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문서3. 이주헌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최종.pdf

닫기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91

85

이주헌**

92

Ⅰ. 머리말
Ⅱ. 진안지역 도자기 가마터의 현황
Ⅲ.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발굴조사와 성과
Ⅳ. 국내 주요 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사례
Ⅴ.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방안
Ⅵ. 맺음말

국문초록

과거 도자기 전문 생산시설이었던 가마터는 당시의 도자기 생산기술에 대한 각

종 정보와 그와 관련된 사회상, 생산에 적합한 지형지세의 이용 상황, 원료의 공급

체계, 생산품의 공급 규모, 당시 도자기를 둘러싼 사회 경제 형태, 대내외 기술, 문화

교류의 상황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다양한 콘텐츠

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발굴 조사된 진안 도통리 가마터는 다량의 갑발과 요벽ㆍ벽

돌ㆍ옥벽저완 자기편 등 초기청자와 관련되는 고고자료가 출토되어 한국 청자문화

의 발전과정을 살피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유적의 

활용 방안에 따라 역사교육 자료로써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문화공간으로서 활용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므로 진안 도통리 청자 가마터에 대한 보존과 활용문

* 본고는 진안군과 군산대학교박물관이 주최한 <학술심포지엄,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가

마터의 조사 성과와 과제

>(2016.9.30, 진안문화의 집)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한 

것임을 밝혀둔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 E-mail : heun0530@korea.kr, Tel : +82-42-860-9170.


background image

  제25호

86

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도요지의 보존방법은 발굴조사 결과로 드러난 가마터의 현장보존과 도

요지의 역사자료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작은 전시관 성격의 박물관을 건립하는 정도

로 진행되어왔다. 그 외에 생산품을 재현하는 생산시설을 구축하여 지역의 특산품

이나 문화상품으로 활용하거나 지역의 역사문화 이미지 구축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정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한 도자기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역사유적으로

서 단지 현장 보존에만 국한된 유적보존의 단계에서 벗어나 지역의 경제발전을 선

도하는 동력으로써 활용될 뿐만 아니라 지역의 미래 환경, 미래문화 성격을 만들어 

가는 하나의 문화자원으로 크게 인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도통리 

청자 가마터의 실체 규명을 위한 전반적인 발굴조사를 추가로 진행할 필요성이 있

으며, 이를 통한 학제적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가마터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한

다면 향후 정비와 복원에 대한 방향성이 분명해질 수 있다. 또한 강제적인 보존이나 

활용보다는 지역주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가마터의 정비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함께 마을의 자연환경과 문화경관을 복원하고 청자마을로 

가꾸어 고려시대 초기청자 공방시설의 체험을 위한 테마파크로 발전시키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주제어

 청자가마터, 공방시설 체험, 청자마을, 정비와 활용, 역사문화 향유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87

I. 머리말 

역사 이래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전국 각지

에 산재되어 있다

. 오늘날 문화유산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선조들이 보여준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현재에 전해주며

, 현재의 문

화를 풍족하게 하는 밑거름일 뿐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비추
어주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 문화유산은 한번 손상되면 원형을 회

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체계적으
로 보존․정비․수리․복원 및 관리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1 

특히

, 유적의 정비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및 활용을 효율화, 극대

화하기 위해 유적과 유적 주변에 행하는 일련의 행위로

, 정비의 가장 큰 

목적은 해당 문화유산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교육 및 관광 등의 활용성
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 따라서 보존정비계획은 유적이 지니는 가치보

존과 보존․관리 및 활용을 위한 마스터플랜의 역할로 문화재의 가치
보존을 우선시하고 국민들의 문화재 향유권 신장과 더불어 역사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연계되어 전통문화의 독자성(정체성)확립과 지역발전
에 기여 될 수 있도록 수립되어야 한다

. 또한, 보존정비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는 ① 원형보존

, ② 역사적 가치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유

, ③  유적의 특성과 주변 환경을 고려한 정비목표 설정, ④  보존․복

1

문화유산에 있어서 보존이란 개념은 문화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행하는 제반조치

, 문화유산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정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핵심요소이다

. 하지만, 문화유산의 교육과 가치향유를 위한 활용을 강조하다 보면 문화

유산에 인공적인 부가물을 설치하게 되어 문화재의 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존
의 개념은 중요하다

. 문화유산은 보존가치 때문에 활용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따라

서 활용을 위한 정비는 보존에 기반하며

, 보존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인지하여야 한다.


background image

  제25호

88

원․정비 대상의 명확한 구분

, ⑤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정비 지양, ⑥ 관

리유형의 수립

, ⑦  제도적․재정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현실성 

있는 재원투자계획 마련

, ⑧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인 추진계획의 수

립의 원칙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2 하지만, 현재 우리는 문화재를 보

존시설 안에만 가두어 두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어서 문화유산의 생
명력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 반면, 이를 무분별하게 활용할 경우에

는 훼손과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 따라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는 문화유산의 생명력을 
높이고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생산유적에 대한 학술조사를 본격화하기 시작

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이다. 전남 강진 고려청자요지와 전북 부안 

고려청자요지

, 광주시 충효동 조선분청사기 요지, 경기 광주군 도마리 

조선백자요지 등이 대표적이며 대부분 국립박물관에 의해 학술조사가 
시작되었다

. 그 연구 결과로 도요지도 국가가 보존․관리하는 문화유

적으로 지정․보호되기 시작하여 현재 전국에는 많은 도요지가 보존되
어 있다

. 그러나 가마터의 유형별 보존․정비 및 활용 등에 관한 가이

드라인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 일부 일선 관계자의 인식 부족이나 업무 

추진 혼선 등으로 부적절한 관리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효율
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3 특히, 가마폐기물 퇴적이 산재되어 있는 

대부분의 도요지에 대한 현상보존은 어느 곳이나 황폐한 구릉으로만 

2

문화재청

, 뺷요지의 보존정비 관리방안 연구뺸, 2015, 203∼208쪽.

3

문화재청

, 앞의 책, 2015, 3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89

남겨져 있었을 뿐이며

, 그 보존현장에서는 역사․문화․교육의 현장으

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자연 친화적인 환경도 느껴볼 수 없는 삭막함
과 버려진 듯한 쓸모없는 땅의 느낌만 남아 있다

. 더욱이 유적지 주변

에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에는 남겨진 도요지가 쓰레기장처
럼 보여서 인근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주거환경 가치가 낮게 평가되
는 요소가 보존된 도요지일지라도 주민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 되기
도 한다

. 결국, 보존되어있는 도요지조차 주민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역사 현장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문화유산이 되어 버
린 상황인 것이다

.4 

그동안 가마 폐기물 퇴적층으로만 알려진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

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가 최근 학술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넓은 지역
에 다수의 가마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 또한 다량의 갑발

과 요벽ㆍ벽돌ㆍ옥벽저완 자기편 등 초기청자와 관련되는 고고자료가 
많이 확인되어 한국 청자문화의 발전과정을 살피는 데 있어 매우 중요
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따라서 본고에서는 진안지역에 분포한 도

자기 가마터의 현황에 대하여 살펴보고 조사가 이루어진 다른 유적의 
보존 사례를 살펴본 다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의 향후 보
존과 활용에 대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

4

나선화

,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의 보존과 활용방안」,뺷동아시아에서 본 고흥 운대

리 분청사기 요지뺸

, 고흥군, 2012, 103쪽.


background image

  제25호

90

II. 진안지역 도자기 가마터의 현황

진안지역이 언제부터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었는지 또는 삼국시대 

지방통치 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뺷三國史記뺸에 따르면 백제 때 용담면에는 물거현, 진안읍에는 난진아

, 마령면에는 마돌현이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백제가 

신라에 멸망하면서 진안군은 자동적으로 신라에 편입되었다

. 신라는 

경덕왕 

16년(757년)에 당의 방식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그 영속체제를 

강화하는 일련의 개혁을 단행하여

, 전국의 모든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

쳤다

. 이 때 진안지역에 설치된 물거현은 청거현으로 바뀌어 진례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 난진아현은 진안현으로 바뀌어 벽계군의 영현이 되

었다

. 그리고 마돌현은 마령현으로 바뀌어 임실군의 영현이 되었다. 이

때부터 처음으로 진안과 마령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 그러나 

신라의 한화 개혁정책은 경덕왕 사후 실패로 끝나고

, 혜공왕 12년(776

)

에는 지명이 다시 바뀌는 과정에서 물거ㆍ난진아ㆍ마돌로 환원되었

.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조사된 통일신라시대 고분과 부귀면 오

룡리에서 확인된 횡혈식석실분은 이시기 진안지역의 대체적인 문화상
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10세기 초 도읍을 전주에 둔 후백제가 성립되어 진안지역은 후

