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제 회 국립박물관상품 정기공모 대표유물 목록
2021
2
구분
번호
유 물 명
소장품번호
비고
국립중앙박물관
1
금동반가사유상
본관 2789
국보 제 호
78
2
금동반가사유상
덕수 3312
국보 제 호
83
3
감산사석조미륵보살입상
본관 1958
국보 제 호
81
4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
본관 1959
국보 제 호
82
5
개성경천사지십층석탑
본관 6753
국보 제 호
86
6
고달사지쌍사자석등
신수 18239
보물 제
호
282
7
부석사괘불
K 969
8
노영 필 묵칠목판 금니아미타구존도
및 태조배첩도
본관12360
보물 제
호
1887
9
금동불감판
구 1031
10
감로탱화 김로도
(
)
신수 13521
11
산신도
신수 15313
12
칠성도 치성광여래도
(
)
구 8604
국립대구박물관
1
필자미상회혼례도 회혼례첩
(
)
- 혼인 주년 기념 잔치
60
덕수6375
2
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
경산 4523
3
고리자루큰칼
본관 11136
4
금동관
신수 610
5
금귀걸이
본관 11124
6
은허리띠 꾸미개
임당 14132, 14133,
14135, 14137,14141~42
7
금동신발
신수 625
8
관음보살
신수 3298
9
관음보살
신수 3299
10
부처
신수 3297
11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신수 331
12
금동용머리장식
경주 1968
13
현풍곽씨편지
증 14
14
갓
대구 23469
15
떨잠
대구 23463
16
비녀
대구 23461, 23462
17
조복
남산 1473
18
돌띠
증 1209 1210
19
보상화무늬 금직물
신수 1368
20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신수 6327
번호
국립중앙박물관-1
유물명
반가사유상
국적
시대
/
삼국시대
소장품
번호
본관 2789
국보 호
(
78 )
크기
높이 80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오른 발을 왼쪽 다리 위에 올린 반가 자세와 오른 손을 뺨
에 대고 생각에 잠긴 사유상이 결합된 작품이다 남아 있는
.
불교미술품 중 반가사유상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우리나
라만큼 반가사유상이 인기를 끌었던 곳이 없었다 심지어
.
한 불당의 본존으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석가
.
모니의 생애와 사상을 함축한 반가사유상의 신체 표현과 극
도로 평온한 표정이 대비를 이루는 조형적인 아름다움 때문
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반가사유상은 전체적으로 탄력 넘치는 신체의 곡선이 강
조되었고 천의 자락은 유려한 선을 그리며 몸을 감싸고 있
,
다 이 상은 미터에 가까운 큰 상임에도 불구하고 몸체의
.
1
두께가
밀리미터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주조 기
3~8
술을 보인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2
유물명
반가사유상
국적
시대
/
삼국시대
소장품
번호
덕수 3312
국보 호
(
83 )
크기
높이 90.9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다 머리에는 삼산
.
관
또는 연화관
으로 불리는 낮은 관을 쓰고 있으
三山冠
蓮花冠
며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단순한 목걸이만 착용했
다 다리를 감싸며 대좌를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사실적으로
.
표현되었다 가는 눈매와 양 눈썹에서 콧마루로 내려진 선의
.
흐름이 시원하고 날카로우며 양 입가엔 고졸한 미소가 어려 있
다 전체적으로 상 전체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였고 신체
.
의 간결한 곡선과 입체감을 강조한 반면 다리와 대좌를 감싼
군의
의 곡선은 유려하다 국보 호 반가사유상은 일정한
.
83
裙衣
얇은 두께로 제작되어 뛰어난 주조 기술을 보여주며 특히 일
,
본 코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하여 삼국과 고대
廣隆寺
일본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잘 알려져 있다.
간결하게 신체를 표현하면서도 옷주름이 들고나는 모습을 입체
적으로 구현한 조형미와 약
년 전 이 정도 크기의 반가사
1400
,
유상을 주조할 수 있었던 기술력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당시뿐
아니라 우리나라 조각사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3
유물명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국적
시대
/
통일신라
년
719
소장품
번호
본관 1958
국보 제 호
(
81 )
크기
높이 254.cm
재질
화강암
상세
정보
통일신라
년에 김지성이란 사람이 만든 상이다 상을 제작
719
.
한 사람과 조성 목적 제작 연대의 기록을 지니고 있는 중요한
,
사례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미륵보
살과 아미타불의 신체는 탄탄한 양감으로 가득 차 있다 몸의
.
굴곡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으며 실재감이 넘친다 이
,
.
러한 신체 표현은 굽타시대 인도 조각의 영향을 받은 중국 당
조각 양식을 수용하여 자기화 시킨 세기 초 통일신라 불상의
8
특징이다 다만
.
,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불상의 재
료로 단단한
화강암을 즐겨 사용하였다.
감산사 미륵보살상은 양감이 풍부하며 이국적인 화려한 장신
구가 특징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목에는
.
2
중의 목걸이가 걸려 있고 가슴과 팔에 걸친 천의
는 아래
(
)
天衣
로 늘어져 있다 팔에 찬 장신구나 치마
군의 에 걸친 구
.
[
(
)]
裙衣
슬띠의 섬세한 표현 역시 눈에 띈다 이러한 미륵보살상의 장
.
신구와 천의 형태 착의법 자세 등은 중국 서안
보경사
,
,
(
)
西安
전래 당대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일본 호류지
(
)
(
)
(
寶慶寺
唐代
法
의 십일면관음보살상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
隆寺
번호
국립중앙박물관-4
유물명
감산사 아미타여래 입상
국적
시대
/
통일신라
년
년
719 ~720
소장품
번호
본관 1959
국보 제 호
(
82 )
크기
높이 271.5cm
재질
화강암
상세
정보
아미타불상은 양 어깨에서 발목까지 흘러내린 법의(
)
法衣
가 부처의 몸에 밀착되어 신체의 윤곽이 확연히 드러난다.
