역 마한 고고학의 연구성과는 새로운 유적의 조사와 연계
되는 경향이 강하다
. 홍성 석택리유적, 세종 대평리와 석삼리유적, 청주 송절동유적
등 대규모 취락유적들이 조사됨에 따라 마한 소국 중심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
* 이 글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주최한 「마한의 중심 益山 그 회고와 전망」
(2018.11.22) 발표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 신선아(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유산융합학과 고고학전공 석사과정),
서현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교수)
Corresponding Author : 서현주(E-mail : hjseoseo@hotmail.com, Tel : +82-10-9001-8942)
제23호
144
으며
, 사주식주거지의 출현과 확산에 관한 재검토도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서산
예천동유적 등에서
2세기대 분묘유적의 존재가 확인됨에 따라 2∼4세기 분묘유적
의 단계적인 양상 파악이 이루어졌으며
, 원삼국시대 의례공간으로 추정되는 보령
명천동유적의 조사를 바탕으로 마한 소도에 대한 접근도 가능해졌다
. 철기나 토기
등 호서지역 마한 유물에 관한 연구들도 다각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 이러한 조사․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호서지역 내 지역별 문화권 차이를 언급하거나
, 주변지역들과
의 다양한 교류나 관계를 밝히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주제어
호서지역, 원삼국시대, 마한, 취락, 분묘, 의례, 교류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45
I. 머리말
호서지역은
1990년대 분묘유적 중 주구토광묘가 주류를 이루는 천
안 청당동유적과 청주 송절동유적
, 주거유적 중 사주식 주거지가 주류
를 이루는 천안 장산리유적 등의 조사 이후 마한 유적 자료가 지속적으
로 축적되어 왔다
. 특히 청당동유적은 주구토광묘의 대표 유적으로 이
일대가 마한 목지국의 중심지로 비정되기도 할 정도로 위계 높은 유물
도 확인되었고
, 장산리유적은 천안지역이 사주식 주거의 출현과 관련
하여 일찍부터 언급되던 유적이다
.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조사에 힘입어 더 넓은 지역에서 마한 유적들
이 확인되면서 호서지역 내 지역별 양상도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되었다
.
아산 용두리 진터 유적과 서산 예천동유적 등 시기적으로 공백에 가까
웠던
2세기대 분묘유적 자료도 상당수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대규모
유적의 조사 사례가 늘어나면서 무덤이나 주거 유적을 넘어 경작유구
,
도로유구
, 의례유구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들도 추가되었다. 또한 호서
지역의 분묘나 주거지
, 유물 양상이 경기나 호남 지역과 어떠한 차이가
나며 교류가 있었는지
, 영남지역과도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 어느 정
도 밝혀지고 있다
.
이 글에서는 최근(2015년 이후)
발굴조사되거나 보고된 호서지역의 유
적들 중 지역별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되는 유적 현황을 간
단하게 정리하고
,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성과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고자 한다
.
제23호
146
II. 최근 마한 중요 유적의 조사현황
1. 서산 예천동유적(도면 1)
예천동유적은 충남 서산시 예천동
336-25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낮
은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해당한다
. 예천동유적은 2010년 백제문
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 결과 마한 분구묘
10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중심 시기는
3세기대지만, 2세기 중엽까지 올라가
는 분묘
, 4세기대까지 이어지는 분묘도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1
2016∼2017년에도 예천동유적의 북서쪽 일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
었는데
2
마한 유구는 1구역에서 분구묘 18기, 2구역에서 분구묘 49기,
토광묘
1기, 수혈유구 6기, 구상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분구묘는 기존
조사된 예천동유적과 유사하다
.3 2구역에서 이어진 예천동(221-19번
지
)
도시계획도로(대로3-4호) 개설공사부지 내 유적에서는 마한∼백제
의 분구묘
17기, 토광묘 4기 등이 확인되었는데 분구묘는 기존의 예천
동유적과 비슷하지만
, 토광묘들은 1호 분구묘의 동쪽에 군집되어 있고
직구호
, 철정, 철도자 등이 출토되어 서산 기지리 분구묘 유물과 유사
1
최봉균 외
,뺷서산 예천동유적뺸, 백제문화재연구원, 2012. .
2
예천동
1․3구역은 2017년 전남문화재연구원, 2구역과 3구역 추가 조사는 2017년 가경
고고학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
3
全南文化財硏究院
, 「서산 예천2지구 도시개발사업지구(1․3구역)내 유적」(유인물), 2017.6;
嘉耕考古學硏究所
, 「서산 예천 2지구 도시개발사업지구 유적」(유인물), 2017.8.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47
하여
4세기대로 추정된다.4 이번 조사를 통해 예천동유적의 마한 분구
묘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4
누리고고학연구소
, 「서산 예천동(221-19번지) 도시계획도로(대로3-4호) 개설공사 부
지 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유인물), 2017.6.
<도면 1> 서산 예천동, 동서간선도로(잠홍~석림) 개설구간 내 유적
제23호
148
그리고 서산 동서간선도로(잠흥∼석림)
개설구간 내 유적은 충남 서산
시 석림동
262번지 (1구간)와 잠흥동 159번지(2구간) 일원으로 충적지에
해당한다
. 2016∼2017년에 발굴조사되어 1구간(한국선사문화연구원 조사)
에서 마한∼백제 수혈주거지
14기, 지상식주거지 10기, 구상유구 65기,
수혈유구
114기, 주혈군 25기, 소성유구 4기, 구하상 주혈군 2기, 2구간
(겨레문화재연구원 조사)에서 마한∼백제 수혈주거지
1기, 고상건물지 23
기
, 주구부고상건물지 4기, 수혈 47기, 구상유구 70기, 소형 수혈 720여
기 등이 확인되었다
.
1구간의 수혈주거지는 주로 구하상과 인접한 미고지에서 확인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고 내부시설은 구들 등이 확인된다
. 유물은 장란
형토기
, 심발형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지상식주거지는 4지점과 5지점
의 구하상 북쪽과 남쪽 기슭에 밀집분포하며
, 내부에서 벽주, 노지, 수
혈 등이 확인되어 소성 관련 임시 유구로 추정된다
. 2구간에서도 고상
건물지
, 주구부고상건물지가 특징적인데, 해당 구간이 구하도의 양안
에 위치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고상건물지는 1✕1칸 구
조이며
, 보조주공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 유적은 마한∼백제 취락유
적으로
, 1구간의 경우 구하상(4․5지점)을 중심으로 하는 수혈주거지가
위치한 생활공간
, 구하상의 양쪽 기슭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식주거지
와 소성유구가 위치한 생산공간
, 2∼4지점의 고상식건물지가 위치하
는 저장공간으로 유적 내 공간분할이 확인된다
.5
5
한국선사문화연구원
, 「서산 동서간선도로(잠홍~석림) 개설구간 내 유적(1구간) 발굴조
사 약보고서」
(유인물), 2017.6;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서산 동서 간선도로(잠홍~석림)
개설구간
(2구간) 내 유적 문화재 발굴조사 완료 약보고서」(유인물), 2017.6.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49
2.
홍성 석택리유적(도면 2)
석택리유적은 충남 홍성군 홍북면 석택리 일원의 넓고 완만한 구릉
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 2012년~2013년 한얼문화유산연구원에 의
해 발굴조사되어 마한의 환호와 수혈주거지
230여기(86기 조사), 고상가
옥
1기, 분구묘 19기, 옹관묘 1기, 주구․구상유구 33기, 가마․작업장 5
기
, 소성유구 5기, 수혈․주혈군 357기, 도로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환호는 평면 장타원형에 가까우며 바닥과 벽
에는 목익으로 추정되는 말뚝흔도 확인되었고
, 환호 북쪽에서 도로유
<도면 2> 홍성 석택리유적
제23호
150
구와 수레바퀴흔이 함께 확인되었다
. 수혈주거지는 환호 내․외에 군
집을 이루고 있는데 환호 내에
174기(26기 조사)가 분포한다. 주거지는
평면 방형계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 사주식도 있지만 무주식도 많다.
유물은 원저단경호
, 평저광구호,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완, 대옹편,
시루편
, 철촉, 철부, 홍옥 등이 출토되었다.
환호 내 취락(A-2-1지점)은 크게
3개의 주거군으로 구분되는데, 주
거군별로 광장공간이 형성되어 있어서 당시 주거군마다 집회나 의례
행위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 환호 외 취락(A-2-2
지점
)은 가마 등의 생산시설이 함께 확인되는 것이 특징이다
. 분묘는 환
호취락을 중심으로 주로 서쪽(A-1지구)에 군집을 이루며
, 동쪽(A-2지
구
)에도 산발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 독립된 구릉에 군집을 이루는 A-1
지구에는
15기의 분구묘가 대체로 정연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매장
주체부는 목관과 목곽이며
, 유물은 원저단경호, 양이부호, 소환두도,
소도
, 철겸, 철모, 철도자, 철부 등이 출토되었다.