백제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고 통제를 받았다

. 그러나 후백제가 멸망된 

뒤 고려 초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하다가 현종 

9년(1018년)에 이르러 비

로소 항구적인 지방 통치체제를 마련하였는데

, 전국을 경기와 호경, 그

리고 

12개의 계수관도로 정연하게 나누었다. 이때 전국의 지명을 다시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91

중국식의 한자명으로 고치면서 진안․마령․청거 등도 널리 지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 당시의 편제에서 진안․마령․청거는 전주목도에 속

하였는데

,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서 조사된 대규모의 고려시대 고분

은 당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 특히, 이 유적에서는 수혈식 석곽묘

와 횡구식 석곽묘

, 석관묘 등 100여기의 고려고분이 조사되었는데, 50

여기의 고분에서 상당량의 청자류가 출토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5

조선 초기에 이르자 진안지역에는 상당히 큰 변화가 있었다

. 태종 9

년(1409년)에 마령현의 임내였던 강주소와 용담현의 속향인 동향이 각
각 진안현과 용담현의 직촌으로 되었고

, 태종 12년(1412년)에는 마령현

이 진안현의 속현이 되고 곧이어 직촌으로 되었다

. 백제 때부터 줄곧 

현이 설치었던 마령현은 결국 치소가 폐지되면서 없어지게 되었는데

본래 

5개소의 치소가 설치되었던 진안군이 용담현과 진안현으로 통합

된 것이다

. 그 후 진안현은 현감으로 바뀌어 조선말까지 별다른 변동이 

없었으나 용담현은 인조 

24년(1646년)에 현감관으로 강등되었다가 효종 

7년(1656년)에 복구되었다. 진안현과 용담현은 고종 32년(1895년) 모두 
군이 되어 남원부에 속했다가 그 이듬해에는 

13도의 설치로 전라북도

에 속하게 되었다

. 한편, 백제 때부터 줄곧 현이 설치되었던 용담군이 

1914년에 폐지되고 진안군으로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 

1973년에 정천면의 구룡리와 용평리가 상전면으로, 상전면의 월평

리가 정천면으로 상전면의 운산리와 부귀면의 정곡리 및 마령면의 인
장리가 진안면으로 각각 이속되었고

, 진안면은 1979년 읍으로 승격되

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5

군산대학교박물관

, 뺷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뺸 I, 진안군, 2016, 40쪽.


background image

  제25호

92

진안지역은 

1억 년 전 중생대 마지막 지질시대인 백악기 때 호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진안고원 일대에는 양질의 토양이 퇴적되어 있다

. 특히, 

진안고원은 도요지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
지 발견된 도요지의 수만 해도 

120여 개소에 달한다. 진안 도통리․외궁

리 초기 청자부터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와 백자 등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

, 현재에도 조업중인 백운면 평장리 손내옹기도 옛날 화려했던 진안고

원 도자문화의 전통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 그리고 진안고원에서 생산된 

양질의 도자기는 주변 지역으로 잘 연결된 교역망을 통하여 전주와 남원 
등지로 널리 유통되었고

, 이는 결국 진안고원의 도자문화가 지속적으로 

융성하게 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 진안군 일대에는 120여 개소의 

도요지가 밀집분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뺷世宗實錄地理志뺸에 소개된 

백운면 반송리 두원 도요지7를 비롯하여

, 주천면․부귀면․백운면․성

수면․용담면․정천면 등에는 고려 때부터 양질의 청자를 생산하던 도
자문화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

진안군에 분포한 주요 도요지의 현황은 

<표 1>과 같은데, 이 가운데 

정천면 봉곡도요지8와 성수면 도통리 청자 가마터9를 제외하면 대부분
의 가마터는 지표조사 만 이루어진 상태이고

,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향후 이 지역의 도자문화에 대한 성격과 그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이들 도요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발굴조사
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6

전주대학교박물관

, 뺷진안군 문화유적분포지도뺸, 진안군, 2007.

7

뺷世宗實錄地理志뺸

, “鎭安縣磁器所一在馬靈縣南豆彦里一在馬靈縣東東林里階下品”.

8

강원종 외

, 「진안 봉곡 도요지」,뺷호남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성과뺸, 2012.

9

군산대학교박물관

, 앞의 책, 2016, 15∼16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93

/면

유적명

소재지

시대

현황

(위치/상태/채집품)

동향

신송 호천 도요지

신송리 산270-1 일대

조선

산자락/논경작 파괴/ 요벽편 등

마령원동촌 도요지

동촌리 산91

조선

산자락/밭경작 파괴/요벽ㆍ백자편 등

백운

덕현 내동 도요지A

덕현리 169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자기편ㆍ요벽 등 

덕현 내동 도요지B

덕현리 204-1일대

조선

산자락/도로개설 파괴/도지미 등

반송 두원 도요지

반송리 88일대

고려∼

조선

산기슭/가마폐기물ㆍ청자ㆍ분청자기ㆍ백자

편ㆍ요도구 등 다수

백암 원촌 도요지

백암리 544-1일대

조선

산자락/논밭작 파괴/가마폐기물 등 

신암 임하 도요지

신암리 85일대

조선

산기슭/건물축조 파괴/백자편 등

부귀

거석 금평 도요지

거석리 652-2

조선

산자락/밭경작/가마폐기물 등

상궁항 도요지A

궁항리 360-2일대

조선

산자락/민묘로 훼손/가마폐기물 등

상궁항 도요지B

궁항리 354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파괴/소토ㆍ자기편 등

정수암 도요지A

궁항리 525-1

조선

산자락/축사로 파괴/자기편 등 

정수암 도요지B

궁항리 473 일대

조선

산기슭/수로공사 파괴/자기편 등

하궁항 도요지A

궁항리 22-2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훼손/요도구 등

하궁항 도요지B

궁항리 산11 일대

조선

산기슭/농장조성 파괴/백자편 다수

하궁항 도요지C

궁항리 산72 일대

조선

산자락/민묘로 파괴/요도구 등

삼봉 도요지

두남리 산67

조선

산사면/논경작 훼손/가마폐기물 등

원봉암 도요지A

봉암리 산93-1

조선

산기슭/밭경작 훼손/가마폐기물 등

원봉암 도요지B

봉암리 629-1

조선

산기슭/논경작 파괴/가마폐기물 등

대곡 도요지

세동리 1072-1 일대

조선

산자락/밭경작 파괴/요도구 등

신기 도요지

수항리 산10

조선

계곡부/수로로 파괴/소토ㆍ도지미 등

봉곡 도요지

황금리 산160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요벽체ㆍ도지미 등 

진상 도요지

황금리 307

조선

산기슭/밭경작/요벽ㆍ소토ㆍ자기편 등

상전

대구평 도요지

용평리 산72-4 일대

조선

산사면/밭경작/백자ㆍ요벽편 다수

성수

상염북 도요지

구산리 706 일대

조선

산자락/밭경작/가마폐기물 등

양지 도요지

도통리 산73 일대

고려

산기슭/갑발편ㆍ요벽체ㆍ청자편 다수 

중평 도요지

도통리 392-1 일대

고려

산자락/민가/갑발ㆍ벽돌ㆍ청자편 다수

점촌 요지

외궁리 56 일대

고려∼

조선

산기슭/민가로 훼손/옹기ㆍ청자편ㆍ요도구 

사기점 도요지A

중길리 387-2

조선

산자락/과수원/가마폐기물 등

사기점 도요지B

중길리 산44

조선

산자락/가마폐기물ㆍ분청자기편 소량

안천

도라실 도요지

백화리 1186 일대

조선

계곡부/밭경작 파괴/요벽ㆍ백자편 등

괴정 도요지A

신괴리 293-1 일대

조선

산자락/밭경작 삭평/백자ㆍ도지미 등

괴정 도요지B

신괴리 산108 

조선

산기슭/밭으로 파괴/백자편ㆍ요벽 등

용담

방화 도요지

송풍리 1679-1 일대

고려

산기슭/자기편 다수

장천

조포 도요지A

갈룡리 1328 일대

조선

산기슭/농로로 파괴/백자편 다수

조포 도요지B

갈룡리 150-1 일대

조선

산기슭/민묘로 파괴/백자편 다수

무거 도요지A

갈룡리 산116 일대

조선

산자락/민묘로 훼손/백자편 등

무거 도요지B

갈룡리 산94 일대

조선

산자락/밭경작 훼손/요벽ㆍ백자편 등

<표 1> 진안군 도요지 현황


background image

  제25호

94

진안지역에서 현재까지 학술조사를 통하여 가마터의 조성 시기가 

고려시대까지로 올라가는 도요지는 백운면 두원 도요지

, 성수면 도통

리 양지․중평․점골 도요지

, 용담면 방화 도요지 정도이다. 백운면 반

송 두원 도요지는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200m 떨어진 산기슭과 계곡부

에 위치한다

. 민묘 인근 경작지에서 백자편이 수습된 1호 요지가 있으

, 이곳에서 산골짜기로 100m 떨어진 감나무골에 2호 요지가 있다. 2

호 요지에서 고려 말 청자편과 조선 초 분청사기편과 백자편이 수습되

/면

유적명

소재지

시대

현황

(위치/상태/채집품)