반복적인 물결 모양의 대칭적인 자형 옷주름은 불상의
U
부피감과 표면의 높고 낮음을 강조한다 이와 동일한 형식
.
의 불상으로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사암제
불입
(
)
砂巖製
상 굴불사지 남면 불입상과 여러 금동불입상에서 확인할
,
수 있으며 그 원류는 인도 굽타시대 불상의 영향을 받은
당대
불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도의 불교 성지를
(
)
.
唐代
순례했던 구법승
들이 귀국할 때 인도의 불상도 함
(
)
求法僧
께 전래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불상이 중국에서도 모각되
었고 이러한 형식이 다시 통일신라 불교 조각에 반영된
,
것으로 보인다 감산사 아미타불상은 세기 중반의 불상처
.
8
럼 적극적으로 입체감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풍만한 양
감과 역동적인 사실감을 강조하던 새로운 흐름을 인지하
고 그 형식을 수용하여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5
유물명
경천사 충석탑
10
국적
시대
/
고려
년
1348
소장품
번호
본관 6753
국보 제 호
(
86 )
크기
높이 1350cm
재질
대리석
상세
정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리석탑으로 고려의 전통과 당시 원
,
( )
元
나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융합하여 만들었다 목조 건축 장식을
.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탑 아래쪽 단의 기단부에는 당나라 현장
,
3
법사와 손오공 등이 인도에서 경전을 구해오는 험난한 여정을 중
심으로 나한과 사자를 새겼다 그 위 탑신에는 장면의 법회
.
16
(法
와 법회 이름을 새긴 현판을 달았다
층 탑 꼭대기까지는
)
(1~4 ).
會
다섯 부처 또는 세 부처를 조각하였다
층
층 탑신에는 원
(5~10 ). 1
나라 황실을 축원하면서 온 백성이 편안하고 일체 중생과 더불어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진령부원군 강융
과 원
,
(
)
姜融
사
고용봉
또는
이 시주하여 탑을 만들었다는
(
)
(
)
院使
高龍鳳
高龍普
기록을 새겼다
년 일본 궁내부 대신 다나카
가 일
. 1907
田中光顯
〔
〕
본으로 무단반출 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의 언론인 베델과 헐버
,
E.
트의 노력 우리 국민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년 환수되었다
,
1918
.
경천사 석탑은 나무로 만든 건축물처럼 재현되어 있으며 층마다
불상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석탑의 아래층 평면은 사
.
면이 돌출되어 있어 원나라에서 유행한 몽골티베트계 탑과 모양
·
이 비슷한 점이 특징이다 반면 층부터 층까지의 평면은 정사
.
4
10
각형으로 전통적인 석탑 모양이다 이 같은 구성은 중국에서 발견
.
되지 않기 때문에 당시 동아시아에 유행한 양식을 참고로 한 고
려의 창안이라고 볼 수 있다 약
년 뒤에 조선 왕실에서 재질
.
120
과 모양이 비슷한 석탑을 원각사에 세우기도 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6
유물명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국적
시대
/
고려시대
소장품
번호
신수 18239
보물 제
호
(
282 )
크기
높이 305cm
재질
화강암
상세
정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터
에 있던 것을
년 경복궁으로 옮겨온 후 현재의 위치에 자
1959
리잡고 있다 쌍사자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나타난 독특
.
한 석등 양식으로 법주사 쌍사자 석등 중흥사터 쌍사자 석등
,
,
합천 영암사터 쌍사자 석등 등의 예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
쌍사자석등은 팔각기둥 형태의 간주석
을 대신하여 사
(
)
竿柱石
자 두 마리가 마주보고 선 자세를 취하는 매우 역동적인 조형
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고달사 쌍
.
사자 석등은 석등의 하대석에 해당하는 부분에 사자 마리가
2
나란하게 앉아있어 안정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또한 직사각
.
형의 평면구조에 맞춰 전체적인 조형이 이루어진 점 또한 특
징적이다.
고달사는 나말여초에 창건된 선종 사찰의 하나로 이후 법안종
및 천태종
의 영향을 받으며 몇 차례의 중건을
(
)
(
)
法安宗
天台宗
거듭하다 세기를 전후하여 폐사된 것으로 최근의 발굴조사
17
결과 추정되고 있다 고달사터는 사적 제
호로 지정되어 있
.
382
으며 현재 부도 국보 제 호 석불대좌 보물 제 호 원종대사
,
(
4 ),
(
8 ),
혜진탑 보물 제 호 원종대사혜진탑비 보물 제 호 등의 조형
(
7 ),
(
6 )
미가 뛰어난 우수한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7
유물명
부석사 괘불
국적
시대
/
조선
년
1684
소장품
번호
K969
크기
922cm X 578cm
재질
비단에 색
상세
정보
괘불
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큰 법회나 불교 의식을
掛佛
야외에서 거행할 때 걸어 두는 대형 불화이다 조선시대에
.
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
,
들이 죽었고 죽은 부모와 형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찰에
,
서 천도
의식을 빈번하게 행했다 불교의 재의식인 예
.
薦度
수재
나 수륙재
에 괘불을 걸어 망자
의 영
豫修齋
水陸齋
亡者
혼을 위로하고 극락으로 인도했다 영산재
관음재
.
,
靈山齋
觀
같은 다양한 불교 의식에도 괘불을 사용했다 조선시
.
音齋
대 야외 불교 의식에서 괘불의 의미와 역할은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한국 불교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약
여 년 전인
년 숙종
부석사에서는 미터가
300
1684 (
10)
9
넘는 비단에 큰 그림을 그려졌다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
.