석택리유적은 주거
, 의례, 생산, 분묘 공간이 함께 확인되며, 주거공
간은 환호시설이 부가된 체계적인 취락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유적의
중심 시기는
3세기 중엽∼4세기 전엽으로 추정된다. 환호의 존재, 취락
의 규모
, 고지명 등을 고려하여 마한 소국 중 감해비리국와 관련되며
그에 연계된 읍락이나 국읍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6
6
한얼문화유산연구원
, 뺷홍성 석택리 유적-제1~4권뺸, 2015.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51
3. 아산 갈매리 목책유적, 북수리유적(도면 3)
2000년대 조사된 바 있는 아산 갈매리유적(3∼5세기)의 서쪽에서 최
근 갈매리 목책유적
, 북수리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갈매리 목책유적은
충남 아산시 배방읍 갈매리 산
56-1번지, 해발 72.9m의 구릉 정상부
와 사면부에 입지하는데 갈매리유적에서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 2014년 금강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원삼국시
대(마한)로 추정
7한 목책렬
, 수혈유구 1기, 구상유구 8기, 주공렬 4기 등
이 확인되었다
. 목책은 2열로 능선 정상부 일대를 감싸는 것으로 추정
되었다
. 유물은 경질무문토기와 원저단경호, 장란형토기, 심발형토기,
시루
, 대호 등이 출토되었다. 정상부 일대에 비교적 넓은 평탄면이 조
성되어 있고
, 갈매리유적을 비롯한 곡교천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라는 점에서 이 유적에는 목책과 함께 중요 시설이 있었을 것
으로 추정되었다
.8
갈매리 목책유적의 서쪽에 위치한 북수리(배방월천지구)유적은 몇 개
의 구역으로 나누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 Ⅰ-3구역은 배방읍 북수리 17
번지 일원의 저평한 충적지로
2016년 호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마한∼백제 수혈주거지
2기, 주구부건물지(방형건물지로 보고)
128기, 지상건물지 134기, 집수정 1기, 구 188기, 수혈 177기, 수레바퀴
7
이 유적도 갈매리나 북수리 유적들과 비슷한 시기일 가능성이 있다
.
8
李仁鎬 외
, 뺷牙山 葛梅里 木柵 遺蹟뺸, 錦江文化遺産硏究院, 2017. 충적지에 위치한 갈매리유적
을 지휘․통제할 수 있는 치소 등의 존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
제23호
152
흔
, 경작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주구부건물지는 평면형태가 대부분 방
형이고 내부 건물은
1✕1칸 구조이다. 유물은 심발형토기, 시루, 대옹
등이 출토되었다
. 지상건물지는 평면형태가 방형, 원형인데 방형은 2
✕2칸의 구조가 주를 이룬다. Ⅰ-3구역의 유적은 충적지에 조성된 대
규모 취락유적으로 주구부건물지가 중심을 이루며 중심 시기는
3세기
후엽∼
4세기 중엽으로 보고되었는데 기존 조사된 아산 갈매리유적이
나 갈매리 목책유적과의 관계가 주목된다
.9 Ⅰ지점은 배방읍 북수리
321-7번지 일원으로 호남문화재연구원 조사구역의 서쪽에 인접한 곳
이며
, 충적지의 낮은 미고지에 해당한다. 2016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
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마한∼백제 수혈주거지
1기, 고상건물지 38기,
노
1기, 수혈 37기, 구 6기, 주혈 등이 확인되었다. 수혈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사주식으로 추정되며 유물은 타날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 고상건물지는 대부분 평면형태가 방형이고 1✕1칸, 2✕1
칸
, 2✕2칸. 3✕2칸의 구조이다. 노는 평면 원형으로 상부는 남아있지
않지만 송풍관편
, 슬래그 등이 출토되어 제련로로 추정된다. 수혈은 형
태가 다양한데
, 12호 수혈에서는 송풍관편이 출토되어 폐기장, 생산관
련시설
, 저장시설 등으로 추정된다. 구는 공간 분할, 하천의 범람 등에
대비한 시설로 추정된다
. 북수리유적 중 Ⅰ지점은 중심 생활권역인 Ⅰ
-
3구역(호남문화재연구원 조사구역)의 외곽이며 주로 생산시설이나 창고
등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유적의 중심 시기는 4세기대로
추정되었다
.10
9
湖南文化財硏究院
, 「아산 배방월천지구 도시개발사업(Ⅰ-3구역)부지 내 문화재 정밀발
굴조사 약식보고서」
(유인물), 2016.12.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53
10
東亞細亞文化財硏究院․아산시
, 「아산 배방월천지구 도시개발사업(1지점) 내 유적 精密發
掘調査 略式 報告書」
(유인물), 2016.11.
<도면 3> 아산 갈매리 목책유적, 북수리유적
제23호
154
Ⅱ-
2구역은 배방읍 북수리 산 3-1번지 일원, 배방산에서 북동쪽으
로 이어지는 해발
48m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2016년 중부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마한∼백제 토광묘
186기, 옹관묘(소형) 1
기가 확인되었다
. 토광묘는 능선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분포하는데, 장
축방향은 모두 등고선과 평행하며
, 규모는 특대형까지 다양하게 나타
난다
. 매장주체부는 목관과 목곽을 사용하였으며, 유물은 원저단경호,
심발형토기
, 환두도, 철도, 철모, 철겸, 철부, 마형대구, 금제이식, 구슬,
패용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11
이번에 조사된 갈매리 목책유적이나 북수리유적은 기존에 조사된
갈매리유적과 마찬가지로 마한에서 백제단계로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
는 것으로 판단된다
. 마한 유물도 잔존하지만 단순토광묘가 주류를 이
루는 북수리 분묘로 보아 중심 시기는
4세기대이며, 개배 등으로 보아 5
세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
4. 천안 정촌리유적(도면 4)
정촌리유적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정촌리 산
20-2번지에 위
치하며
, 해발고도 95m의 구릉지 정상부와 남․북쪽 사면부와 곡부에
입지한다
. 2014∼2015년 가경고고학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마한
11
中部考古學硏究所․아산시
, 「아산 배방월천지구 도시개발사업(Ⅱ-2구역)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유인물), 2016.10.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55
의 대지조성층을 비롯하여
, 수혈주거지 79기, 수혈유구 80기, 구상유구
10기, 주구토광묘 3기, 토기가마 1기가 확인되었다.
대지조성층은 곡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인위적인 복토를 실시하여 넓
은 대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 수혈주거지는 구릉 정상에서부터 하
단부까지 분포하고 있는데
, 주거지는 평면 말각방형이고 그 중 사주식
<도면 4> 천안 정촌리유적
제23호
156
은
50여기 정도 확인된다. 유물은 타날문토기편, 시루, 파수 등이 출토
되었다
. 주거지들 사이에서 수혈유구는 평면형태가 원형, 장방형, 말각
방형 등으로 다양하다
. 구상유구는 정상부를 둘러싼 감싸고 있어서 환
호나 배수를 위한 시설로 추정하고 있다
. 주거공간에서 약간 떨어진 곳
에 토기가마가 위치하는데 평면 장타원형의 등요이며
, 유물은 대옹, 원
저단경호 등이 출토되었다
. 분묘는 많지 않지만 구릉의 경사면 중상단
부에 주구토광묘가 분포한다
. 주구토광묘는 장축방향이 등고선과 평
행하고
, 목관은 평면 日자형이다. 유물은 소환두도, 철모, 철촉, 철착,
연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
정촌리유적은
3세기 중엽을 중심으로 4세기 중엽까지 존속되었던
마한의 주거
, 생산, 분묘 공간이 지점을 약간 달리하면서 분포하는 취
락유적이다
. 주거는 한정된 공간에 수차례 중복 조성되고, 정상부에 환
호로 추정되는 유구도 있으며 곡부에 인공대지도 조성된 점에서 천안
지역 마한 취락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2
5. 세종 대평리, 석삼리유적(도면 5)
대평리유적은 세종시(구 연기군)
대평동 92-1번지 일원으로, 금강 중
류 남안에 형성된 넓은 충적지에 해당한다
. 2012년 A∼C지점 조사에
이어
2012∼2015년 한국고고환경연구소에 의해 B지점의 북서쪽에 인
12
嘉耕考古學硏究所
, 뺷天安 貞村里遺蹟Ⅰ․Ⅱ뺸, 2017.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57
접한
D지점이 발굴조사되어 마한∼백제 수혈주거지 21기, 주구부굴립
주건물지
3기, 굴립주건물지 29기, 주구토광묘(분구묘로 언급) 109기, 토
광묘
58기, 옹관묘 14기, 수혈유구 443기, 구상유구 35기, 경작유구 등
이 확인되었다
.