무거 도요지C

갈룡리 1043 일대

조선

하천변/도로확장 파괴/백자편 다수

마조 도요지

봉학리 1058 일대

조선

산자락/도로확장 파괴/백자편 등

주천

개화동 도요지

대불리 999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삭평/요벽ㆍ백자편 등

독자동 도요지

대불리 산194 일대

조선

산자락/제방공사 파괴/요벽 등

외처사동 도요지

대불리 1856 일대

조선

산기슭/민가로 파괴/백자편ㆍ요벽 등

장동 도요지A

대불리 산28 일대

조선

산자락/방목장 훼손/백자편ㆍ요벽 등

장동 도요지B

대불리 570 일대

조선

산자락/백자편ㆍ요벽편ㆍ요도구 다수

중산 도요지A

대불리 1758 일대

조선

하천변/도로개설 파괴/요벽편 등

중산 도요지B

대불리 1780 일대

조선

산자락/도로개설 파괴/요벽편 다수

봉소 도요지A

신양리 산11-3

조선

산자락/밭경작 파괴/요벽편 다수

봉소 도요지B

신양리 825 일대

조선

하천변/밭경작 훼손/도지미 등

봉소 도요지C

신양리 산157 일대

조선

산자락/논경작 파괴/백자편ㆍ도지미 

성암 도요지A

신양리 333-1 일대

조선

산자락/요벽편ㆍ백자편 다수

성암 도요지B 

신양리 334 일대

조선

산자락/요벽ㆍ자기편 다수

신광석 도요지A

신양리 906-2 일대

조선

산기슭/민묘로 파괴/요벽ㆍ도지미등

신광석 도요지B

신양리 925 일대

조선

산자락/민묘로 파괴/요벽ㆍ도지미 등

곰뱅이 도요지

신양리 200-1 일대

조선

하천변/자기편ㆍ도지미ㆍ요벽편 등

도촌 도요지A

용덕리 95 일대

조선

산자락/밭경작 훼손/백자편ㆍ요벽 등

도촌 도요지B

용덕리 135 일대

조선

산기슭/민묘로 삭평/자기편 다수

미적 도요지

용덕리 310-1 일대

조선

산자락/뱥경작 훼손/백자편ㆍ요벽 등

삼밧골 도요지

용덕리 716 일대

조선

산기슭/저수지 축조 훼손/백자편등

안정동 도요지A

운봉리 225-1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파괴/백자편ㆍ도지미 

안정동 도요지B

운봉리 206-1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파괴/요벽ㆍ백자편 등

하양명 도요지A

운봉리 567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훼손/요벽ㆍ도지미 등

하양명 도요지B

운봉리 579-1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파괴/요벽ㆍ도지미 등

하양명 도요지C

운봉리 624 일대

조선

산기슭/밭경작 파괴/요벽ㆍ백자편 등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95

,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도자기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류는 대접과 접시완으로 굽은 투박한 다리굽이며

, 문양은 무문을 비롯

하여 상감 선․연당초문․인화 여의두․국화․육원문 등으로 다양하

. 요도구는 자연석 도지미와 경사진 원형 도지미 절구형과 대형 도지

미 등이 수습되었다

. 유물은 14세기에서 15세기 초의 퇴락한 청자부터 

17세기의 백자까지 그 시기적인 폭이 넓다.10

성수면 도통리와 외궁리에서는 청자 가마터가 모두 

3개소 확인되었

. 이 가운데 학술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도통리 중평 도요지와 양

지 도요지11이다

. 진안고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내동산(해발 887.4m)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진 산자락 북쪽 기슭 말단부에 자리한 이들 가마터는 
오래전 마을이 조성되면서 상당한 깊이로 흙을 파내어 요지가 대부분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2013년부터 시작된 4차례의 시․발굴조사에

서 초기청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 마을 북쪽 기

슭 말단부에 대규모의 초기청자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
악된다

. 현재 원래의 지형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동쪽과 서쪽 구

역에서 초기청자요지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 이 일대에서는 

완․발․접시․

U자형청자․요도구인 갑발과 갑발 받침, 전축요의 부

재인 벽돌 등이 수습되었다

. 초기청자의 굽은 옥벽저완과 한국식 해무

리굽

, 변형 해무리굽이 모두 확인된다. 전면에 시유된 유약은 그 색조

가 녹갈색 혹은 황갈색 계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 요도구인 갑발은 초

10

군산대학교박물관

, 앞의 책, 2016, 41쪽.

11

시굴조사를 담당한 군산대학교박물관에서는 중평 도요지를 

“초기청자요지A”로 양지 도

요지를 

“초기청자요지B”로 명명하고 있음. 군산대학교박물관, 앞의 책, 2016, 17쪽.


background image

  제25호

96

기청자요지에서 발견되는 발형․원통형․복발형이 모두 공존한다

. 벽

돌이 비교적 넓은 구역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벽돌가마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2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 주관으로 이루어진 중평

마을 모정 부근 발굴조사에서 흙가마와 함께 벽돌을 부분적으로 사용
한 가마가 발견되었다

.

진안 중평마을에서 북쪽으로 

350m 떨어진 중성골에 양지 도요지가 

있다

. 진안군 마령면과 성수면 경계로 길이 500m 내외의 구역에서 10

여 개소의 요지가 확인되었는데

, 이들 요지는 몇 년전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 생긴 절단면에 유구가 노출되었고

, 요지의 폭은 200cm 내외이

. 도구인 갑발 퇴적층에서 초기 청자와 조질 청자인 녹청자가 함께 수

습되었다

. 초기청자의 굽은 옥벽저완과 한국식 해무리굽이 있으며, 후

자는 중평마을 수습품보다 그 기벽의 두께가 얇고 굽의 접지면도 좁아 
약간 퇴화된 속성을 보인다

. 다만, 현지조사 때 외궁리 점촌 마을과 도

통리 중평마을에서 상당량 수습된 벽돌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13

진안 외궁리 점촌 요지는 진안 도통리 중평 도요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여m 떨어진 점촌마을에 있다. 1990년대 초기청자와 녹청자 계통

의 요지로 알려졌으며

,14 굽안바닥에 ‘+’가 표시된 한국식 해무리굽완

도 채집되었다

. 요도구인 갑발은 그 양이 많지 않지만 비교적 넓게 흩

어져 있으며

, 기종은 발형과 원통형으로 추정된다. 요도구인 갑발은 북

쪽에 인접한 진안 도통리 출토품과 흡사하여 서로 비슷한 시기에 외궁

12

군산대학교박물관

, 앞의 책, 2016, 39쪽.

13

군산대학교박물관

, 앞의 책, 2016, 39쪽.

14

국립전주박물관

, 뺷전북의 조선시대 도요지뺸, 1997, 329∼331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97

리 초기청자 요지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15

도통리에서 북서쪽으로 

7km가량 떨어진 곳에 진안 중길리 도요지가 

있다

. 호남 정맥의 만덕산(해발 763.3m)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산자락 말

단부로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사기점마을에 속한다

. 이 마을 입구 남쪽 

기슭밭에 

1호 요지가 있으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50m가량 떨어진 남

동쪽 산기슭에 

2호 요지가 있다. 지표조사에서 청자편과 분청사기편, 

요도구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 청자류는 상감선․연당초문과 인화

여의두문․국화문․육원문 등이 시문된 대접과 접시들로 그 시기가 

14

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의 퇴락한 청자이다.16 

III.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발굴조사와 성과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내동산 산줄기 하단부의 중평마을 내에 

위치한다

.(사진 1-①) 마을의 동쪽과 서쪽에는 요도구 및 청자 폐기물로 

이루어진 대규모 퇴적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 대부분의 민가의 시설물 

등은 퇴적구 상부에 조성되었다

. 민가와 시설물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퇴적구는 일부 삭평이 이루어졌거나 교란되었으며

, 민가의 담을 갑발, 

벽돌 등의 요도구로 조성한 모습이 확인되었다

도통리 청자 가마터는 

1938년 일본인 학자 野守 健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 1982년 최순우가 다시 학계에 보고하였으나17 그다

15

군산대학교박물관

, 앞의 책, 2016, 40쪽.