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
위로 세
靈山會上圖
부처와 권속
을 추가하여 모든 시공간에 존재하는 부처
眷屬
와 불법
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
佛法
부처가 깨달은 우주의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한다 비로자나
.
불 오른쪽은 질병의 고통이 없는 유리광정토를 다스리는
약사불의 설법 장면이고 왼쪽은 아미타불의 설법 장면이
,
다 여러 부처를 한 화면에 표현했지만 석가모니불 상단에
.
,
그려진 비로자나불의 구도는 조선시대 불신관에서 비추어
봤을 때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이 동일한 존재임을 의미
한다
부석사 괘불 에는 보살과 천인
신들의 무리까
. <
>
,
天人
지 명이 넘는 인물을 그려 신앙과 교리가 한 화면에 펼
60
쳐져 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8
유물명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와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국적
시대
/
고려
년
1307
소장품
번호
본관12360
보물 제
호
(
1887 )
크기
22.5cm x 13cm
재질
흑칠 목판 위에 금
상세
정보
세로
가로
두께
의 목판에 옻칠을 하고 금
22.5cm,
13cm,
1cm
선묘로 앞면에 아미타팔대보살도 뒷면에 금강산 담무갈보살
,
과 지장보살을 그린 독특한 형식의 불화다 어딘가에 꽂아두
.
고 봉안했던 것으로 보이며 하단 가장자리에 개의 촉이 남아
2
있다 촉과 촉 사이 공간에
.
'大悳十一年丁未八月日 謹畵魯英同
이라는 발원 명문이 있어 이 불화가 충렬왕 년인
'
33
願 得
ㅁ ㅁ
년 월에 노영
이라는 화사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
1307
8
魯英
다 이는 연대가 확실한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가장 이른 예다
.
.
앞면에 그려진 아미타팔대보살도의 불보살은 모두 측면으로
살짝 몸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갸름하게 묘사되었다 다른 아
.
미타팔대보살도에 비해 큰 지물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앞줄 중앙 좌측의 보살은 왼손에 발 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
鉢
로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다 고려시대 아미타팔대보살도
.
중에서 관음보살의 도상으로 정병 대신 이러한 지물이 채택된
것은 이 작품과 도쿄예술대학 소장본뿐으로 고려시대 수월관
,
음도의 도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뒷면은 크게 상하로 화면이 구분되는데
동국여지승람
<<
>>
회양정양사조
유점사사적기
, <<
>>
淮陽正陽寺條
楡岾寺事蹟記
말사표훈사지
연혁
편의 기사로 보아 상
<
>
末寺表訓寺誌
沿革
부의 그림은 고려 태조가 금강산 정양사에 오르던 도중 배점
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고려에 의한 완전한 통일
拜岾
을 기원하자 담무갈 보살이 그의 권속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
다는 내용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화면 왼쪽 중간 부분에는
.
엎드려 예경의 자세를 취한 인물 앞에 태조
라는 부기
[
]
大祖
附
가 보인다 하부의 중심인물은 원형보주를 들고 민머리의
.
記
형상을 한 것으로 보아 지장보살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며 지
,
장보살의 왼쪽과 오른쪽 하단에서 참례하고 있는 자세의 인물
들 옆에는 각각 화사인 노영의 이름과
라는 이름
(
?)
祿始
ㅁㅁ
이 적혀 있다.
노영은 무신정권기 최우
의 원찰이었던 강화도 선원사
崔瑀
禪源
의 벽화를 그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화면의 테두
.
寺
리를 금강저 문양으로 장식하는 것 빈 공간을 구름 문양으로
,
가득 채우는 것 사경변상도에 등장하는 금강역사의 무기를
,
연상시키는 유난히 큰 금강저 지물 등 사경변상도와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으로 노영이 벽화뿐만 아니라 사경
변상도나 예배용 불화까지도 넘나드는 뛰어난 기술을 구사한
화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9
유물명
금동불감판
국적
시대
/
조선
소장품
번호
구 1031
크기
15.2cm x 19.5cm
10.5cm x 19.1cm
9.9cm x 19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작은 법당
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조선시
法堂
대 불감
의 편이다 나무 판은 없어졌고 지금은 그 위에 올
.
佛龕
려 세웠던 세 개의 금동제 판만 남아 있다 불교의 도상들을
.
타출 기법으로 도드라지게 부조하였다 사천왕이 수호하는 작
,
은 문 너머로 부처가 자리한 찬란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연화
.
좌 위에 앉은 부처와 주변의 권속들은 금빛로 빛나며 예배자
가 향후 도달하게 될 부처의 세계를 보여 준다 비파 검 용과
.
, ,
보주 보탑을 든 사천왕은 예배자의 심금을 울리는 금빛 세계
,
를 지키고 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10
유물명
감로탱화 감로도
(
)
국적
시대
/
조선
소장품
번호
신수 13521
크기
193cm x 200.7cm
재질
비단에 색
상세
정보
감로도는 중생들에게 감로
즉 이슬과 같은 법문을 베
甘露
풀어 해탈시키는 의식의 모습을 그린 불화다
우란분경
.
于
『
에서는 부처의 수제자인 목련존자
가 아귀
蘭盆經
目連尊者
』
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
처에게 방법을 묻고 그대로 행함으로써 어머니를 구했다고
한다 감로도는 억울하게 죽은 모든 영혼이 부처의 가르침
.
을 깨달아 다음 생에서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원
하는 목적에 의해서 많이 제작되었다 대부분의 감로도에
.
등장하는 음식이 차려진 제단과 법회장면이 이 그림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림 아래 부분에 전생의 업을 표현한 고통
,
받는 중생의 모습을 더욱 확대해서 묘사했다 중생들이 받
.