수혈주거지는 대부분 자연제방 미고지에 분포하는데 평면 방형계가
주를 이루지만 원형계도 확인되고
, 주공배치는 사주식, 사주+벽주식,
벽주식
, 무주식이 확인된다. 부뚜막은 ㅡ자형이 주를 이루고 쪽구들은
ㅡ
자형
, ㄱ자형이 확인된다. 유물은 장란형토기, 심발형토기, 시루 등
이 출토되었다
. 주구부굴립주건물지는 주거지와 수혈유구가 분포한
밀집지역의 중앙부에 위치하거나 분묘와 주거 구역 사이의 빈 공지에
위치한다
. 건물지 내부에 취사난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1✕3칸으로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공방, 창고, 의례 등의 특수 시설로
추정된다
. 분묘군은 구상유구로 인해 2개 군집으로 구분되는데 주구토
광묘의 주구 형태는 타원형
, 원형, 말각방형 등 다양하다. 매장주체부
는 대부분 목관이며
,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다. 토광묘는 그 외곽
에 분포하는데 매장주체부는 대부분 목관이며
, 유물은 원저단경호, 원
저단경소호
, 철모, 철겸, 철부, 철도자, 살포, 구슬 등이다. 옹관묘도 분
구묘의 내․외에 배장되기도 하지만 토광묘와 함께 단독으로 조영된
대옹을 이용한 것도 있다
. 이혈합장묘는 늦은 단계에 조성된 것으로 보
인다
. 수혈유구는 주거지들과 함께 분포하는데, 저장․소성․함정 등
의 용도로 추정된다
. 경작유구는 인근 자연제방의 미고지와 미고지 사
이에 형성된 소곡저에 분포하는데 논과 밭으로 구분된다
. 대평리유적
은 충적지에 위치한 주거와 분묘가 구역을 분리하여 존재하는 마한∼
제23호
158
백제의 취락으로 분묘도 평지에 조성된 점이 특징이다
. 이와 함께 구하
도에서 수전과 밭 등의 경작유구도 확인되고 수혈유구 중 함정도 확인
되어 농경취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주목된다
.13
인근의 석삼리유적은 세종시(구 연기군)
소담동․반곡동 일원으로,
괴화산 북쪽의 충적지와 서쪽에 위치한 구릉의 가지능선에 해당하며
,
미호천의 합류지인 금강과 접하고 있다
. 2010~2013년 한국고고환경
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마한∼백제 수혈주거지
8기, 주구부굴립
주건물지
23기, 굴립주건물지 38기, 수혈유구 108기, 구상유구, 도로유
구 등이 확인되었다
.
수혈주거지는 경사면 상부에 분포하는데
, 다른 건물지보다 이른 시
기에 축조되었다
.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사주식도 4기가 보
인다
. 유물은 단경호, 장란형토기, 심발형토기, 양이부호 등이 출토되
었다
. 주구부굴립주건물지는 남쪽구역의 경우 완사면에 입지하는데,
주구 형태는 주로 원형이고 북쪽구역의 경우 평탄지에 입지하는데
, 주
로 방형이다
. 내부 건물지는 1✕1칸의 평면형태에 1개의 동지주를 돌출
시킨 형태여서 전체적으로 오각형을 이룬다
. 칠각형굴립주건물지는
독립되어 있고 넓은 공지를 함께 보유하고 있어서 제의(혹은 생산, 저장)
관련 시설로 추정된다
. 구상유구는 취락의 전체를 구분하는 대형의 구
획구와 구획구 내부에 분포하는 소형 구상유구로 세분된다
.
석삼리유적은 비슷한 시기로 볼 수 있는 인근의 대평리유적과 비교
했을 때
, 금강에 인접한 입지적 특성, 제의 관련 특수 유구의 존재 등에
서 차이가 난다
. 대평리유적에서 생산된 물품 등의 수입과 가공, 저장,
13 이홍종 외
, 뺷燕岐 大平里遺蹟뺸, 韓國考古環境硏究所, 2017.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59
<도면 5> 세종 대평리, 석삼리유적
제23호
160
유통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 한성기 백제의 취락과 도
시 성립 이전 마한의 전략적 거점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4
6. 청주 오송유적(도면 6)
오송유적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봉산리와 정중리 일원에 위
치하는데 조천
, 병천천, 미호천 등과 인접한 낮은 구릉성 산지에 입지
한다
. 2014∼2016년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는데, 마
한의 수혈주거지
5기, 주구부건물지 28기, 토기가마 8기, 목탄요 1기,
마한∼백제 토광묘
735기, 옹관묘 26기, 석실묘 1기가 확인되었다.
수혈주거지는 구릉 남사면 중상단부에 위치하는데
, 평면형태는 모
두 방형계이고 사주식이다
. 유물은 장란형토기, 단경호,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 주구부건물지는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는데, 평면형태는
원형
, 타원형, 방형 등 다양하며 내부 건물은 1✕1칸, 1✕2칸 구조이다.
주구부건물지는 주구에서 내박자
, 방추차, 원판형토제품 등 생산 관
련 유물이 비교적 많고 철광석과 철재도 확인되어 생산과 관련된 시설
(공방)
등으로 추정된다. 목탄요도 남쪽 사면 중하단부에 자리하고 있는
데
, 지하식이며 측구도 확인된다. 토기가마는 구릉 사면에 반지하식으
14 이홍종 외
, 뺷燕岐 石三里遺蹟뺸, 韓國考古環境硏究所․韓國土地住宅公社, 2015. 아산 갈매리유
적과 비슷한 주구부건물지가 주류를 이루는 점에서 유적의 중심 시기는 백제 한성기까
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61
로 구축하였는데 가마의 평면형태가 장타원형인 등요이다
.
마한의 분묘는 단순토광묘
, 주구토광묘, 주구연접토광묘, 구획토광
묘 등의 토광묘와 옹관묘로 구분된다
. 옹관묘는 구획토광묘가 집중되
는
4지점에 주로 분포하는데 대옹이나 소옹, 토기 등을 이용하였다. 오
송유적은 상당수의 분묘가 확인되어
2∼5세기에 걸친 마한~백제의 분
<도면 6> 청주 오송유적
제23호
162
묘 변화를 잘 보여주는데
, 분묘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크게 Ⅰ∼Ⅳ단
계로 구분하였다
. Ⅰ-1단계에는 주로 단순토광묘가 확인되며, 단경호,
유개대부호
, 원저심발형토기(원저발), 철검, 철모, 농공구류, 마구류 등
이 출토되는데 철검
, 철모, 마형대구의 형태로 보아 2세기 중엽∼2세기
후엽으로 추정된다
. Ⅰ-2단계는 토광묘가 이어지며 주구토광묘가 등
장하는 시기로
2세기 후엽∼3세기 초로 추정되며, 유물 부장양상은 앞
단계와 거의 일치하지만 세부기종의 변화가 확인된다
. Ⅱ단계는 주구
토광묘가 지속적으로 조영되며
, 유물 부장양상에 있어 변화가 확인되
는데 유개대부호와 원저심발형토기가 탈락되거나 심발형토기로 대체
되는 것이 특징이다
. Ⅲ단계는 주구연접토광묘와 구획토광묘가 출현
하는데
, 분구묘의 영향으로 주구연접토광묘라는 새로운 묘제가 출현
한 것으로 보이며
, 분묘 공간 또한 산지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유
물 부장양상은 단경호의 출토 빈도가 다수 소략해진다
. 그 시기는 3세
기 중엽∼
4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Ⅳ단계는 주구토광묘, 주구연접토
광묘
, 구획토광묘의 조영이 사라지고 토광묘와 석실묘의 조영이 확인
되는데 이는
4세기 후엽 이후로 백제와 관련되는 무덤들이다.15 오송
유적은 많은 분묘 자료가 조사되어 마한∼백제 분묘의 단계적인 변천
과정을 밝힐 수 있었고
, 주구연접토광묘나 구획토광묘 등의 존재도 확
인할 수 있어서 중요하다
.
15 중앙문화재연구원․충북개발공사
, 뺷청주 오송유적뺸, 2018.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63
7. 청주 송절동유적(도면 7)
송절동유적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외북동․화계동 일원으
로
, 미호천 남쪽 충적지에 인접하여 낮은 구릉이 발달한 곳이다. 송절
동에서는
1990년대 분묘유적이 조사된 바 있는데 2014년∼2016년에 7
개 지구로 나누어
16
발굴조사한 결과 마한∼백제의 수혈주거지, 제련
로
, 분묘 등 약 1200여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수혈주거지는 Ⅶ지구의 충적지형에 주로 군집되는데 평면 방형이
가장 많고 원형
, 呂(凸)자형 등도 확인되며, 주공은 사주식, 벽주식, 사주
식
+벽주식이 있다. 부뚜막과 쪽구들은 모두 점토로 축조되었고, 쪽구
들은 ㄱ자형이다
. 呂(凸)자형 주거지는 주로 고지대에 위치하는데 수혈
주거지의 형태는 방형이고 내부에서 쪽구들도 확인된다
. 제련로는 주
로 평탄지에 분포하는데
, 노의 평면형태는 원형이 가장 많다. 단야로도
평탄지에 위치하는데 평면형태는 모두 원형이다
. 제철 관련 폐기장도
몇기 확인된다
.