16

국립전주박물관

, 앞의 책, 1997, 323∼328쪽.


background image

  제25호

98

지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 1996년 국립전주박물관이 학술목적으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유적의 현황

, 수습유물에 대한 보고가 보다 구체

적으로 이루어졌는데

, 특히 지표조사에서 수습된 초기청자편, 벽돌편 

등을 근거로 벽돌가마의 존재를 추정하였다

.18 이후 2013년에 군산대

학교박물관이 문화재청의 긴급 발굴조사비를 지원받아 첫 발굴조사가 
시작되면서 가마터의 성격이 조금씩 드러났다

. 조사결과, 중평마을 모

정 부근에서 깊이 

6m내외의 퇴적층이 처음 확인되었고 완, 병, 발, 뚜

, 잔탁 등 다양한 기종의 청자와 함께 발형, 복발형, 원통형 갑발, 갑

발받침 등의 요도구와 벽돌 등이 함께 나왔다

. 출토된 청자 중에는 옥

벽저완의 수량이 가장 많았으며 중간단계 해무리굽

, 한국식 해무리굽, 

퇴화해무리굽 순으로 수습되었으며 

‘十五□八□’의 명문이 새겨진 갑발

과 함께 다량의 벽돌이 출토되었는데

,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청자기술

이 도입되는 시기부터 초기청자가 쇠퇴하는 전시기까지 지속적으로 
도통리 중평마을 가마터가 운영되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19 

2015년 국립전주박물관과 군산대학교박물관의 공동 발굴조사에서 

3호 진흙가마가 조사되었다.(사진 1-②,③) 3호 가마는 노출 당시 등고선
과 직교하는 방향으로 뻗었으며 구지표에서 적색 소토와 갑발열이 확
인되었다

. 3호 진흙가마는 1호 벽돌가마와 2호 진흙가마 동남쪽에 위

치하며

, 연소실과 번조실, 측면 출입구로 구성된 것으로 가마의 길이는 

13.4m로 짧다. 유물은 초기청자와 갑발이 출토되었는데, 초기청자는 

17

최순우

, 뺷한국청자도요지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42∼48쪽.

18

국립전주박물관

, 앞의 책, 1997, 329∼331쪽.

19

군산대학교박물관

, 앞의 책, 2016, 256∼260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99

대부분 완으로 내부 바닥이 원각이다

. 완은 저경 4.2∼4.7m로 소형이

, 접지면 폭이 0.9∼1.5㎝내외로 모두 한국식 해무리굽이다. 부속시

설로는 연소실

, 불턱, 번조실, 추정연도부가 잔존하며 가마의 구조, 출

토된 유물의 형식

, 재임법, 방사성탄소연대 등을 고려할 때 11세기 초

반경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 이 가마는 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

요지의 마지막 운영시기를 보여주는 유구로 평가되고 있다

.20 

그리고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1호 벽돌가마, 2호 진흙가마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 당시에 2호 진흙가마의 연

소실과 번조실

, 1호 가마의 벽돌벽체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번조실 위

쪽에 민가가 자리하여 가마의 전체규모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 다행히, 

진안군에서 

2017년에 민가의 보상과 모정철거 작업을 지원해 주어 1호 

벽돌가마와 

2호 진흙가마의 발굴조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두 네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1기의 벽돌가마와 2기의 진흙가마

가 조사되었다

.(사진 1-④, ⑤) 1호 벽돌가마는 반지하식 단실 등요로 60

내외의 깊이로 땅을 파내고 장방형 벽돌을 가로쌓기 방식으로 아주 

정교하게 쌓았다

. 거의 터널모양으로 쌓아올린 벽체는 의도적인 파손

으로 아주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번조실 동쪽 외벽에 

13단 이상 높이로 

잘 남아 있었다

. 가마의 규모는 길이 40m내외, 내측면을 기준으로 폭 

1.8∼2m이며, 경사도 15°내외이다.21 

처음에 벽돌가마로 설치 운영되다가 벽돌가마가 심하게 파괴된 이

20

국립전주박물관ㆍ군산대학교박물관

, 뺷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청자요지뺸 II, 2017, 169∼

181쪽.

21

국립전주박물관ㆍ군산대학교박물관

, 뺷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청자요지뺸 III, 2019, 358∼

359쪽.


background image

  제25호

100

후 

2호 진흙가마로 개축되었다. 다시 말해 벽돌가마가 파괴된 뒤 가마

내부에 진흙가마를 다시 만들어 

1호 벽돌가마와 2호 진흙가마가 서로 

중복관계를 이룬다

. 길이 43m의 진흙가마가 벽돌가마의 내부에서 서

로 중복된 상태로 조사된 것은 진안 도통리가 유일하다

. 장방형 벽돌로 

쌓은 벽체는 연소실에서 배연실까지 대부분 확인되었지만

, 일부 구간

에서는 남아 있지 않았다

. 아무래도 벽돌가마가 자연적인 훼손보다 의

도적으로 파괴 내지 파손되는 과정에서 유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2호 진흙가마는 1호 벽돌가마내부에 자리한다. 연소실은 그 평면형

태가 타원형으로 번조실 경계에 크기가 다른 할석을 가지고 수직으로 
쌓아 불턱을 만들고 진흙을 발랐다

. 번조실 벽체는 대부분 갑발 혹은 

석재를 가지고 매우 조잡하게 쌓았는데

, 석재는 천석과 할석을 가지고 

가로로 쌓고 벽석 사이에 진흙을 발라 마무리하였다

. 가마의 축조기법

에서 

1호 벽돌가마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면서 달리 전혀 벽돌을 사용

하지 않았다

. 연도부는 구조물을 시설하지 않고 지표면을 비스듬히 다

듬어 연기가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경사를 두었다

번조실 양쪽에서 확인된 

6개소의 측면 출입구는 서로 3∼4m내외의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배치되었다

. 측면 출입구는 모두 지형이 낮은 쪽

에 두었는데

, 가마의 번조 이후 생성된 폐기물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된다

. 1호 벽돌가마 때 처음 만들어진 측면 출입구는 여러 

차례 보수과정을 거쳐 

2호 진흙가마 단계까지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2호 진흙가마는 1호 벽돌가마의 벽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대로 이용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01

①  유적지 전경 

②  3호 가마 모습 

③  3호 가마 번조실

④  1ㆍ2호 가마 전경 

⑤  1호 가마 벽체 흔적 및 2호 가마 벽체 모습

<사진 1> 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 청자가마


background image

  제25호

102

1호 벽돌가마와 2호 진흙가마는 모두 터널형으로 번조실 바닥면 폭

이 연도부 쪽으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좁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 번조실 

바닥면의 층위와 벽체의 보수 흔적을 근거로 

2호 흙가마는 6차례 이상 

번조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가마의 규모는 번조시 길이 37.7m, 

폭 

0.8∼1m이며, 연소실은 길이 2.3m, 폭 0.8∼1m내외이다. 그리고 화

기를 배출했던 연도부는 길이 

3m, 폭 1.5m이다.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에서는 유물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나왔다

해무리굽완은 굽의 형태와 내부 바닥면 원각의 유물을 근거로 두 종류
로 나뉜다

.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해무리굽이 중간단계 해무리

굽(중국식해무리굽)

, 한국식해무리굽, 퇴화해무리굽으로 변화한다. 모든 

유형의 초기청자 해무리굽이 섞인 상태로 나왔는데

, 그 시기가 가장 앞

서는 선해무리굽 완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 여기에 잔과 잔탁, 병, 

주자

, 화형접시 등이 더 나왔는데, 유약이 골고루 시유되어 대부분 상

품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요도구는 갑발

, 도지미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갑발은 

발형

, 복발형, 원통형, 뚜껑, 받침 등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으며, 갑발 

외면에 명문과 고누를 두기 위하여 말발을 그린 고누판이 새겨진 갑발
이 나와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 벽돌은 장방형으로 대부분 심하게 깨진 

상태로 수습되었다

. 거의 ‘井’자형으로 벽돌을 쌓아 중앙부분이 뚫려 있

는 유물은 그 용도를 단정할 수 없지만 벽돌가마의 배연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대형벽돌가마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문양이 없는 초기청자만을 생산하였던 유일한 곳이다

. 유구와 유물의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03

속성에서 중국 절강성 월주요와 긴밀한 관련성이 언급되고 있는데

, 10

세기를 전후한 당나라 말엽에서 오대 초엽 월주요 상림호에서 나온 갑
발의 종류와 소성기술이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22 그리고 벽돌가마

의 구조와 규모

, 소성기술, 성형기법, 기표의 장식 등 기술부분에서 월

주요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 또한, 벽돌가마를 파괴하고 내부

에 진흙가마가 조성된 모습은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사례가 유일
하며 국내 초기청자 생산 가마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23 따라서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그 역사성과 우수성으

로 전북기념물 제

134호(2016.12.16 지정)로 지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

가 사적 제

551호(2019.9.2 지정)로 승격되었다.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초

기청자의 생산양상과 변천 과정을 밝히는 열쇠를 쥐고 있으므로 향후 
대대적인 추가 발굴조사가 요망된다

.