는 고통은 중앙에 커다랗게 등장시킨 아귀상에 집약하여
나타냈는데 위쪽에 표현된 부처들은 이를 구제하기 위해
,
인간 세상에 신속히 내려오는 듯 한 속도감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11
유물명
산신도
국적
시대
/
조선
소장품
번호
신수 15313
크기
81cm x 109.5cm
재질
비단에 색
상세
정보
산신도는 토착적인 산신 신앙이 불교와 결합하면서 사찰
내에 모셔지게 되었다 본래 불교에서도 불법을 수호하는
.
여러 신중
가운데 하나로서 주산신
이 있으나 대
,
神衆
主山神
부분의 산신도는 민간신앙적인 산신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반영한다 이 산신도 역시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신령한 분
.
위기의 노인이 산의 영물인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전형
적인 민간 신앙 속 산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신은
.
깊은 산 속에서 소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있으며 배경이
,
단순화되고 산신은 크게 그려져 부각되었다 산신 곁에는
.
시중드는 동자가 있고 산신이 거느린 호랑이는 민화풍으로
,
그려졌다.
번호
국립중앙박물관-12
유물명
칠성도 칠성탱
(
,
치성광여래도)
국적
시대
/
일제강점기
소장품
번호
구 8604
크기
142.0cm x 116.8cm
재질
비단에 색
상세
정보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붉은 해와
달은 든 일광보상
과 월광보살
이 서 있
日光菩薩
月光菩薩
다 주변에는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원성군
이
.
七元星君
자리해 있다 머리가 높게 솟아오른 노인은 인간의 수명
.
을 관장하며 남극성을 상징하는 수노인
이다.
壽老人
개항 이후 천주교나 기독교와 경쟁해야 했던 불교계는
대중 포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세
.
속적인 바람과 관련이 깊은 칠성도 제작도 활발해졌다.
이 그림은 일제강점기였던
년에 조성되었으며 안
1924
,
타깝게도 화기
의 반이 잘려나가서 누가 그렸는지는
畵記
알 수 없다 이전 시기 불화와 달리 부처와 보살의 옷
.
끝단에 그려진 금색 꽃문양이 돋보인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
유물명
필자미상회혼례도
회혼례첩 혼인 주년
(
)
60
기념잔치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
소장품
번호
덕수 6375
크기
37.9cm × 24.8cm
재질
사직 견
-
상세
정보
조선시대 회혼례 장면을 그린 화첩이다 회혼례는 결혼한
.
지 년 되는 해에 부부가 다시 혼례를 치르는 행사로 태
60
,
어난 지 년이 되는 회갑
과거에 등재한 지 년이
60
,
60
回甲
되는 것을 기념하는 회방
과 함께 장수와 복을 상징하
回榜
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 회혼례첩은 전안례
부터 합
.
奠雁禮
근례
까지의 의식과 혼례 의식이 끝난 후 잔치를 벌
合巹禮
여 자식과 친지로부터 축하를 받는 장면까지 모두 다섯 면
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구도는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
.
점으로 묘사하여 공간감을 극대화하였다 인물과 건물 여
.
,
러 가지 기물 등을 섬세한 필치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풍습과 풍물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2
유물명
호랑이 모양
허리띠고리 虎形帶鉤
Tiger-Shaped Buckle
국적
시대
/
한국 원삼국
/
소장품
번호
경산 4523
크기
10.2cm
재질
청동
상세
정보
경산 신대리유적 호 널무덤
에서 출토된 이 허리띠고
1
[
]
木棺墓
리는 일부 파손되거나 부식된 부분이 있지만 거의 완형에 가
깝다 허리 중앙부가 파손되어 좌우로 분리된 것을 다시 부착
.
·
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허리띠고리는 호랑이가 앉아
.
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얼굴과 잘록한 허리 등 전체적인 모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꼬리는 엉덩이에 붙어 몸체와 일체형을 이루며
.
,
뱀처럼 둥글게 말려있다 엉덩이는 등과 허리에 비해 낮고 긴
.
편이며 다소 둥글게 처리하였다 다리는 구부린 상태로 앞발
.
이 뒷발에 비해 조금 더 길다 앞뒷발에는 선무늬를 이용해
. ·
발톱을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얼굴의 입 주변은 여러 개의 새
.
김무늬
와 가로줄무늬
가 서로 교차되게 새겨
[
]
[
]
沈線文
橫線文
져 있으며 요철무늬
를 이용하여 개의 이빨을 익살
,
[
]
14
凹凸文
스럽게 표현하였다 눈은 동심원을 겹 가량 겹쳐서 나타냈고
.
2
,
목과 배의 잘록한 부분에는 줄의 구획선 안에 가로줄과 세
2
로줄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무늬를 새겼다 길게 만들어진
.
구부
의 끝은 갈고리 모양으로 처리하였으며 줄의 세로
, 4
鉤部
선 이 군데에 표현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번데기 모양의 돌
3
기를 장식하였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3
유물명
고리자루큰칼
環頭大刀
Sword with Ring
Pommel
국적
시대
/
한국 삼국 신라
/
(
)
소장품
번호
본관 11136
크기
68.6cm
재질
본관 11136
상세
정보
삼국시대 무덤의 대표적 껴묻거리
로는 고리자루큰칼
[
]
副葬品
이 있다 고리자루큰칼은 무덤 주인공의 허리 부분에서 출토
.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용품도 있지만 대부분 장식품으로서
,
성격이 강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구 달성고 분군
.
55
호분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이다.
이 고리자루큰칼은 세잎무늬
가 장식된 고리만 금동
[
]
三葉文
이다 그 외의 다른 부분은 모두 나무로 만들었고 표면에만
.
금동판을 덧대었다 둥근 고리 안에는 세잎무늬를 장식하였
.