분묘는 낮은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조성되었는데 Ⅰ․Ⅱ․Ⅲ․
Ⅴ
지구에서 주구토광묘와 단순토광묘(단장)
, 동혈․병렬․이혈합장토
광묘 등이 확인되었고
,17 옹관묘는 Ⅱ․Ⅴ지구에 있는데 대옹이나 소
16 Ⅰ지구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
, Ⅱ지구는 호서문화유산연구원, Ⅲ지구는 충청북도문화
재연구원
, Ⅳ지구는 중원문화재연구원, Ⅴ지구는 호서문화유산연구원, Ⅵ지구는 충북
대학교박물관
, Ⅶ지구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중원문화재연구원․충청북도문화재연
구원․호서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
17 기존의 송절동 분묘유적과 Ⅱ지구의 분묘군이 이어진다
.
제23호
164
<도면 7> 청주 송절동유적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65
옹
, 토기 등을 이용하여 조영되었다. Ⅰ지구의 경우 이혈합장묘를 중심
으로 주변으로 단독토광묘가 일정 간격을 두고 환상으로 배치되고
, Ⅱ
-
5지점에서는 병혈합장묘가 구릉 정상부에 입지하고 주변에 단순토
광묘가 배치되는 양상이다
. 이보다 이른 시기의 분묘는 Ⅱ․Ⅲ․Ⅴ지
구에 조성되는데 위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 주구의
평면형태가 ㅁ자형과 ㅇ자형인 것은 구릉의 능선부에 단독으로 조성되
지만
, U자형과 역U자형인 것은 구릉 사면부에 주구를 서로 잇대어 조
영하여 집단묘적 성격이 강하다
. 매장주체부는 목관과 목곽이며, 유물
은 원저단경호
, 심발형토기, 양이부호, 개, 옹, 철도자, 철촉, 철착, 방추
차
,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Ⅴ지구(외북동) 2지점 1․2․9호 토광묘에서
는 양이부호
, 주머니호, 조합식우각형파수부장경호 등 영남지역의 2세
기대 와질토기도 출토되었다
.
송절동유적은 주거를 비롯한 생산
, 저장, 분묘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
나는 미호천유역의 마한∼백제 대단위 취락 양상을 보여준다
. 분묘 중
토광묘에서 영남지역 와질토기가 출토되어 그 지역과의 교류 양상도
추정할 수 있다
. 특히, 많은 수의 제련로가 확인되고 단야로도 함께 확
인되어 일련의 제철공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 조업 시기는 중복된
유구들로 보아
3세기 4/4분기∼4세기 2/4분기로 추정된다. 송절동유적
은 미호천 중류지역에서 철소재 생산과 상급 철기 제작이 가능한 곳으
로
, 생산된 철소재를 주변에 공급하는 주요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18
18 청주테크노폴리스 외
, 뺷淸州 松節洞 遺蹟Ⅰ뺸, 2018a; 청주테크노폴리스 외, 뺷淸州 松節洞 遺
蹟ⅩⅢ
뺸, 2018b; 청주테크노폴리스․中原文化財硏究院, 뺷淸州 松節洞 遺蹟Ⅸ-Ⅶ地區 2地
제23호
166
8. 보령 명천동유적(도면 8)
명천동유적은 충남 보령시 명천동 일원에 위치하는데
, 동쪽에 위치
한 옥마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의 끝에 있는 낮은 구릉
에 해당한다
. 2015년∼2016년에 대한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
어 마한의 환구
3기와 토광묘 1기가 조사되었다.
환구는
3기가 모두 연접해있는데 1호는 2열, 2․3호는 3∼4열의 다
중 구이며 중첩관계와 출토유물로 보아
3호-2호-1호 순으로 축조되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환구의 평면형태는 3기 모두 말각방형에 가깝
고
, 2․3호에서는 출입시설도 확인된다. 2호 환구 내부의 주공군 중 중
앙에 있는 것은 환구 구축 시 기준목
, 이후 입대목으로 교체, 재사용했
을 가능성도 있다
. 환구 내에서는 경질무문토기 소호, 타날문토기 완,
심발형토기
, 원저단경호, 양이부호 등이 출토되었다. 토광묘는 2호 환
구의 동쪽 출입부 입구에 위치하는데
, 내부에서 동경과 함께 다량의 유
리옥이 출토되었다
. 동경은 사유팔금경이라고 부르는 중국 한경으로,
點
뺸, 2018; 청주테크노폴리스․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Ⅳ-外北洞․花
溪洞 遺蹟
뺸, 2018a; 청주테크노폴리스․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Ⅹ-Ⅶ
地區
3地點뺸, 2018b; 청주테크노폴리스․한국선사문화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Ⅱ-1∼3
地點
뺸, 2018a; 청주테크노폴리스․한국선사문화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Ⅱ-4․5地點뺸,
2018b; 청주테크노폴리스․한국선사문화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Ⅱ-6∼8地點뺸,
2018c; 청주테크노폴리스․한국선사문화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Ⅷ-Ⅶ地區 1地點뺸,
2018d; 청주테크노폴리스․호서문화유산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Ⅲ-松節洞․外北洞․
花溪洞 遺蹟
뺸, 2018a; 청주테크노폴리스․호서문화유산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Ⅵ-外北
洞 遺蹟
뺸, 2018b; 청주테크노폴리스․호서문화유산연구원, 뺷淸州 松節洞 遺蹟Ⅺ-Ⅶ地區
4․5․6地點뺸, 2018c .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67
1세기 후엽∼2세기 전엽으로 추정된다. 환구 내 출토 토기로 보아 동경
은
2세기 중엽 이후 제의용으로 사용되다가 3세기경 토광묘에 함께 묻
힌 것으로 추정되며
, 이와 함께 2호 환구는 폐기된 것으로 보았다. 환구
는 주변에서 마한 취락이나 분묘군들이 확인되지 않은데다가 약간 높
은 지점에 위치하여 의례공간으로 추정되었다
. 환구는 상당히 넓은 범
위를 감싸고 있고 중앙에 주공이 있어 마한의 소도일 가능성도 제기되
<도면 8> 보령 명천동유적
제23호
168
었는데 환구 출입구를 막고 있는 단독의 토광묘는 제의를 주관했던 제
사장의 무덤으로 추정하였다
.19
9. 서천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유적
서천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개발사업지구 내 유적은 충남 서천군
장항읍 일원에 있는 낮은 구릉에 입지하고 있다
. 2014년∼현재까지 경
상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마한 유구는 발굴
28구역, 발굴30
구역
, 시굴3-3구역, 4구역을 중심으로 수혈주거지 84기, 토광묘 10여
기
, 옹관묘 6기, 수혈 50기,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수혈주거지와 분묘는
30구역과 28구역에 중심으로 분포한다. 수혈
주거지와 수혈은 남쪽 사면부의
2개 지점에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해
발
9∼17.5m 내외에 위치한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깝고 내
부시설은 벽구
, 주공 등이 보인다. 분묘는 서쪽 능선 정상부와 중앙부
능선을 따라 분포하며
, 주로 토광묘와 옹관묘가 확인된다. 토광묘의 장
축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다
. 유물은 원저단경호, 양이부호, 철정, 철
겸
, 철부 등이 출토되었다.20 아직 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서천지역
마한 취락유적 중 상당한 규모이고
, 주거와 분묘의 공간 분할도 잘 보
19
大韓文化財硏究院․한국토지공사
, 뺷保寧 鳴川洞 遺蹟뺸, 2018.
20 경상문화재연구원
,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개발사업부지 내 유적 2단계 2차 시(발)굴
조사 부분완료 약식보고서
(발굴27․29․30구역)」(유인물), 2018.7.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69
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III. 최근 마한 유적의 연구성과
1. 유적 관련 학술회의 개요
최근 호서지역에서는 다양한 마한 유적들이 조사됨에 따라 이와 관련
된 분묘와 주거
, 제의, 토기 등 다양한 주제로 관련 학술회의가 열렸다.