IV. 국내 주요 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사례 

가마터는 그릇이나 자기를 만들어 굽던 도요지를 말한다

. 토기와 도

기를 조직적으로 생산한 도요지는 삼국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 말기
까기 전국에 걸쳐 존재하였으며

, 고려시대에는 각 지방의 ‘所’에서 생산

을 담당하였다

. 조선시대에는 이들 생산시설이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

22

이군

,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의 조성시기에 대한 고찰」,뺷고고학으로 후백제를 알리다뺸, 

2018, 23∼49쪽.

23

김영원

, 「도통리 중평 청자요지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뺷사적지정추진을 위한 진안 도

통리 중평 청자요지 학술심포지엄뺸

, 진안군․군산대학교박물관, 2017, 20∼22쪽.


background image

  제25호

104

되었는데

, 뺷世宗實錄地理志뺸에는 전국에 324개의 ‘磁器所’ 라는 생산조

직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특히, 고려시대 청자를 생산하였던 

‘所’는 국가 재정과 물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운영되었으며 국가의 통
제와 토착세력의 관리 아래 품질이 관리되었다

. 청자가 생산되기 시작

하는 단계부터 그 기술이 유입되어 퇴장하는 시기까지 청자를 생산하
고 발전시켰던 가장 대표적인 고려청자의 요장이 탐진현 

‘大口所’와 ‘七

良所

’이다. 이곳은 현재의 전남 강진지역으로 도기를 만들던 전통적인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중국의 선진 도자기술을 받아들여 독보적인 비
색청자와 상감청자를 완성하였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또한, 부안

지역을 대표하는 유천리와 진서리 고려청자 가마터와 해남 화원면 일
대의 청자 가마터도 고려청자를 생산한 중요한 가마터로서 학계에서
는 평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 도자기 가마터의 경우 역사적ㆍ학술적ㆍ문화적으로 가치

가 높은 유적은 몇 차례의 발굴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유구의 분
포범위를 설정한 후 이를 문화재(국가사적 또는 시도기념물)로 지정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속적인 관리와 정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표 2> 또한 강진 대구면 도요지를 비롯하여 부안 유천리 

청자가마터

, 광주시 충효동 분청사기 도요지, 인천 경서동 녹청자 도요

, 경기 광주 분원 백자 요지 등 국가 사적지의 경우에는 문화재청과 

지자체의 효율적인 협업으로 훌륭한 전시관(사진 2-①,③)과 발굴 조사된 
유구를 보호하는 시설(보호각)을 마련한 곳도 있다

.(사진 2-⑤) 이는 문화

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확인된 도자문화의 성
격과 우수성을 국내외에 적극 홍보하는데 매우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05

유적명

조사현황

지정면적

/㎡

정비

ㆍ관련시설

정비

전시관

보호각

강진 대구면 도요지

(사적68호/1963.1)

188기 분포

발굴(’64∼’81, ’12/국박ㆍ광박ㆍ민족연)

강진청자박물관(’97)

1,029,640

2층

2기

(이전)

부안 청자 가마터

(사적69호ㆍ70호/1963.1)

77기 분포

발굴(’66, ’90, ’93, ’98/국박ㆍ원광대)

부안청자박물관(’11)

67,097

3층

1기

광주 충효동 도요지

(사적141호/1964.8)

다수 분포

발굴(’63, ’91/국박ㆍ광박)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관(’98)

57,626

2층

1기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

(사적211호/1970.6)

다수 분포

발굴(’65∼’66/국박)

인천 서구 녹청자박물관(’10)

6,061

2층

1기

광주 분원 백자요지

(사적314호/1985.11)

340여기 분포

발굴(’64∼’11/국박ㆍ이대ㆍ경기도자박)

경기도자박물관(‘04),백자자료관(’09)

382,738

2층

1기

용인 서리 고려 백자요지

(사적329호/1989.1)

1기 발굴(’84∼’88/호암미술관)

4,168

공주 학봉리 요지

(사적333호/1990.8)

다수 분포

발굴(’92∼’93/국박)

33,416

영암 구림리 도자요지

(사적388호/1990.10)

다수 분포

발굴(’87, ’97, ’15/이대ㆍ민족연)

영암도기박물관(’99)

3,669

1층

2기

군포 산본동 

조선백자요지(사적342호/1991.1) 1기 발굴(’90, ’93/호암미술관

충북대)

2,348

장성 대도리 백자요지

(사적377호/1992.10)

1기 발굴(’92/목포대박물관) 

6,547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요지(사적413호/1999.6)

1기 발굴(’97∼’98/해걍도자미술관)

2,842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요지

(사적510호/2011.7)

2기 발굴(’10/대동문화재연구원)

10,977

대전 정생동 백자가마터

(시기념물36호/1997.11)

1기 발굴(’97/해강도자미술관)

219.5

1기

충주 미륵리 요지

(도기념물100호/1994.12)

4기 발굴(’94/충북대박물관)

11,831

1기

하동 백련리 도요지

(도기념물24호/1974.12)

4기 발굴(’04/경남문화재연구원)

7,456

1기

창원 웅천 도요지

(도기념물 160호/1997.1)

다수 분포

발굴(’01∼’02/경남발전연구원)

웅천 도요지전시관(’11)

1,001

1층

1기

양구 방산면 도요지

(미지정)

40여기 분포

발굴(’08∼’09/국립춘천박물관)

양구백자박물관(’06)

장평ㆍ칠전

현리 일원 ✕

2층

<표 2> 주요 도자기 가마터 보존현황


background image

  제25호

106

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 한편, 이와는 달리 용인 서리 고려 백자 요

지와 시흥 방산동 도요지

, 군포 산본동 백자 요지, 고령 사부동과 기산

동 요지처럼 가마터 유적에는 별다른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잔디식재 및 
울타리 설치만 하여 더 이상 현상이 변형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정비 시
설만을 갖춘 곳도 있다

.(사진 2-⑥, 사진 3-①) 또한 발굴조사가 진행된 가

마터 일지라도 가마 

1∼2기만이 현장에 보존되어 있거나 이전 복원한 

공원에 옮겨진 경우에도 보호각 안에 가마만 남겨져서 모형 전시물처
럼 남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진 2-②) 이는 가마의 구조만 보여주는 

정보 이외에 다른 가치를 찾아볼 수가 없어 활용가치를 탐색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진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은 도자기 생산유적지의 보존현황은 왕릉이나 왕궁과 

같은 유적에 비하여 관심도 적고 역사문화교육 현장이자 관광자원으
로서의 가치도 개발되지 않아 활용계획도 부족한 형편이다

. 도자기 전

문생산 단지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도요지들은 모두가 그 당시 도자기 
생산기술에 대한 각종 정보와 그와 관련된 사회상

, 생산에 적합한 지형

지세의 이용 상황

, 원료의 공급체계, 생산품의 공급 규모, 당시 도자기

를 둘러싼 사회 경제 형태

, 대내외 기술, 문화교류의 상황 등 다양한 연

구에도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의 하나로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 따라서 도요지는 그 활용방안에 따라 역사교

육 자료로써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문화공간으로써 활용도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 역사문화유적의 보존이 역사적 가치의 보존을 위한 것이

라면 활용방안은 유적의 미래가치를 탐색하여 현대인과 미래사회의 
문화환경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구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07

<사진 2> 도자기가마터 보존사례

(①  강진청자박물관 전경 ②  가마복원 모습 ③  부안청자박물관 전경 

④  청자박물관 전시실 모습 ⑤  광주 충효동 도요지 가마 보호각 ⑥  시흥 방산동 도요지 정비 모습)


background image

  제25호

108

축이라고 본다

.24 따라서 문화유적의 합리적인 개발은 유적보존을 훼

손하는 것이 아니라 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발굴하여 현대에서 재구축
하는 문화 기반시설의 조성방향이라고 본다

그동안 학계에서 여러 차례 제시된 청자가마터에 대한 보존과 활용

방안은 크게 ①

 학술조사, ② 종합 정비계획 수립, ③ 재현과 문화상품 

개발 등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25 이들 내용을 살펴보면, ① 학

술조사는 발견된 가마터의 정확한 분포와 성격을 파악하는 것으로 유
적의 보존관리를 위해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선행작업이다

. 학

술조사는 정밀지표조사와 발굴조사로 나누어지며

, 정밀지표조사는 가

마터의 위치와 현황

, 분포도 작성, 출토 유물의 분석과 연구 등이 포함

된다

. 이를 기초로 가마터가 더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방지대책을 

마련하여야 하는데

, 일반적으로 노출된 유구는 복토하여 보호하고 퇴

적층은 그물망 등으로 덮어 도자편이나 요도구 등이 무분별한 채집행
위로부터 보호하고 무단으로 외부의 유출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 이러

한 조치는 유적의 보존 관리상에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나 대다수 청자
가마터의 경우 현재 그 관리상태가 미흡한 수준이어서 현상변경 등 유
적의 훼손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

또한

, 효율적인 보존과 함께 가마터의 성격과 출토유물에 대한 의미

를 규명하는 학술 발굴조사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

. 발굴조사가 이

루어진 가마터 가운데 보존상태가 양호한 곳은 교육을 위한 학습장이

24

나선화

, 앞의 글, 2012, 104∼105쪽.