다 칼집에는 새끼칼 자루가 장식되어 있다 새끼칼의 표면
.
2
.
에 다시 간략화 된 새끼칼 자루가 표현되어 있다 물고기의
2
.
꼬리지느러미처럼 생긴 칼집의 끝부분에는 연속으로 작은
점을 찍어서 무늬를 새겼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4
유물명
금동관 金銅冠
Gilt-Bronze Crown
국적
시대
/
한국 삼국 신라
/
(
)
소장품
번호
신수 610
크기
39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년 국립박물관이 탑리 고분군의 서쪽 정상부에 있는 가
1960
장 큰 고분을 발굴조사 하였다 하나의 봉토 안에서 모두
.
5
개의 덧널이 확인되었다 이 금동관은 그 가운데 제 곽에서
.
1
출토되었다 넓은 관테
에 개의 세움장식
을 금동
.
[
]
3
[
]
帶輪
立飾
못으로 고정시켜 부착한 점이 특징이다.
개의 세움장식 가운데 전면의 세움장식은 똑바로 서있지만
3
,
양 측면의 세움장식은 뒤쪽으로 조금 휘어진 형태로 만들었
다 세움장식은 가장자리를 얇게 오려낸 다음 일일이 꼬아서
.
새의 깃털모양처럼 만들었다 세움장식의 상부에는 마치 새
.
의 눈을 연상시키는 개의 구멍을 내었다
2
.
세움장식의 가장자리를 새 깃털모양처럼 장식하는 것은 고
구려 관에서 많이 나타나는 제작기법이다 경주 황남대총 남
.
분에 서 출토된 은관과 대구 달성고분군 호분 제 곽에서
37
2
출토된 고깔 모양의 관
에도 새 깃털 모양의 세움장식
[
]
帽冠
이 있어서 고구려 문화가 신라로 유입되었음을 알려준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5
유물명
금귀걸이 金製耳飾
Gold Earrings
국적
시대
/
한국 삼국 신라
/
(
)
소장품
번호
본관 11124
크기
7.5cm
재질
금
상세
정보
대구 달성고분군
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중심고리
55
.
[
]
主環
와 노는고리
중 간식
드림
으로 이루
[
],
,
[
]
遊環
中間飾
垂下飾
어져 있으며 중간식이 특히 화려하다 중심고리의 속은
,
.
비어 있다 중간식은 작은 고리를 여러 개 연접하여 만든
.
구체와 반구 체가 상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중간에는 둥근
.
고리를 끼워 넣었다 상하의 작은 고리 가운데에는 새김눈
.
테
가 있는 고리가 있는데 여기에 금실을 꼬아 달
[
]
,
刻目帶
개
를 장식하였다 반구체에도 달개가 달려 있어서
[
]
.
瓔珞
화려함을 더한다 드림은 심엽형
이며 연결금구가
.
,
心葉形
걸리는 부분에는 구멍을 뚫었다 드림의 가장자리 와 앞
.
·
뒷면 가운데에 새김눈테가 있는 금띠를 붙였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6
유물명
은허리띠 꾸미개
銀製銙帶
Silver Belt
Ornaments
국적
시대
/
한국 삼국 신라
/
(
)
소장품
번호
임당 14132, 14133,
14135, 14137,
14141~42
크기
124.8cm
재질
은
상세
정보
은허리띠는 띠고리와 띠꾸미개 드리개
띠끝장식
,
[
],
腰佩
으로 이루어져 있다 띠꾸미개는 맞새김 기법
[
]
.
帶端金具
으로 인동무늬
가 간략하게 표현된 사각형 판 에
[
]
忍冬紋
심엽형
의 장식이 달려있다 사각형판을 천이나 가
.
心葉形
죽으로 만든 허리띠에 매달아 장식한다.
사회적 위계에 따라 각기 다른 재질의 허리띠를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금 은을 비롯해 금동과 철 등 여러
·
가지 재료를 이용해 만들었다.
매달린 장식에는 숫돌 족집게 손칼 물고기모양 장식
,
,
,
,
곱은 옥 등 다양한 상징적 기물들이 있다 특히 물고기
.
모양 장식을 들여다보면 가는 선으로 물고기 무늬가 그
려져 있다 물고기 자체의 상징적 의미는 다 산
으로
.
多産
그 의미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 물고기 안에 마리의
2
물고기를 새겨 넣었을 수도 있다 혹은 울산 반구대 암
.
각화의 고래처럼 새끼를 가졌거나 새끼를 배 밑에 데리
고 다니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7
유물명
금동신발 金銅飾履
Gilt-Bronze Shoes
국적
시대
/
한국 삼국 신라
/
(
)
소장품
번호
신수 625
크기
33.8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년 국립박물관이 탑리 고분군의 서쪽 정상부에 있
1960
는 가장 큰 고분을 발굴조사 하였는데 하나의 봉토 안
,
에서 모두 개의 나무덧널
이 확인되었다 이 금동
5
[
]
.
木槨
신발은 그 가운데 제 곽에서 출토되었다
매의 금동판
2
. 3
을 맞대어 만들었고 뒷판과 바닥판은 못으로 고정하였
다 신발 앞판에는
무늬를 세로로 연 속해서 맞새김
.
‘ ’
凸
장식하였다
무늬와
무늬가 번갈아가면서 새겨져
. ‘ ’
‘ ’
凸
있다 바 닥에는 둥근 달개
를 매달아 장식적 요소
.
[
]
瓔珞
를 더하였다 다른 금동신발과 달 리 신발 뒷축이 각이
.
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인 형태와 맞새김장식의
.