2015년에는 호서고고학회의 주최로 열린 <서산(瑞山) 부장리(富長里)
고분군(古墳群)의 정체성(正體性)
>에서 서산 부장리고분군의 분구묘와 출
토유물 등을 토대로 그 축조 세력과 정체성을 검토하였는데 그 과정에
서 호서지역 분구묘를 중심으로 마한 분구묘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졌
다
. 2016년에는 호서고고학회와 중부고고학회의 공동 주최로 열린 <금
강․한강유역 원삼국시대 문화의 비교연구
>에서 금강유역과 한강유
역의 원삼국시대 분묘
, 유물, 취락 양상을 비교 검토하였다. 그리고 마
한연구원의 주최로 열린
<동북아시아에서 본 마한토기>에서는 마한토
기의 기원과 지역성
, 분묘와 주거지 출토 토기의 의미, 중국․일본과의
관계 등을 검토함으로써 토기를 중심으로 마한사회에 관한 논의가 이
루어졌다
. 2017년에는 보령 명천동유적 조사를 계기로 ‘마한의 소도와
제23호
170
의례공간
’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개최되어 마한의 의례에 대한 문헌
과 고고학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 마한연구원 주최로 열린 <마한의
마을과 생활
>에서는 문헌,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마한의 마을구
조
, 주거생활, 중국․일본과의 관계 등을 검토함으로써 마한의 생활상
에 관한 논의가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 2018년에는 청주 송절동유적
에서 마한∼백제 한성기의 대규모 분묘와 취락유적이 조사됨에 따라
,
송절동유적 조사기관들의 공동 주최로
‘청주 마한 백제를 품다’라는 주
제의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 송절동유적의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마
한∼백제의 토광묘
, 주거지, 생산유구의 양상과 출토유물을 검토하였
으며
, 이를 토대로 마한∼백제 한성기 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자세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 또한 마한연구원의 주최로 <마한․백제 주
거지 조사연구 성과와 과제
>가 개최되었는데, 충청지역 등 마한․백제
권역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비교하여 논의하고
, 관련 연구성과
및 과제를 검토하는 자리가 되었다
.
2. 유적에 대한 연구성과
(1) 지역별 대규모 취락유적과 마한 소국 중심지 등 논의
그동안 호서 여러 지역에서 분묘와 주거 유적이 많이 조사되었는데
대체로 구릉에 입지하며
, 규모도 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천안 용원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71
리유적
, 대전 용계동유적 등이 비교적 대규모에 속하는 취락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 최근 조사 성과를 통해서도 여러 지역에서 마한 취락유
적이 확인되었는데 그 규모도 커졌을 뿐 아니라 입지도 충적지로 넓혀
지게 되었다
. 그러다보니 유적 내 유구 구성도 주거뿐 아니라 분묘, 생
산
, 의례, 도로유구까지 복합적으로 한 유적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주
거들을 넓게 환호로 두르기도 하였다
. 전자는 홍성 석택리유적, 세종
대평리와 석삼리 유적
, 청주 송절동유적, 후자는 홍성 석택리유적이 대
표적이다
. 규모는 잘 확인되지 않았지만 천안 정촌리나 서천 장항읍 일
대에서는 구릉 사면에서 주거유적들이 확인되었다
. 이러한 유적들은
대체로 분묘와 주거가 함께 또는 가까운 곳에서 확인되는 점도 특징이
다
. 특히, 유적의 규모나 내용으로 보아 홍성 석택리유적은 마한 소국
중 읍락이나 국읍의 중심지를 비정하고 있으며
,21 청주 송절동유적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22
다만
, 충적지에 위치한 유적들 중 주구부건물지가 주류를 이루는 아
산 북수리유적
, 연기 대평리와 석삼리유적 등은 건물지의 구조나 북수
리유적 등은 분묘 등으로 볼 때 중심 시기가 오히려
4세기대로 볼 수 있
어서 취락유적의 입지 변화 또는 유적의 확대에는 백제 영역화가 반영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최근 마한․백제권역의 취락 분포에 대해 공
간분석을 실시하면서 호서지역은
4세기 이전 홍성, 대전, 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의 인구밀집이 있다가
, 4세기 이후 앞에서 언급한 지
21 한얼문화유산연구원
, 뺷홍성 석택리 유적뺸 3, 2015, 215~216쪽.
22 성정용
, 「송절동 유적 조사성과와 의의-마한․백제를 중심으로」, 뺷청주 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부지 내 송절동 유적 학술대회-청주 마한 백제를 품다
뺸, 2018, 17~26쪽.
제23호
172
역들의 인구밀집은 축소되고 새로운 지역을 포함한 호서(충청)지역 전
역에 인구밀집이 나타난다고 보았는데 이는 백제의 영역화의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
.23 따라서 호서지역의 충적지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취
락유적들은 마한에서 백제로의 변화 양상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그
성격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 이러한 취락이 마한 소국의 중심지일 수도
있지만
, 아산 갈매리유적처럼 백제의 지방 도시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
이다
.
그리고 지역별로 이러한 상황을 살펴본 연구들도 있다
. 먼저 아산지
역의
2∼5세기대 유적에 대해 2∼3세기에는 용두리, 명암리 유적 등 탕
정지역이 중심세력이었다가
4세기 이후 갈매리유적 등 배방지역이 백
제지역이 중심세력으로 부상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24 대전지역
취락들의 위계를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3세기 후엽-4세기 중엽의 대전
용계동 중심-일반취락 등 읍락단위의 정치체
, 4세기 중엽 이후 백제
의 영역 확장 등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25
(2) 2∼4세기 분묘유적의 단계적인 양상 파악
그동안 호서지역의 마한 분묘유적은 대부분
3∼4세기 전엽에 해당
23 박지영
, 「원삼국~삼국시대 마한․백제 권역 취락 분포의 시공간적 변화-방사성탄소
연대와
GIS를 이용한 시험적 검토」, 뺷韓國考古學報뺸104, 한국고고학회, 2017, 67~69쪽.
24 최욱진
, 「아산지역 2~5세기 고대유적의 현황과 의미」, 뺷先史와古代뺸 55, 한국고대학회,
2018, 144~151쪽.
25
金多熙
, 「原三國~百濟 漢城期 大田地域 聚落의 變化樣相」, 뺷湖西考古學뺸 38, 호서고고학회,
2017, 16~31쪽.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73
하는 주구토광묘로 대표되어 왔다
. 아산 용두리 진터와 명암리 밖지므
레유적
, 서산 예천동유적의 조사로 인해 토기나 철기 등에서 2세기대
유적들이 존재함이 알려지게 되었다
. 이러한 자료는 천안 대화리․신
풍리유적이나 세종 용호리유적
, 부여 증산리유적, 서천 봉선리유적 등
에서도 발견되었다
. 이를 통해 호서북부지역의 2세기대 양상은 단순토
광묘와 철검
, 이단관식 또는 관부돌출 직기형철모, 유개대부호, 원저심
발형토기 등으로 대표되며
, 호서 서해안이나 서남부 지역에서도 비슷
한 철검과 철모
, 이조돌대주조철부 등이 확인되었다.
최근의 연구들에도 이러한 자료들이 반영되어 단계 설정이 이루어
지고 있다
. 호서지역 중 대체로 서해안과 서남부 지역의 분구묘를 기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독립형에서 연접형
, 단장에서 다장으로 변화된
다고 보고
, 2세기 분구묘 발생기(부여 증산리, 서산 예천동), 3세기 이후 분
구묘 확산기(서산 예천동)
, 4세기 중․후엽 이후 분구묘 발전기(서산 기지
리
, 부장리)
, 분구묘 소멸기 등으로 구분하였다.26 청주 오송유적과 송절
동유적 등 호서북부지역에도
2세기에 해당하는 분묘들이 더 추가되었
다
. 그리고 3세기를 전후하여 주구토광묘가 나타나다가 3세기 중엽∼4
세기에 주구토광묘 외에도 오송유적에서는 주구연접토광묘와 구획토
광묘
,27 송절동유적에서는 동혈․병렬․이혈 합장토광묘28가 추가되
어 무덤이 대형화되는 단계도 있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29
26 정해준
, 「호서지역 분구묘의 전개과정」, 뺷2015 제31회 호서고고학회 학술대회-서산 부
장리 고분군의 정체성
뺸, 2015, 29~58쪽.
27 중앙문화재연구원․충북개발공사
, 앞의 책, 2018.
28 이미란 외
, 「송절동 유적 마한~백제 토광묘의 양상」, 뺷청주 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부지
내 송절동 유적 학술대회-청주 마한 백제를 품다
뺸, 2018, 61~83쪽.