25

한성욱

,「해남지역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방안」,뺷해남 화원 초기가마터의 성격과 해

양교류뺸

, 해남군, 2011, 121∼125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09

나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보존정비와 재현 등을 실
시한 다음 보호각을 세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와 동시에 발굴

조사와 학술대회 결과를 토대로 이미 학술적 중요성이 입증된 가마터
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여 유적이 효율적으로 관리되도록 노력하여
야 한다

그리고 가마터에서 생산된 청자의 중요성을 도자 연구자에게 더욱 

깊게 인식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해당 가마터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
술대회도 지속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 이는 학술적인 의미 외에도 확

인된 명품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
시킬 수 있고 나아가 국내외에 해당 청자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 정비계획 수립은 장기적으로 청자가마터에 대한 보존대책

을 시행하고 교육을 위한 학습장과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 필요한 것이다

. 종합정비계획은 가마터가 잘 보존된 지역을 중심으

로 토지 매입과 정비가 이루어져야 하며

, 발굴 조사된 가마를 복원 또

는 재현(사진 3-③)

 전시하고 출토된 유물을 전시․연구․교육할 수 있

는 전시관 또는 박물관을 건립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

. 이는 많은 예

산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장기적이고 연차적인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
는데

, 전시관은 새롭게 신축하는 것보다 유적지 근처 가까운 곳에 위치

한 폐교를 활용하거나 지역의 기존 박물관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
을 것 같다

. 그리고 전시관 주변에는 도예촌이 형성될 수 있도록 부지

를 조성하여야 한다

.(사진 3-②) 전시관의 전시내용은 가마터와 여러 소

비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하여 가마터 분포도와 현황도

, 가마 복


background image

  제25호

110

<사진 3> 가마터의 보존과 활용사례

(①  공주 학봉리 도요지 정비 모습 ②  계룡산 도자예술촌 전경 ③  복원된 가마 체험 

④  도자기 제작 체험교실 운영 ⑤  생활도자기 판매대 모습 ⑥  차문화 축제)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11

원 모형

, 제작과정, 제작도구, 장인의 생활상 등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전시하도록 하다

.(사진 2-④) 특히, 다른 박물관(전시관)과 성격이 중복되

지 않는 지역적 특성을 갖추도록 하여야 하며 재현품 전시도 필요하다

그리고 연구실과 수장고

, 정리실, 시청각실, 도서실 등이 반드시 설치

되어야 할 것이다

. 기타 부대시설로는 공방과 체험 학습장, 재현품 등

을 판매 할 수 있는 판매소

, 주차장, 진입로, 각종 편의시설 등이 설치되

어야 할 것이다

. 종합정비계획은 많은 예산이 소요되므로 계획이 수립

되면 예산의 단계별 우선순위를 선정하여 투자되어야 하고

, 향후 추가 

증축과 연계성 확보를 위한 건물 배치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 이러한 정

비계획은 가마터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와 연구를 바탕으
로 하여야 하고 관련 전문가의 참여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그러나 

무엇보다 향후 효과적인 관리와 운영이 가능하도록 필요 이상의 규모
가 되는 것을 반드시 경계하여야 하며

, 주변 문화유적을 비롯한 관광지 

등과 연계한 정비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재현과 문화상품 개발은 지역의 미래자산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

이다

. 가마터에서 생산된 도자기의 재현과 생활 도자 개발을 촉진하는 

등 문화관광 상품 개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 먼저 가마터 생산 도

자기의 재현은 먼저 지역의 문화계 인사가 주축을 이룬 

‘청자 재현 추진

위원회

’를 구성하여 전문가의 자문과 도공의 확보를 도모하며 청자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태토와 유약 개발

, 기형과 문양 등을 연구하는 ‘00

’의 설치, 도공과 지역 도자기의 특성을 창출할 산업 디자이너 및 도

자사학자와 자연과학자의 확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 이와 더불어 계획

된 사항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로 연결되어 이들이 재현에 전념


background image

  제25호

112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뒷받침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다

다음으로는 특허화와 캐릭터 상품의 개발은 지역 청자만이 갖는 독

특한 특징을 개발하여 상표로 특허 등록하여 상품을 고급화하는 것이

. 출토유물을 모델로 하여 전통을 계승한 현대적 상품 개념으로 확대

시키고

, 최신 아이템으로 간단한 기념품을 제작하여 판매를 유도한다.

(사진 3-⑤)

 또한, 다양한 연관 상품도 함께 개발하여 지역 도자기의 홍보

와 그 의미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 시대가 요구하는 청자가 되어야 만 

생명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일상 생활용품
으로 국내외에 널리 애용하도록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꾸준히 개발할 뿐
만 아니라

, 작가 고유의 창작품 개발도 병행하며 이것이 시대적 정신문

화를 반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저한 고민도 이루어져야 한다

. 그리고 

선조의 기술력을 현대적으로 재개발하여 산업재ㆍ원자재와 인테리어 
관련 제품 등 산업적 재투자가 가능한 아이템을 전략적으로 선정하고 
지역의 유관기관과 민간자본이 협력하여 고급상품의 개발을 추진한다

이러한 작업이 안착하게 되면 특징적인 도자문화를 갖춘 주변 도시와 
연계한 

‘도자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이를 문화관광 자원과 시설로 활용

하는 정책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 지역의 음식문화를 식단화하고 모든 식기는 해당 지역의 도자

기를 사용하며 그릇과 어울릴 수 있는 음식 개발도 병행하는 것이다

거리와 건물의 벽

, 각종 안내판, 문의 손잡이 등을 도자기로 연차적으

로 대체하고 도자기 문화(청자고을)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느끼고 청자 
사용을 일상화하도록 유도하며 한국의 차문화와 청자를 연계한 다양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13

한 체험학습(사진 3-⑥)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방안으로 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학습형 현장 체험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하여 전시관

, 공

, 가마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청자 캠프를 개설하

, 가마터 답사와 청자의 제작 현장 등에 직접 참여하고 체험 할 수 있

는 학습형 프로그램을 개발토록 유도한다

.(사진 3-④) 지역의 교육기관

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여가선용을 할 수는 프로그램도 적
극 개발한다

. 또한,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도자의 역사 문화를 찾

아서

’ 등의 주제로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동양 청자 가마터 답사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미래 수요자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 둘 필요도 있

. 그 외 지역주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여 시민들에게 

해당 지역 도자기의 의미와 독창성을 널리 알리고 이들에게 지역 문화
에 대한 자긍심이 더욱 고양되도록 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효과가 높
은 정책이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V.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방안

최근 시민사회의 성장과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문화유

산에 대한 관심과 참여 욕구가 점차 커지면서 문화재의 적극적인 활용
이 요구되고 있다

. 문화유산의 활용은 국민의 전통문화 향유 기회를 확

대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내재된 상징성을 문화산업의 소재로 개발하
여 문화관광 진흥을 위한 자원으로 육성할 수도 있다

. 문화재는 그동안 

원형보존과 관리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으며

, 활용도 원형유지를 기


background image

  제25호

114

본원칙으로 주변 자연환경과 역사문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 또

한 문화재는 역사 교훈을 배우고 전통문화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
에서 교육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26 그러나 문화

유산을 지역경제의 활성화 수단으로 인식하여 경쟁적으로 관광자원으
로 개발하고 있어 역효과도 있다

. 즉, 충분한 검토가 없는 개발은 오히

려 문화재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 또한 여러 지역에서 유사한 성격의 

문화유산을 개발하여 중복 투자되거나 재원 대책 없이 사업을 추진하
여 지역별로 특화된 관광자원으로 정착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따라

서 문화재를 원형대로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주민들이 문
화재를 알고 찾고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하여야 한다

.27 우리나라의 주요 가마터에 대한 

효과적인 보존과 활용에 대하여서는 이미 선학들에 의한 여러 차례의 
사례 연구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어있다

.28 또한, 역사기록에서 확인

된 가마터를 중심으로 이미 학술조사와 종합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구
체적인 보존방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이들 가마터를 정비하여 활용 단
계에 이른 지자체도 여러 곳 있다

현재 학계에서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도자기 가마터의 보존과 활

26

문화재청

, 뺷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 계획뺸, 2002, 47∼48쪽.

27

나선화

, 앞의 글, 2012, 106∼110쪽.