무 늬 등으로 보아 전형적인 신라식 신발에 해당한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8
유물명
관음보살
金銅觀音菩薩立像
Avalokitesvara
Bodhisattva
국적
시대
/
한국 신라 세기
/
7
소장품
번호
신수 3298
크기
33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국보 제
호 금동관음보살상은 장신구 천의 영락장식
183
,
,
등을 전면에 걸쳐 섬세하게 조각하였으나 국보 제
호
,
184
관음보살상에 비해 입체감은 떨어진다 온화한 표정의 얼
.
굴에 늘씬하고 유연한 몸매 신체에 밀착된 법의 표현 등
,
에서 관능적인 여성미가 느껴지는 듯하다 오른쪽 무릎을
.
약간 구부리고 허리를 왼쪽으로 살짝 틀어 전체적으로 우
아한 삼곡 자세를 보인다 목걸이와 자로 교차된 영락장
.
X
식 양팔을 감싸고 대좌까지 내려오는 천의가 율동감과 함
,
께 세련미를 더해준다 전체적인 자태와 조각 양식이 백제
.
지역에서 출토된 보살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세기대에
7
제작된 백제 보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년 월 일
.1976
3
8
봉한동에서 공사 중 구의 불보살상이 자갈밭에서 발견되
3
었다 그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봉한동
.
‘
으로부터
떨어진 대밭골에서 이 구의 불상을 년
2.5km
3
70
전 어떤 사람이 주웠는데 집안에 병이 생겼다 무당이 이
.
를 보고 새로 들어온 물건이 없는지 물었고 주인은 그 3
구의 불보살상을 지목하여 이 상들을 봉한동에 묻었다 라
’
는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신빙성은 떨어진
.
다 그러나 대밭골에 삼국시대 말기부터 있던 접성사
.
接聖
의 불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관음
은
.
Avalokitesvara
寺
觀音
말 그대로 고통에 처한 중생의 목소리를 듣고 그 근기 부
(
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교화될 수 있는 능력 혹은 그
대상 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
,
보살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미타불을 옆에서 도와주는 보
.
살로 등장한다 관무량수경
에 따르면 관음보
.
‘
觀無量壽經
『
』
살의 보관에는 서 있는 아미타불이 있다 고 기록되어 있다
’
.
보살상의 관에 작은 불상
이 묘사된 경우 관음보살
[
]
化佛
로 보곤 한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9
유물명
관음보살
金銅觀音菩薩立像
Avalokitesvara
Bodhisattva
국적
시대
/
한국 신라 세기
/
7
소장품
번호
신수 3299
크기
34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국보
호 금동관음보살상은 광배와 대좌는 남아있지
184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남성적인 풍모
.
,
전면
에 걸처져 있는 화려한 천의와 영락장식 신체
,
全面
와 분리한 조각 등을 볼 때 우리나라 금동불에서는 보
기 드문 예이다 타원형의 꽃장식이 있는 보관 중앙에
.
좌상
의 화불
이 있다 머리카락도 세밀하게 표현
.
坐像
化佛
하였다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의 입체감이 돋보이는 앞
.
면과 달리 뒷면은 입체감은 덜하나 각 부분을 세밀하게
,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 영락을
.
살짝 쥐었다 왼손은 가슴까지 올려 정병을 들고 있었던
.
듯 하나 결실되어 알 수 없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0
유물명
부처 金銅佛立像
Buddha
국적
시대
/
한국 통일신라 세기
/
8
소장품
번호
신수 3297
크기
40.3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국보 제
호 금동불입상은 통일신라시대 금동불로는
182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머리는 나발
에 육계가 큼직
.
螺髮
하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 크고 양감이 돋보인다 두 눈
.
.
은 지그시 감아 명상에 잠긴 듯하다 두 손은 시무외인
.
과 여원인을 취하였다.
통견의 대의는
자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일정하게 내
‘U’
려오다가 양 다리에서 나누어져 무릎 아래까지 이어진
다 대좌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발아래에 대좌에 꽂아
.
.
연결하였던 촉이 남아있다 뒷면은 도금이 되어 있으나
.
세부를 조각하지 않았다 주조 시 내부에 채워져 있던
.
흙을 빼내기 위한 구멍이 머리 등 무릎의 세 부분에 뚫려
· ·
있다 신체에 비해 작은 손 몸에 밀착시킨 대의 옷주름
.
,
,
표현 속이 완전히 비게 만든 중공식
주조기법 등
,
中空式
으로 볼 때 불상 제작 시기는 세기 초로 추정된다
8
.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1
유물명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松林寺
五層塼塔 舍利莊嚴具
Reliquaries
국적
시대
/
한국 통일신라 세기
/
8
소장품
번호
신수 331
크기
15.3cm
재질
금동 유리
,
상세
정보
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수리할 때 층 탑신의 거
1959
·
2
북모양 돌상자
안에서 사리기와 여러 공양물이 나왔
[
]
石函
다 화려한 집 모양
사리기는 금동판을 오려서 만
.
[
]
殿閣形
들었다 네모난 기단 위에 난간을 세우고 네 모서리에 기
.
둥을 세워 보개
를 얹었다 난간 안쪽 중앙에는 여섯
.
寶蓋
개의 금동제 꽃잎을 못으로 고정했다 연꽃 모양 받침대를
.
만들고 그 위에 녹색 유리로 만든 잔과 사리병을 안치하였
다.
유리잔은 표면에 유리로 만든 고리 모양을 상 중 하단에 엇
· ·
갈리게 붙여 장식하였다 사리병은 잔과 같은 재질에 목이
.
좁고 길다 몸체가 둥근 형태로 보주형
의 뚜껑이 있
.
寶珠形
다 사리기와 함께 돌상자 안에는 금제동심원륜
.
金製同心圓
과 유리구슬 수정 곱은옥 대롱옥 반지 등이 들어 있었
,
,
,
,
輪
다 백제의 은제관식
과 유사한 은제도금관식
.