29 소수이지만 편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나타나는데 영남지역의 자료들과 비교하여 호
제23호
174
(3) 사주식 주거지의 출현과 확산 재검토
호서지역의 마한 주거지는 기본적으로 평면형태
, 주공배치, 부뚜막
과 쪽구들시설의 축조 재료 등에 따라 분류해오고 있다
. 호서지역에서
평면 呂(凸자)형이나 벽주식 주거
, 내부의 부뚜막시설이나 쪽구들의 축
조 재료가 달라지는 것은 백제의 영향 또는 관계에 의한 것으로 설명해
오고 있는데 최근에도 호서지역 자료를 종합하여 이를 언급하고 있
다
.30 청주 송절동유적의 주거지도 대체로 비슷한 기준에 따라 단계를
구분하여 있으며
,31 미호천유역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원삼국∼백제 한
성기의 주거지 부뚜막과 쪽구들의 축조 재료가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
하여 백제와의 관계를 추정하기도 하였다
.32 각 지역별로 백제의 영역
화에 따라 주거지에서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 양상은 약간씩 차이가
난다
.
그리고 호서지역 마한주거지를 대표하는 평면 방형의 사주식 주거
지에 대한 재검토도 이어지고 있다
. 호서지역 마한의 수혈주거지는 평
면 방형의 사주식주거지가 대표적이며 그 출현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천안 장산리유적에서
2∼3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는 의견이 제시된
서지역의
3세기 자료들을 대부분 4세기 이후로 보기도 한다(조재용, 「백제 한성기 중서
부내륙지역 마한 토기 연구」
, 뺷고고광장뺸 18, 부산고고학연구회, 2016, 12~17쪽).
30 신연식
, 「금강 유역 원삼국~백제시대 취락양상」, 뺷호서고고학회․중부고고학회 합동
학술대회-금강․한강유역 원삼국시대 문화의 비교연구
뺸, 2016, 9~30쪽.
31 이재돈 외
, 「송절동 유적의 마한․백제 주거지 검토」, 뺷청주 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부지
내 송절동 유적 학술대회-청주 마한 백제를 품다
뺸, 2018, 105~128쪽.
32
金孝眞
, 「원삼국∼백제 한성기 미호천 유역의 취사난방시설의 變遷과 地域性」, 한신대 석
사논문
, 2018, 55쪽.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75
바 있다
.33 더 나아가 김승옥은 천안 일대가 사주식 주거의 집중 분포
지역이고 천안 이남지역 중 백제계 주거지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점에
서 이 일대의 마한세력이
3세기 중반 백제와의 경쟁 속에서 남하한 결
과 차령이남지역에 사주식 주거가 확산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34
그런데 사주식 주거지가 내부시설에서 지역 차이가 있고
, 호남서부
지역의 방사성탄소연대가 이른 점에서 일방적인 이주론보다는 지역성
과 연동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35 천안 등 호서북
부지역은 주거 구조는 호남지역권이지만 일상용의 토기문화는 중부지
역권이어서 일치하지 않는데 주거문화만 남쪽으로 확산되었다고 보는
점에서 사주식 주거의 출현과 확산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
였다
.36 사주식 주거지가 천안 일대에서 출현하여 확산되었다는 견해
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한 결과 방사성탄소연대와 주거 내 사주공 내 면
적비 등을 이용하여 호남지역에서 처음 출현하여
3세기대 호서, 호남
지역에서 확산되고 마한 정치체들 간 교역
/교환망의 확대에 따른 것으
로 이해하고 있다
.37 호남서부지역과 천안 등 호서북부지역은 사주식
주거지가 다수 분포 양상은 공통되지만 분묘
, 유물 등 다른 고고학 자
료에서는 그다지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 따라서 기존의 주류적인 견
33
李康承 외
, 뺷天安 長山里 遺蹟뺸, 忠南大學校博物館․公務員年金管理公團, 1996, 137~138쪽.
34
金承玉
, 「全北地域 1~7世紀 聚落의 分布와 性格」, 뺷韓國上古史學報뺸 44, 한국상고사학회,
2004, 70~71쪽; 金承玉, 「금강 유역 원삼국~삼국시대 취락의 전개과정 연구」, 뺷한국고
고학보
뺸 65, 한국고고학회, 2007, 31~34쪽.
35 박지웅
, 「호서․호남지역 사주식 주거지 연구」, 경희대 석사논문, 2014, 48~55쪽.
36 서현주
, 「마한 토기의 지역성과 그 의미」, 뺷先史와古代뺸 50, 한국고대학회, 2016b, 72~76쪽.
37 허진아
, 「호서-호남지역 사주식주거지 등장과정과 확산 배경」, 뺷韓國考古學報뺸 108, 한
국고고학회
, 2018, 37~42쪽.
제23호
176
해처럼 천안 등 호서북부지역에서 사주식 방형 주거가 출현하여 남쪽
으로 확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 주구묘의 주구, 호남지역의 호형분주
토기 등 오히려 호남지역에서 호서북부지역으로 영향을 미친 것들도
있어서 사주식 등 마한의 주거문화는 오히려 남쪽(호남서부-서해안지역
등
)에서 호서북부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4) 제의유적 조사로 마한 소도에 대한 접근 가능
호서지역 마한 유적 중 보령 명천동유적처럼 단독으로 존재하는 제
의유적의 조사는 상당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 또한 명천동유적에서
동경의 부장이 이루어진 분묘가 발견된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명천동유적의 다중 구를 포함한 초기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의 의
례공간을 검토한 연구를 보면
, 마한의 의례공간은 구릉의 환호(구)들을
환호취락 내 별도의 공지를 의례공간인 것과 독립적인 것으로 분류하
고 후자에 속하는 명천동유적은 이를 별도로 관리할 시설이나 기구를
상정하기도 하였다
.38 명천동유적의 보고서에는 좀 더 명확하게 환구
라고 표현하고 단독으로 존재하는 의례공간으로 보고 있으며 더 나아
가
뺷삼국지뺸 위서 동이전(뺷三國志뺸魏書 東夷傳) 등에 나오는 마한 소도의 가
능성을 제기하였다
.39 익산 영등동유적에서도 명천동유적과 비슷하게
38 나혜림
, 「보령 명천동 유적을 중심으로 본 소도(蘇塗)와 의례공간」, 뺷百濟學報뺸 22, 백제
학회
, 2017, 54쪽.
39
大韓文化財硏究院․한국토지공사
, 앞의 책, 2018, 691~694쪽.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77
단독으로 존재하는 다중 구가 확인되어 이 유구 또한 마한의 의례용 환
구로 보고 있다
.40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령 명천동유적의
2호 환구를 막고
있는 동경 부장 토광묘는 제사장의 무덤으로 보고되었다
. 이러한 분묘
의 확인은 호서지역 중 서해안과 서남해안 지역
, 호남지역에서 수습된
한경이나 방제경 등의 원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 공주 공산성 수
습 훼룡문경
, 부여 하황리 수습 원권규구과문경 등의 중국 한경은 각각
신말∼후한초(A.D.1세기 전반)
, 후한 중기, 익산의 연동리 반룡경도 후한
중기로 추정된 바 있다
.41 이 자료들보다 이르지만 익산 평장리에서도
세형동검
2점, 동모, 동과와 함께 반리경(전한경)이 수습되어 중국 한경
은 서력기원전부터
2세기대 어느 시기에 무덤에 부장된 유물로 추정된
다
.42 즉 마한 분묘의 군집화가 본격화되기 전 호서 서해안과 서남부,
호남 지역에서는 중요 무덤에 동경이 부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영광
수동 토광묘에서도 경질무문토기에 가까운 평저호와 함께 연호문계나
중권문계의 방제경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도
1세기 후엽∼2세기로 보
고 있어서
43
비슷한 시기와 지역 분포를 갖는 유물로 추정된다.44 그런
40 이형원
, 「삼한 소도의 공간 구성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뺷百濟學報뺸 24, 백제학회, 2018,
253~261쪽.
41
成正鏞․南宮丞
, 「益山 蓮洞里 盤龍鏡과 馬韓의 對外交涉 」, 뺷考古學誌뺸 12, 韓國考古美術硏究
所
, 2001, 39~42쪽.
42
徐賢珠
, 「湖西地域 原三國時代 墳墓遺物의 變遷과 周邊地域과의 關係」, 뺷湖西考古學뺸 35, 호서
고고학회
, 2016a, 143쪽.
43 박순발
, 「土器相으로 본 湖南地域 原三國時代 編年」, 뺷湖南考古學報뺸 21, 호남고고학회, 2005,
95~96쪽; 李映澈, 「榮山江流域의 原三國時代 土器相」, 뺷제29회 한국고고학대회 발표자료
집
뺸, 한국고고학회, 2005, 76쪽.
44 서산 기지리
21호 분구묘와 당진 채운리 7호 토광묘 등 호서서해안지역에서는 4세기까
지 방제경이 출토되기도 하지만 이 유적들은 분구묘가 군집을 이룬 것이다
.