28

강진청자박물관

, 뺷강진청자의 미래 지향점뺸, 2011; 고흥문화원, 뺷고흥 운대리 도자문화

의 성격뺸

,  2005;  남도문화재연구원,  뺷보성 정흥리․도촌리 분청사기 요지뺸,  보성군, 

2007; 나선화, 앞의 글, 2012, 114∼117쪽; 최성락 외, 「해남지역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
용방안」

, 뺷해남의 청자요지뺸, 목포대학교박물관, 2002; 한성욱, 「전남지역 도자문화의 

활성화 방안」

, 뺷전남문화재뺸12, 전라남도, 2005; 호남고고학회, 뺷광주 문화유산의 보존

과 활용 방안뺸

, 광주광역시, 1997; 호남문화재연구원, 뺷호남의 문화유산 그 보존과 활

용뺸

, 학연문화사, 1999, 37∼55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15

용방안은 원칙적이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 제

시된 안에 맞추어 정부와 지자체가 공조체제를 이루어 많은 예산을 들
여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분명 해당 가마터는 지역의 새로
운 명소로서 재탄생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직 도자기 

가마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뿐만 아니라

, 국가와 지자체의 부족한 예

산지원 및 효과적인 보존 정책의 미흡 등 다양한 현실적인 한계성을 인
정하지 않을 수 없다

. 단지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불과 몇 개소의 

가마터에 대한 최소한의 보존과 활용만이 관계 당국과 지자체의 열정
적인 노력으로 그나마 관리ㆍ운영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경우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유적지의 보존

과 함께 지역 정서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활용방안을 이제부터라도 마련
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이는 120여 개소에 달하는 진안지역 도

자문화의 정체성 확립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재를 적극 보존하여 미래자
산으로써 활용가치를 부가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
이다

. 따라서 기존에 학계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마터의 보존과 활용방

안을 염두에 두면서도 진안 도통리 가마터의 현실과 문화경관에 적합한 
보존방안과 활용방법이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이

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정비가 필요
하다

.29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해당 유적에 대한 시․발굴조사

29

정비는 흐트러진 체계를 정리하여 제대로 갖추는 것을 뜻한다

. 하지만, 문화유산의 정비

개념은 좀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데

, 유적보존과 관리 및 활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적과 유적 주변에 행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 특히, 가마

터는 대부분 지하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발굴조사를 통해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으며

해당 유구는 발굴조사 이후 보존처리

, 보호각 설치 등의 정비과정을 통해 그 가치를 지속

적으로 유지하고 활용 할 수 있다

.


background image

  제25호

116

가 아직 계속 진행 중에 있으므로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 현재까

지의 성과로 볼 때 초기청자의 생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자들의 견해는 주목되는 부분이며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본다면

, 도자문화상에 있어 역사적 의미가 높으므로 가마터에 대한 보

존정비의 필요성은 강조될 수 있다

. 따라서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한국 

초기청자의 출현 문제를 명확하게 밝히기 위한 적극적인 물질자료의 획
득 차원에서라도 몇 차례의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 또한 연구자와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학술토론회를 통하

여 유적의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향후 가마터의 복원과 정비
에 필요한 기초자료의 수집은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다

다음으로는 종합정비계획의 수립에 있어서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

의 정비 방법과 규모에 대한 검토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 청자문화의 역사성과 학술적 가치를 제고함과 아울러 마이산 주
변 문화유적과의 연계를 통한 문화적 마케팅을 유도 할 수 있는 방향으
로 종합정비계획은 마련되어야 하는데

, 인근 지역의 사례를 분석하고 

지역의 문화적 정서와 경제적인 효과 등을 포함한 합리적인 대안이 수
립되어야만 현실 가능한 정비 계획안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 특히, 고

려청자를 주제로 이미 유적을 정비하고 대규모 전시관과 체험시설까
지 갖춘 인근의 부안청자박물관과의 성격 중복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독창적인 종합 정비계획안이 필요하다

. 하나의 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도통리 청자가마터 현장에 별도의 전시관을 건립하는 것 보다는 
이미 건립되어 운영 중인 진안역사박물관을 활용하여 도통리 청자가
마터 관련 내용을 다룬 상설전시실을 마련하고(사진 4-①)

, 발굴 조사된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17

가마를 축소 전시하며 출토된 유물과 진안지역의 도자문화를 종합적
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절충안도 적극 고려하여야 한다

. 이는 새

로운 전시관의 건립을 위한 부지 마련과 이에 따른 지역주민과의 마찰
을 최소화 할 수 있으며

, 수십억원에 달하는 건립 예산의 안정적인 확

보 문제

, 개관 이후 매년 시설관리와 운영에 소요되는 정책적이고 경제

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 또한, 이미 가마터 

인근에 별도의 전시관을 건립하여 운영하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설관리와 운영상의 문제점 및 매년 저조한 관람객 수
와 건립 시 예상되었던 기대효과의 미흡한 점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적절한 대안으로 생각된다

또한

, 발굴조사가 마무리된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유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흙 등으로 덮어 복토정비하고

, 확인된 가마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표식을 세워두거나 유구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면을 높이
거나

, 구별이 가능한 다른 재료(초화류 식재 등)를 사용하여 정비하는 방

법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4-②) 강진 대구면 도요지나 부안 청자 

가마터․대전 정생동 백자 가마터․창원 웅천 도요지처럼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가마를 노출하고 보호각을 씌워 가마터가 지닌 역사적 
정보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마련된 유구 노출 정비 방법도 현재 널
리 사용되고 있으며

, 이는 유적이 가지는 역사적 환경을 원형대로 보존

한다는 면에서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 그러나 역사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유구 자체보다는 다른 수단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부
분이 많고

,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안내판뿐만 아니라 사적 부근에 작은 

규모의 전시관 혹은 자료관 등을 두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


background image

  제25호

118

. 그리고 보호각 내에 유구를 노출 정비할 때 파생되는 문제점으로 시

간의 경과에 따른 유구의 훼손 방지와 현상유지를 위해 발굴된 가마터 
전체에 대해 인체에 유해한 화학적 처리를 하거나 그대로 놓아둘 경우 
노출된 유구의 훼손이 더 가중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부분적인 수
리․보강 작업을 하게 된다

.30 이때의 수리․보강은 유구의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작업으로서 원래의 부재와 구별되도록 시공하
는 것이 원칙이므로 결과적으로 원래의 유구와는 조화롭지 못한 상태
로 나타날 경우가 많다

. 그 외, 보호각의 관리와 운영에 따른 예산 문제

와 현장에서 발생되는 각종 행정사항 등도 지속적인 현안이 될 수 있다

특히

,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경우에는 유구를 노출 정비하여 놓더라

도 유적의 관람을 위해 직접적으로 찾아오는 일반인은 그다지 많지 않
을 것으로 생각된다

. 도통리 청자가마터에서 그리 멀지 않는 마이산(해

발 

687.4m)

은 등산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전북의 명산이다

.(사진 4-

)

 그러나 등산객들을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부족하

. 단순히 산행과 캠핑만을 즐길 뿐 인근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 도통리 청자가마터가 보존․정비된다면 마

이산 일대의 문화유산과 연계하여 많은 사람이 이곳에 머물게 할 수 있

30

수리는 문화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훼손된 부분을 원상태로 고치는 행위로

, 손상

된 문화유산을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 보강은 문화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상태를 견고히 하는 행위이다

. 수리와 보강은 정비과정에서 수반할 수도 있지만, 정비가 

끝난 후 유지관리 시에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 가마터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 

중 훼손이 심한 유물은 수리

, 보강을 통해 원래의 가치를 회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복

은 문화재의 원형이 부분적으로 유실되거나 훼손된 경우 고증을 통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행위이며

, 복원은 문화재의 중요한 가치 또는 원형이 소실될 경우, 고증을 통해 

문화재를 원래의 모습이나 특정 시기의 모습으로 전체 또는 그 일부를 되찾는 행위이다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19

<사진 4> 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 청자요지 활용방안

(①  진안역사박물관 전시실 ②  가마터 정비 ③  마이산 연계 문화콘텐츠 개발 

④  문화상품개발 ⑤  인근 유적지 관광객 유도 ⑥  도통리마을의 경관 보존)


background image

  제25호

120

을 것이다

. 일련의 계획들이 인근 주민들의 소득증대로 연결되어야 유

적을 보다 더 사랑하고 보존하려고 할 것이다

.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전주 한옥마을 탐방객의 영향으로 전북지역으로 유입되는 관광객을 
진안으로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며

, 인근 타 지역의 관광객을 

이곳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문화콘텐츠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사진 

4-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안군의 대표적 관광지인 마

이산도립공원으로 연계된 고속도로에서 도통리 청자가마터로 편리하
게 찾아올 수 있는 도로망을 구축하여

, 현재 홀로 떨어진 곳으로 다소 

복잡한 지방도를 따라 찾아와야 하는 불편한 접근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향후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접

근 용이한 도로망의 구축 계획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

한편

,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에서 생산된 청자의 재현과 이를 근거

로 한 문화상품의 개발은 지역의 미래자산으로 향후 활용 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도 필요하다