銀製冠飾
銀製
이 돌상자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이 밖에 고려시대
.
鍍金冠飾
에 전탑을 수리하면서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감청자
사리합이 층 옥개석 윗면에서 발견되었다
5
.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2
유물명
금동용머리장식
金銅龍形幢竿頭
Dragon Head of a
Banner Pole
국적
시대
/
한국 통일신라 세기
/
9
소장품
번호
경주 1968
크기
68cm
재질
금동
상세
정보
절 입구에서 사찰의 소속을 표시하거나 법회
때 거는 깃
法會
발
을 매다는 시설인 보당
끝에 올렸던 용머리장식이
[ ]
幡
寶幢
다 용머리장식은 불법을 수호하고 불보살의 공덕을 찬양하
.
고 경전을 세상에 유포하여 인간 세상에 정법
을 펼친다
正法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입 안에 물고 있는 커다란 여의주 뒤
.
에 도르래가 있다 턱 아래에도 구멍을 뚫어 쇠줄을 걸어 깃
.
발을 쉽게 오르내리도록 고안하였다 입술과 눈 윗부분에는
.
운기문
을 새겨 넣었다 얼굴 주위의 갈기는 바람에 휘
.
雲氣文
날리듯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전면
에 걸쳐 선새김 기
.
全面
법으로 비늘과 털을 매우 정교하게 채워 넣어 장식미를 더하
였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3
유물명
현풍곽씨 편지
졍냥이는 심 학질 을
[
(
)
말았는가?]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
소장품
번호
증 증
1~ 168
크기
20.5×22.0cm
재질
지
상세
정보
곽주
는 곽경
의 세손이자 슬하에 남
1569~1617
19
4
郭澍
郭鏡
녀의 자녀를 둔 현풍 지역의 세족
이다 홍의장군으로
5
.
勢族
유명한 곽재우
의 종질이기도 하다 첫째
1552~1617
.
郭再祐
부인과 사별한 후 진주 하씨
이후 추
1580~1652
晉州 河氏
정와 결혼하였으나 전처 아들인 이창
과의 갈등으로 곽
以昌
주는 소례 하씨는 논공에서 각자 떨어져 살았다 따라서 다
,
.
른 곳에서 왕래하는 생활을 하면서 편지를 통해 많은 사연
들을 주고 받았다.
흔히 조선시대의 남성들은 가정사에 무심했을 것이라 생각
한다 그러나 곽주가 하씨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옷감 생
.
산과 염색 옷의 제작 여부 자녀들의 외출복 등 집 안팎의
,
,
크고 작은 일들을 세세하게 적어놓았다 자녀들에 대한 걱
.
정과 가족에 대한 안부는 아버지로서의 정감을 느끼게 한
다.
조선의 선비로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지키려
는 모습도 담겨 있다 편지 내용에는 곽주가 과거 시험을
.
보러가는 사연이 있지만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
당시 김굉필
의 문묘종사
운동과 관련하여 과
金宏弼
文廟從祀
거를 치지 못하더라도 상소는 꼭 올리고 오겠다는 굳은 의
지를 보여준다.
곽주는 가족들의 잔병치레를 걱정하여 근심이 그칠 날이 없
었다 이 편지는 심 학질 을 앓고 있는 졍냥 곽주의 딸 이가
.
(
)
(
)
다 나았는지 묻는 내용이 들어 있다 졍냥이는 다른 편지에
.
서도 종기를 앓고 있다는 사연이 언급되는 등 몸이 허약하
여 곽주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4
유물명
갓黑笠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
소장품
번호
대구 23469
크기
높이
지름
14cm,
30cm
재질
피모 말총
-
상세
정보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의관문물 간소화 시책에 따라
갓의 양태가 좁아지고 대나무 갓끈을 사용한 형태의 흑
립이다 흑립은 양반들이 외출 시 착용하던 것으로 원통
.
,
형 대우 부분은 말총을 망
으로 엮어 만들었다 양태
( )
.
網
부분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망을 엮고 그 위에 말
총을 방사상
으로 덧씌웠다
(
)
.
放射狀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5
유물명
떨잠 銀製鍍金琺瑯簪
Hairpin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세기
/
19
소장품
번호
대구 23463
크기
9.5cm/13.0cm
재질
은 옥
,
상세
정보
왕비를 비롯하여 상류계급의 여인들이 예복을 입고 큰머리
나 어여머리를 할 때 머리에 꽂는 장신구이다 꽃잎 모양을
.
조각한 옥판에 진주 산호 밀화를 꽃 모양으로 부착하였고
,
,
칠보
로 꽃잎을 장식하였다 금실로 가늘게 용수철 을
.
七寶
만들고 그 위에 꽃과 나비 새 등의 모양과 진주를 붙여 움
,
직일 때마다 용수 철 위의 나비 새 모양의 장식품들이 흔
,
들리도록 했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6
유물명
비녀
Hairpin
簪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세기후반
/
19
~20
세기전반
소장품
번호
대구 23461, 23462
크기
36.5cm/37.5cm
재질
은
상세
정보
용비녀는 왕실에서 큰 머리 위에 꽂았던 예장용 비녀이다.
봉황비녀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가에서도 혼례 식 때 한하여 사용하도록 했
다 보통의 비녀보다 길이가 매우 길어 댕기를 양 쪽에 감아
.
앞으로 늘이기도 했다.
밀화비녀는 왕실이나 반가에서 예장용으로 사용했다 은으로
.
된 몸체에 밀화로 비녀머리를 장식한 화려한 비녀이다 밀화
.
아래 부분에 파란색으로 장식한 나비와 연꽃 봉오리 넝쿨무
,
늬 복 자를 새겨 행복을 기원하였다
, ‘
’
.