제23호
178
데 명천동유적 보고서에서는 동경의 시기를
1세기 후엽∼2세기 전엽으
로 추정하고
, 2세기 중엽 이후 제의용으로 사용되다가 3세기경 제사장
과 함께 묻히면서 환구가 폐기된 것으로 보았다
. 그런데 호서 서남부지
역과 호남지역의 동경 출토 무덤 사례를 보면 명천동 토광묘는
2세기
대로 올려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
(5) 호서지역 내 문화권 차이 뚜렷
호서지역의 마한 분묘는 주구묘가 많은데 분묘의 입지나 장축방향
,
축조방법 등에서 세분되어 왔고 일찍부터 지역 분포에서도 차이가 있
음이 밝혀져 있었다
. 호서, 호남 지역의 주구묘는 크게 주구토광묘(단순
토광묘 세분
)와 분구묘로 구분하였는데 주구토광묘와 성토분구묘는 범
마한계 묘제이지만 분포와 축조방식이 상이한 지역형 묘제로 이해하
였다
.45 호서지역의 마한 분묘는 최근까지도 이러한 분류와 인식이 이
어지고 있어서
46
호서북부지역과 호서서해안․서남부지역은 3세기 이
후 주구토광묘와 분구묘 등의 분포에서 차이가 뚜렷하다
. 유물도 마형
대구
, 철정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최근 조사된 유적들로 보아 호서지역 내 두 지역은
2세기부터 문화
45
李澤求
, 「한반도 중서부지역 馬韓 墳丘墓」, 뺷한국고고학보뺸 66, 한국고고학회, 2008, 71쪽;
金承玉
, 「중서부지역 마한계 분묘의 인식과 시공간적 전개과정」, 뺷韓國上古史學報뺸 71, 한
국상고사학회
, 2011, 110~113쪽.
46
金希中
, 「馬韓 周溝墓의 類型과 時․空間的 展開過程 -京畿․忠淸地域을 中心으로」, 뺷百濟硏
究
뺸 62, 충남대 백제연구소, 2015, 131~134쪽.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79
적 차이가 나타남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 철검, 철모, 단조철부 등 철
기문화의 구성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유사하지만
, 토기와 일부 금속유
물은 차이를 보인다
. 금속유물은 호서북부지역의 경우 마형대구와 호
서 서해안․서남부지역의 경우 이조돌대주조철부 등이 분포하여 차이
를 보이며
, 토기는 원저단경호(타날문), 원저심발형토기, 유개대부호가
함께 출토되지만
, 호서서해안지역 등은 아직 토기가 뚜렷하지 않다.47
이 시기 두 지역의 분묘도 잘 알려진 것처럼 단순토광묘(점차 단순토광묘
와 주구토광묘 공존
)와 분구묘라는 차이가 있다
.
3세기 이후에도 환두도 등 새로운 철기문화는 두 지역이 유사하게
나타나지만 호서북부지역은 곡봉형대구
, 양단환봉철기, 재갈 등의 마
구
, 원저단경호, 원저소호와 함께 경질무문이나 타날문의 심발형토기,
원통형토기가 새롭게 사용되지만
, 호서서해안․서남부지역은 철정과
함께 양이부호
, 이중구연호, 상면이 불룩한 개, 평저호, 조형토기 등이
나타난다
. 호서 북부지역과 서해안․서남부지역은 낙랑 문물 등의 영
향을 받아 변화되는 양상이 나타나지만 유물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차
이가 있다
. 그 배경에는 두 지역 간 한예(韓濊)와 한(韓)의 종족적인 차
이
48
함께 각 지역 소국의 성장과 함께 낙랑과의 교섭, 환령지말(桓靈之
末
)(2세기 중․후엽)
한예의 강성으로 낙랑의 유이민이 한으로 유입된 상
황도 관련된다고 보았다
.49
3세기 이후 호서지역의 주구토광묘와 분구묘를 청동기시대의 지석
47
徐賢珠
, 앞의 글, 2016a, 143~146쪽.
48 서현주
, 앞의 글, 2016b, 72~76쪽.
49
徐賢珠
, 앞의 글, 2016a, 143~152쪽.
제23호
180
묘와 공간분석을 통해 비교한 결과 분구묘는 지석묘 밀집지역에 포함
되거나 연접하는데 비해 주구토광묘는 지석묘 밀집지역과 연관관계가
없다고 나와 주구토광묘 축조집단이 진(秦)에 근거를 가진 유이민집단
,
즉
뺷삼국지뺸 위서 동이전의 진한(辰韓)으로 추정한 선행 연구
50를 참조
하기도 하였다
.51 주구토광묘 분포권 내 세부적인 지역 차이를 언급한
연구도 있는데
52
주구토광묘 분포권 내 중심세력인 곡교천유역과 미호
천유역 중 곡교천유역은 늦게까지 주구토광묘를 축조하지만
, 미호천
중류역은 단순토광묘가 집중적으로 축조되고 새로운 토기도 부장되어
외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
(6) 주변지역과의 다양한 교류나 관계
호서지역의 마한 유적들에서는 외래계 자료도 많이 나타난다
. 일찍
부터 영남지역의 조합식우각형파수부장경호 등의 와질토기가 진천 송
두리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고
,53 금박구슬이나 곡봉형대구 등은 낙
랑 관련 유물로 알려져 왔으며 합장묘도 낙랑의 것이 이입․변용된 것
50
崔完奎
, 「百濟成立과 發展期의 錦江流域 墓制樣相」, 뺷韓國上古史學報뺸 37, 한국상고사학회,
2002, 110~115쪽.
51 최원석
, 「중서부지역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분묘의 공간분포와 그 의미」, 뺷馬韓․百
濟文化
뺸 31,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18, 116쪽.
52 신기철
, 「2∼4세기 중서부지역 주구토광묘와 마한 중심세력 연구」, 뺷湖西考古學뺸 39, 호
서고고학회
, 2018, 51~65쪽.
53
成正鏞
, 「漢江․錦江流域의 嶺南地域系統 文物과 그 意味」, 뺷百濟硏究뺸46, 충남대 백제연구
소
, 2007, 111쪽.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81
으로 보았다
.54 이러한 자료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데 청주 송절동유적
의 Ⅴ지구(외북동)
2지점 토광묘들에서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에
대한 연구성과 중 이성주 분류 Ⅰ-
6단계 토기와 유사하여 2세기 전엽
으로 추정하고 있다
.55
그리고 호서지역에서
2세기대 주변지역과 관련되는 유물 자료가 늘
어나면서 그 기원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 먼저 2세기 중
엽 호서북부지역에 나타나는 세종 용호리 출토 궐수문장식철검은 영
남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는 의견이 주류였다
.56 아산 용두리 진터
유적 출토 유개대부호
, 원저심발형토기 등의 토기도 다소 이질적이기
때문에 영남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았다
.57 철검이나 이단관식이
나 관부돌출 철모 등 또한 비슷한 것들이 영남지역에서 상당히 성행한
점에서 영남지역의 철기가 이 지역에 유입된 것으로 보았다
.58 그런데
이러한 문화 양상은 호서북부지역에서 상당히 성행했음이 밝혀지고
있고
, 유개대부호 등 유물의 점진적인 변천 양상도 확인되며, 화성, 오
산
, 평택 등 좀 더 북쪽지역에서도 관련 자료들이 확인되므로 영남지역
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59 이 토기들을 외래
54 성정용
, 「中原地域 原三國時代 墳墓 築造集團의 性格」, 뺷고고학뺸 12-3, 중부고고학회, 2013,
104~106쪽.
55 청주테크노폴리스 외
, 앞의 책, 2018b, 69쪽.
56
成正鏞
, 앞의 글, 2007, 118~119쪽; 洪潽植, 「문물로 본 가야와 백제의 교섭과 교역」, 뺷湖西
考古學
뺸 18, 호서고고학회, 2008, 123쪽.
57 지민주
, 「중부지역 마한분묘 출토 토기류의 성격」, 뺷중부지역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의
등장과 전개
뺸,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2013, 69~75쪽.
58
金새봄
, 「原三國後期 嶺南地域과 京畿․忠淸地域 鐵矛의 交流樣相」, 뺷한국고고학보뺸 81, 한
국고고학회
, 2011, 100쪽; 김길식, 「2∼3世紀 漢江 下流域 鐵製武器의 系統과 武器의 集中流
入 背景-김포 운양동유적 철제무기를 중심으로」
, 뺷百濟文化뺸 50, 공주대 백제문화연구
소
, 2014, 165~170쪽.