.(사진 4-④) 그러나 아

직 발굴조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지역만의 특징적인 청자의 실체가 아
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가마터에서 생산된 도자기의 
재현과 생활 도자 개발을 촉진하는 등 문화관광 상품의 개발은 현 단계
에서는 향후의 장기적인 미래 사업으로 보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중평마을 전체가 청자를 생

산하였던 가마터였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유적
의 정비와 활용 방향을 수립하는 것은 하나의 대안이라 생각된다

나아가

, 유적의 보존과 활용에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개별적인 유구 

자체만이 아니라 해당 유적을 비롯한 그 주변 환경을 보존대상에 포함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21

해 보존 활용함으로써 유적이 갖는 역사성과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전
달하기도 한다

. 이를 지구정비라고 하며 점적인 유적의 보존ㆍ활용에

서 면적인 보존ㆍ활용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다른 유적들과

는 달리 도통리 청자가마터 일대에는 현재에도 실제적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규정 등 강제적인 보존ㆍ활용보다는 
지역자치단체와 주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 이것이 

다른 보존ㆍ활용방법과는 차이가 나는 점으로

, 지자체 차원에서 중평

마을을 

‘진안청자마을’로 선정하고, 청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한다면 유적지를 방문하는 자에게 진안 도자문화의 전승과 의미의 
전달이 가능할 것이며

,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경관적 이미지를 최대한 

살린 마을의 자연환경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4-⑥) 

VI. 맺음말 

문화유산은 우리에게 문화적 뿌리를 확인 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

, 풍요로운 문화생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 두 가지가 있다

. 소극적인 방법은 원형

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이며

, 적극적인 방법은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 소통하고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보

존에 앞장서도록 하는 방법이다

. 지금까지 도요지의 보존방법은 발굴

조사 결과로 드러난 가마터의 현장보존과 도요지의 역사자료를 간략
하게 설명하는 작은 전시관 성격의 박물관을 건립하는 정도였다

. 그 외


background image

  제25호

122

에 생산품을 재현하는 생산시설도 구축하여 지역 특산품이나 문화상
품으로 활용하며 지역의 역사문화 이미지 구축에도 일익을 담당하였

. 현재 도요지의 활용계획은 이 정도 수준에 머무르며 더이상 한걸음

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가마폐기물이 지표에 산재되어 있는 가마
터들은 여전히 탐방로도 없이 방치되어있는 실정이다

. 이제 도요지는 

단순한 도자기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역사유적으로서 단지 현장 보존
에만 국한된 유적보존의 단계에서 벗어나 그 역사성을 재산으로 하여 
지역 경제발전에 유익한 자원으로써 활용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미래 
환경

, 미래문화 성격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

어야 한다

.31 따라서 그 활용범위도 확대되어야 하며 유적 보존방법에 

있어서도 활용계획에 따라 다양한 분석과 연구의 탐색이 필요하다

. 이

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정비와 활용은 
문화유산의 보존적 측면과 더불어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

, 관광객 유치

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 지역 이미지 향상 등의 기대효과를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

문화유적에 대한 보수와 정비

, 복원을 통해 도자문화의 정신을 체험

할 수 있는 장소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으며

,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도

통리 청자가마터의 실체 규명을 위한 전반적인 발굴조사를 추가로 진
행할 필요성이 있다

. 나아가 학제적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가마터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한다면 향후 도통리 청자가마터에 대한 정비와 
복원에 대한 방향성이 분명해질 것이다

. 또한 유적의 정비와 더불어 도

통리 중평마을을 청자마을로 선정하고 문화경관의 복원을 도모하여 

31

나선화

, 앞의 글, 2012, 104∼105쪽.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23

고려시대 초기청자 공방시설의 체험을 위한 테마파크로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유산의 복원을 통한 ‘활용’이 보다 적극적인 ‘보존’

의 수단으로 되며

, 이러한 관점에서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문화적 활용

은 역사적 복원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이는 

과거의 문화유산이 후손들의 역사문화 향유라는 재산으로 재탄생하는 
사례로서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정비와 활용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background image

  제25호

124

참고문헌

1.자료 

뺷三國史記뺸
뺷世宗實錄地理志뺸

2.단행본 

강진청자박물관

, 뺷강진청자의 미래 지향점뺸, 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 뺷사적 보존ㆍ활용을 위한 해외조사자료집뺸, 2010.

국립전주박물관

, 뺷전북의 조선시대 도요지-조선시대 분청ㆍ백자요지-뺸, 1997.

국립전주박물관ㆍ군산대학교박물관

, 뺷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청자요지뺸 II, 201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뺷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청자요지뺸 III, 2019.
군산대학교박물관

, 뺷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뺸 I, 2016.

고흥문화원

, 뺷고흥 운대리 도자문화의 성격뺸, 2005.

남도문화재연구원

, 뺷보성 정흥리ㆍ도촌리 분청사기 요지뺸, 보성군, 2007.

문화재청

, 뺷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 계획뺸, 2002.

________, 뺷요지의 보존정비 관리방안 연구뺸, 2016.
전주대학교박물관

, 뺷진안군 문화유적분포지도뺸, 진안군, 2007. 

최순우

, 뺷한국청자도요지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호남고고학회

, 뺷광주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방안뺸, 광주광역시, 1997.

호남문화재연구원

, 뺷호남의 문화유산 그 보존과 활용뺸. 학연문화사, 1999.

3.논문

강원종 외

, 「진안 봉곡 도요지」, 뺷호남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성과뺸, 2012.

김영원

, 「도통리 중평 청자요지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 뺷사적지정추진을 위한 진안 도

통리 중평 청자요지 학술심포지엄뺸

, 진안군․군산대학교박물관, 2017.

나선화

,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가마의 보존과 활용방안」, 뺷동아시아에서 본 고흥 운대

리 분청사기 요지뺸

, 고흥군, 2012. 

이군

, 「진안 도통리 벽돌가마의 조성시기에 대한 고찰」, 뺷고고학으로 후백제를 알리다뺸, 

2018.  

최성락 외

, 「해남지역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방안」, 뺷해남의 청자요지뺸, 목포대학교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25

박물관

, 2002. 

한성욱

, 「전남지역 도자문화의 활성화 방안」, 뺷전남문화재뺸12, 전라남도, 2005.

______, 「해남지역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방안」, 뺷해남 화원 초기가마터의 성격과 해

양교류뺸

, 해남군, 2011. 


background image

  제25호

126

Abstract
Preservation and utilization of the celadon kiln site in Dotong-ri, 
Jinan

Lee, Ju-Heun National Research Institue of Cultural Heritage, Archaeologial Studies Division ․ Director

Ancient celadon kiln sites are important sites that can provide us with a great deal of 

information about the period concerned, including the ceramic production skills, how 

people used topography to produce the celadon, the ways in which raw materials and 

completed goods were supplied to those who needed them, the social economy related 

to the production of ceramic wares, the ceramic production skills developed in Korea 

and overseas, and how cultures and ideas were exchanged between the Korean 

Peninsula and other countries.

The celadon kiln site in Dotong-ri, Jinan, which has recently been surveyed and ex-

cavated, is thought to be a very important historic site for research on the process of de-

velopment of celadon culture in Korea. A large number of archaeological materials re-

lated to celadon objects of early periods, such as gapbal(clay firing boxes used in the pro-

duction of white porcelain), kiln walls and bricks, celadon bowls with a dough-

nut-shaped foot, and ceramic fragments, have been unearthed from it. It is expected 

that the site can be used for cultural activities as well as a material for history education. 

As such, it is necessary to discuss how the site should be preserved and utilized in the 

future. 

Those concerned have discussed the possibility of establishing a museum complete 

with a small exhibition room to display historic materials associated with the site and to 

carry out the work of preserving the site unearthed by the survey. They also discussed 

the establishment of a facility for producing replicas of local specialties in an effort to 

publicize the area as a historic site of ceramic kilns. 

However, efforts should now be made to exploit the historic sites both as a major re-

source and engine of local economic development and as the basis for fostering a future 

environment conducive to regional cultural development, rather than being content 

with merely preserving them as historic sites. To that end, it is necessary to carry out 


background image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의 보존과 활용

127

comprehensive excavation surveys of the sites in order to set a direction for their repair 

and restoration based on a clear-cut definition of their nature and characteristics.

A site such as this one needs to be restored with the positive and voluntary partic-

ipation of the local community. Consideration also needs to be given to restoring the 

village's natural environment and to improving the areas surrounding the site. 

Therefore, it is recommended that the village be developed into a "celadon village" 

equipped with a theme park that provides visitors with a "hands-on" experience of cela-

don workshops of the Goryeo Period. 

Keywords celadon kiln sites, hands-on experience of a ceramic workshop, celadon 

village, restoration and use, historic culture

논문 투고일 : 2020.03.16  심사 완료일 : 2020.04.17  게재 확정일 : 202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