福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7
유물명
조복 朝服
Official Ceremonial
Attire for men
국적
시대
/
한국
세기 전반
/20
소장품
번호
남산 1473
크기
133cm
재질
사
상세
정보
조선시대의 남자들은 과거에 급제해 나랏일을 하는 관리가
되면 정해진 대로 품계와 의례의 종류에 따라 관복을 입었
다.
조복은 관복 가운데 하나로 문무백관
들이 왕실의
文武百官
경축일 나라의 제사 정월 초하루 동지 등 국가의 중요한
,
,
,
행사나 명절 때 입는 예복
이다 금관
이라 불리는
.
禮服
金冠
양관
을 같이 착용했기 때문에 금관조복
이라 불
梁冠
金冠朝服
리기도 한다 안쪽에 청초의
라고 하 는 청색의 옷을
.
靑綃衣
받침옷으로 입고 겉에 붉은색의 적초의
를 착용한다
,
.
赤綃衣
그 외 적초상
백초중단
청초중단
,
,
,
赤綃裳
白綃中單
靑綃中單
폐슬
대대
혁대
패옥
후수
말
혜
,
,
,
,
,
,
蔽膝
大帶
革帶
佩玉
後綬
襪
홀 과 함께 착용한다 품계에 따라 관의 양 의 수
,
.
,
鞋
笏
梁
후수
의 무늬 환 의 재료 대 와 홀의 재료 패옥의
,
,
,
後綬
環
帶
색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8
유물명
돌띠
Belt for the
帶
First Birthday of a
Baby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세기후반
/
19
~20
세기전반
소장품
번호
대구
증
1209, 1210
크기
50.5cm/58.0cm
재질
단
상세
정보
돌을 맞은 아이의 수명장수
를 기원하는 뜻으로 허
壽命長壽
리에 돌려 매는 허 리띠다 아기의 복 과 장수를 바라는 마
.
福
음을 담아 십장생
무늬를 수놓아 장식한다 오곡
이
.
十長生
五穀
담긴 주머니를 돌띠에 매달아주기도 한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19
유물명
보상화무늬 금직물
寶相花紋錦
국적
시대
/
한국 고려 세기
/
12
소장품
번호
신수 1368
크기
13.2×22.6cm
재질
금
상세
정보
금 은 염색한 여러 가지 색실을 사용하여 제직한 무늬가
錦
있는 직물이다 제 직방법에 따라 경금
과 위금
으
.
經錦
緯錦
로 나눠진다 경금은 베틀의 경사에 실을 걸 때 일정한 구
.
간에 색을 다르게 하여 건다 즉 날실
에 걸린 실의
. ,
[
]
經絲
색 수에 따 라 직물의 무늬가 표현된다 날실에 색상이 많
.
아지면 실의 밀도가 높아져서 직 물을 제직하기가 힘든 단
점이 있다 위금은 이러한 경금의 단점을 좀 더 보완하여
.
발전시킨 제직기법이다 위금의 제작방법은 경금과 반대로
.
씨실
에 색실을 사용하여 무늬를 만든다 따라서 위금
[
]
.
緯絲
은 경금보다 훨씬 다양한 색으로 무늬를 만들 수 있다.
봉생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이 금직물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위금기법의 고려시대 직물이다 자색 황색 녹색 자색
.
-
-
,
미색 황색의 가지 색이 한 조를 이루어 짜여있다 통일
-
-
3
.
신라시대에 유행한 보상화무늬의 과장된 형태에서 벗어나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가 나타나 있다.
불상이나 탑을 조성할 때 경전이나 발원문 발원자들의 옷
,
등을 직물에 싸서 넣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직물은 색상
.
과 그 형태가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이 직물
.
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직물이 유통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직물이 만들어진 시대의 사회문화를 간접적으로 엿
.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번호
국립대구박물관-20
유물명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興宣大院君 麒麟胸背
국적
시대
/
한국 조선 세기
/
19
소장품
번호
신수 6327
크기
25.5cm×23.1cm
재질
단 견사
,
상세
정보
흥선대원군이 착용하던 기린흉배이다 구름무늬 비단 바탕
.
에 금실로 수놓았다 기린은 봉황 거북 용과 함께 영험한
.
,
,
동물의 상징이다 기린은 상상의 동 물로 얼굴은 용을 닮
.
고 사슴과 유사하며 몸에 비늘이 있다 인 을 존중하고
. 仁
의 를 지키는 지혜로운 동물로 인덕의 세상에 출현한다
儀
고 인식되어 왔다.
흉배는 조선시대 왕과 문무백관의 상복에 부착하는 것으로
품계에 따라 무늬를 다르게 한다 상하계급을 구분해 주기
.
도 하지만 자수의 섬세함과 다양 한 무늬는 옷을 화려하
,
게 장식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왕실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 라고 한다 왕과 왕세자
.
補
는 용무늬를 수 놓은 원형의 보를 곤룡포의 가슴 등 양어
, ,
깨 네 곳에 붙였다 평상시 입는 단령은 사각형의 흉배를
,
.
가슴과 등에 붙였다 조선 초에는 대 로써 품계의 차이를
.
帶
가렸으나 잘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여 단종 년
에
,
2 (1454)
흉배의 무늬에 따라 품계와 상하를 구분하도록 했다 품
. 1
은 문관
공작
무관
호표
품은 운안
,
, 2
文官
孔雀
武官
虎豹
雲雁
과 호표
품은 백한
과 웅비
대군은 기린 대
, 3
,
,
虎豹
白鷳
熊羆
사헌
은 해치
도통사
는 사자
왕자와
,
,
大司憲
獬豸
都統使
獅子
군은 백택
이었다 흉배의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
.
白澤
어서 조선 초기에는 주로 옷감에 직접 직조하는 방식을 썼
으나 후기부터는 대부분 자수 흉배가 사용되었다.