제23호
182
계로 보고 구체적으로 중국 산동(山東)지역의 회형토기를 그 후보로 보
거나
,60 유개대부호 등이 낙랑지역에서 중서부(호서 등)지역으로 유입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61 이후 자료가 더욱 축적되면서 유개대
부호
, 원저심발형토기 등의 토기에 대해 구체적인 형식 변천을 통해 경
기남부나 호서 지역에서 영남지역으로의 유물 변천 양상이 제시되기
도 하였다
.62 이와 달리 유개대부호의 형식을 분류하고 변천 양상을 파
악한 결과 동남부지역에서
1세기대에 제작된 후 2세기에 중서부(호서
등
)지역으로 확산되고
3세기에 모두 소멸하는데, 모티브를 공유하고 지
역별로 자체 제작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63 이러한 유물뿐 아니라 호서
지역에서 출토되는 철기 중 궐수문장식의 철검
, 이조돌대주조철부 또
한 영남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지만
, 좀 더 이른 자료가 경기서부지역인
인천 운서동과 김포 운양동 분구묘
, 가평 대성리유적 등에서 출토되므
로 호서지역 자료는 오히려 이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64 그
리고
2∼3세기 마한지역(호서지역과 경기서부지역)과 변진한지역의 철기
구성이나 형식이 비슷한 점에서 초기에는 변진한지역에서 교류를 통
59 서현주
, 「한강․영산강․낙동강 유역권과의 문화적 상사․상이성 및 교류」, 뺷호서지역
마한 문화의 지역성
뺸, 제23회 호서고고학회 학술대회 발표요지, 2011, 281~283쪽.
60 김장석
, 「중부지역 격자문타날토기와 U자형토기의 등장」, 뺷한국고고학보뺸 90, 한국고
고학회
, 2014, 97~105쪽.
61 성정용
, 「馬韓․百濟地域 墳丘墓의 出土遺物과 性格」, 뺷先史와 古代뺸 49, 한국고대학회, 2016a,
74~79쪽.
62 박형열
, 「원삼국시대 유개대부호의 편년」, 뺷湖南考古學報뺸 50, 호남고고학회, 2015, 72~
87쪽; 車承娟,「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 원저단경호의 변천과 지역성」, 韓國傳統文化大學校
大學院 碩士學位論文
, 2017, 88~94쪽.
63 박장호
, 「원삼국시대 유개대부호의 편년과 변천」, 뺷야외고고학뺸 31, 한국문화유산협회,
2018, 18~30쪽.
64
徐賢珠
, 앞의 글, 2016a, 143~146쪽; 박경신, 「二條凸帶鑄造鐵斧의 編年과 展開樣相」, 뺷韓國
考古學報
뺸 98, 한국고고학회, 2016, 21~26쪽.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83
해 유입되었지만 점차 마한지역에서도 자체생산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65 이와 같이 경기서해안에서 경기남부, 호서북부를
거쳐 영남동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교류 루트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
이 없지만
, 유물의 출현과 확산의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차이가 난
다
. 최근 청주 오송유적의 12지점 55호 토광묘에서 궐수문장식철기, 15
지점
17호 토광묘에서 동병철검이 출토되었는데 원저단경호, 원저심
발형토기 등이 공반되고 있다
. 동병철검은 부여 유수 노하심(楡樹 老河深)
유적의 동병철검과 유사하여 부여계로 볼 수 있는데
,66 계통상 경기서
부지역 김포 운양동 분구묘 등에서 출토된 부여계 이식이나 마구(표비)
등이 주목된다
. 호서북부지역의 2∼3세기대 부여계 등의 유물은 경기
서부지역을 통해 유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 그 과정에서 호서지역
의 궐수문장식 철기는 함께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7) 철기나 토기에 대한 개별 연구 지속
그동안 호서지역 마한의 유물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 유적 자료가 더욱 늘어나고 유적들을 단계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서 개별 유물에 대한 세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 호서지역 자료뿐
아니라 중부지역 자료도 함께 다룬 시루
,67 호남지역 자료도 함께 검토
65 이용범
, 「2∼3세기 마한과 진변한의 철제무기 교류의 배경」, 뺷고고학뺸 17-1, 중부고고학
회
, 2018, 63~72쪽.
66 중앙문화재연구원․충북개발공사
, 앞의 책, 2018, 154~157쪽.
67 송만영
, 「중부 지역 원삼국~백제 한성기 타날문 시루의 지역성과 편년」, 뺷湖南考古學報뺸
제23호
184
한 양이부호
68에 대한 연구가 있다
. 호서지역의 토기 자료를 집중적으
로 다룬 연구도 있는데 호서북부지역 분묘 출토
2∼4세기 원저단경호
등을 세분하거나
69
그 지역의 특징적인 토기인 원통형토기를 다루기도
하였다
. 이 토기가 출토된 분묘의 피장자는 어느 정도 위계를 갖는 것
으로 보고 있으며 공반된 유물을 통해 농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고 보기도 한다
.70 분묘에서의 사용은 앞 단계의 유개대부호에서 이어
지는 것이지만 토기 형태는 앞 단계의 토기
, 호남지역의 분주토기 영향
도 있었다고 보거나
,71 이 토기의 기원을 앞 단계의 유개대부호가 변화
된 것으로 보는 견해
72도 있다
. 철기는 대체로 마한∼백제 한성기 자료
를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검토하고 있는데 분묘 출토 철기를 종합적으
로 다루기도 하고
,73 철촉,74 철겸75 등 개별 유물을 다루기도 하였다.
52, 호남고고학회, 2016; 羅善敏,「中西部地域 原三國~漢城期 百濟 시루의 地域特性 硏究」,
뺷百濟硏究뺸 66, 충남대 백제연구소, 2017.
68 박영재
, 「마한․백제권 양이부호 도입과정」, 전남대 석사논문, 2016.
69
車承娟
, 앞의 글, 2017, 42~45쪽.
70 신민철
, 「곡교천일대 원삼국시대 원통형토기의 분포와 성격」, 전북대 석사학위논문,
2015, 70~74쪽.
71 서현주
, 앞의 글, 2016b, 76~81쪽.
72 이상엽
, 「원통형토기를 통해 본 3세기 중반 이후 곡교천유역의 사회상 검토」, 뺷先史와古
代
뺸 55, 한국고대학회, 2018, 190~192쪽.
73 성수일
, 「한강․금강유역 원삼국∼백제 한성기 철기 부장양상의 변화 연구」, 뺷중앙고고
연구
뺸 23, 2017, 34~58쪽.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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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김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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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조사․연구현황
185
IV. 맺음말
최근 몇 년간의 호서지역 마한 고고학의 연구성과는 새로운 유적의
조사와 연계되는 경향이 강하다
. 유적 자료의 축적에 따라 마한 유적에
대한 연구는 시기나 지역
, 성격에서 그 양상이 확대되거나 명확해지고
있다
.
최근 호서지역 마한 유적의 연구성과는 지역별 대규모 취락유적과
이를 바탕으로 한 마한 소국 중심지 등 논의
, 2∼4세기 마한 분묘유적
의 단계적인 양상 파악
, 수혈주거지 중 사주식의 출현과 확산 문제 재
검토
, 제의유적 조사로 마한의 소도에 접근 가능, 호서지역 내 문화권
차이 뚜렷
, 경기나 영남, 호남 등 주변지역들과의 다양한 교류나 관계,
철기나 토기에 대한 개별 연구 지속 등으로 정리해보았다
.
지금까지 많은 유적 자료들이 축적된 만큼 앞으로 검토되어야 할 부
분도 많은데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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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Abstract
The Current State of Recent Investigations and Researches on
Mahan sites in the Hoseo Region
Shin, Seon-a ․ Seo, Hyun-ju
Dept. of Archeology,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Cultural Heritage
In the Hoseo region, where the Cheongdang-dong site of Cheonan was investigated in
the 1990s, Mahan sites were found in broader areas since the 2000s. These sites helped to
identify a good amount of tomb site materials in the second century that used to remain
as a gap in the timeline. As a result, features of various nature were also added including
farming, road, and ceremonial ones. This study thus set out to arrange the current state of
major sites in the Hoseo region that were recently investigated or reported and examine
the recent research achievements of Mahan sites in the Hoseo region based on it.
There was a strong tendency of connection between the archeological research ach-
ievements of Mahan in the Hoseo region in recent years and investigations into new
sites. As large-size settlement sites were investigated, they discussed the centers of the
Mahan states and reviewed again the emergence and spread of four-pillar type dwellings.
As the existence of tomb sites from the second century was confirmed, they looked into
the patterns of tomb sites in the second
~fourth century by the stages. They also raised
the possibilities of access to Mahan's Sodo based on the Myeongcheon-dong site of
Boryeong, which was estimated to have a ceremonial space during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dividual researches on Mahan's artifacts including ironware and
pottery in the Hoseo region continued at various angles. There were also active re-
searches to put together these investigation and research achievements and shed light on
differences between the cultural zones of different areas in the Hoseo region or its diverse
exchanges and relations with the surrounding regions.
Keywords Hoseo region, Proto-Three Kingdoms Period, Mahan, settlement, tomb,
ceremony, exchange
논문 투고일 : 2019.03.22 심사 완료일 : 2019.04.11 게재 확정일 : 2019.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